[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안분지족과 최북의 <추순탁속도>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안분지족과 최북의 <추순탁속도>

  • 승인 2023-11-03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수많은 기행으로 유명한 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 1712? ~ 1760?) 역시 누구 못지않게 자나 호가 여러 가지다. 별칭 또한 많다. 시서화에 능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산수화를 잘 그려 최산수(崔山水), 메추라기를 잘 그리다보니 최수리(崔?, 최메추리)라 불리기도 했다. 고양이도 잘 그려 최묘(崔猫)로도 불렸다. 소재 가리지 않고 잘 그리고, 기량이 뛰어났다는 징표이다. 진경산수에 대한 견해도 분명했다. "무릇 사람의 풍속도 중국 사람들의 풍속이 다르고 조선 사람들의 풍속이 다른 것처럼, 산수의 형세도 중국과 조선이 서로 다른데, 사람들은 모두 중국 산수의 형세를 그린 그림만을 좋아하고 숭상하면서 조선의 산수를 그린 그림은 그림이 아니라고까지 이야기하지만 조선 사람은 마땅히 조선의 산수를 그려야 한다." 게다가 필자가 더욱 주목하는 점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작가정신이다. 대담하고 파격적이다.

소ㅗㅗ
그림은 최북의 <추순탁속도(秋?啄粟圖, 17.7 × 27.5cm, 지본담채, 조선후기, 간송미술관)>이다. 가을 메추라기가 조 쪼는 그림이다. 관지에 문징명(文徵明, 1470 ~ 1559, 중국 명의 화가)의 필치를 본떴다고 했다.

가을 물가 언덕배기에서 메추라기 한 마리가 잘 여물어 고개 숙인 조 이삭을 바라보고 있고, 다른 한 마리는 땅에 떨어진 조 낟알을 주워 먹으려 다가가고 있다. 조는 오곡 중 하나이다. 오곡백과라 할 때는 온갖 알곡과 과일을 의미하지만, 오곡은 쌀, 보리, 콩, 조, 기장을 말한다. 쌀이나 보리가 주식이라면, 나머지는 혼반용으로 이용한다. 조는 새 먹이로 사용하기도 한다. 고개 숙인 이삭과 떨어진 낟알은 겸양지덕과 자족의 상징이다.

메추라기는 메추리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월동하는 겨울철새로 사육하기도 하며, 알은 영양가가 높아, 장조림, 샐러드 등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에 활용된다. 작고 통통하다. 목, 다리, 꼬리가 짧아 모양이 예쁘지는 않다. 몸 윗면은 엷은 적갈색이며 흑갈색과 흰색 줄무늬가 복잡하다.



메추라기는 깃털이 누더기처럼 보인다. 꾸밈이 없어 보이는 모습 때문에 겸손, 청렴에 비유된다. 일정한 거처 없이 자유롭게 살며 정한 짝과 믿음으로 함께하는 특성이 있다. <본초강목>에 나오는 글이다. "순(?), 즉 메추리는 성질이 순박(醇朴)하다. 얕은 풀밭에 숨어 사는데, 일정한 거처는 없지만 정한 짝이 있다. 어디서든 만족하며 산다. 장자가 말한 '성인순거(聖人?居)'라는 것이 이를 일컫는다. 가다가 작은 풀을 만나도 돌아가 피하니 또한 순박하다 할 만하다." 성인순거는 성인의 삶이 메추라기 삶과 같다는 말이다. 자기 분수에 맞추어 만족하며 사는 편안한 마음(安分知足), 가난하면서도 도를 즐기는(安貧樂道) 선비의 이상적 인간상에 부합된다, 생각했다. 때문에 오래전부터 화조화의 소재로 애용 되었다.

최북 또한 괴팍한 성격 및 기행과 달리, 작가 내면의 이상향에 대한 열망을 분출한 것 아닐까? 순리대로 살려는 순박한 소망이 담겨있는 것 아닐까?

화가는 형상으로 격물치지(格物致知) 한다. 어떤 사물에 의미부여, 실제 사물의 조사 연구로 이치 파악하고 지식을 완전하게 하는 것이다. 그로서 뜻을 성실히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한다. 그림에 담긴 안분지족을 다시 한 번 정리하자.

명심보감 안분편에 나오는 말이다. "경행록에 이르기를, 만족함을 알면 즐거울 수 있고 탐욕에 힘쓰면 근심 한다. 족한 줄 아는 자는 가난하고 천하여도 또한 즐겁고, 족한 줄 모르는 자는 부유하고 귀하여도 또한 근심 한다. 지나친 생각은 한 갓 정신을 상하게 할 뿐이요, 망령된 행동은 도리어 재앙을 부른다. 만족함을 알아 항상 만족하면 종신토록 욕되지 아니 하고 그칠 줄을 알아 항상 그치면 종신토록 부끄러움이 없느니라."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최종
양동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시, 일류경제 실현 "집토끼 잡아라'"
  2. 충남공무원 3자녀 두면 우선승진한다… 15개 시·군 적용 될까?
  3. [대전다문화] 세계인의 날
  4. [대전다문화] ON 세상 TV
  5. 호국영령 기리며 태극기 꽂기 봉사
  1. [대전다문화] 대전광역시가족센터 신규 명예기자를 소개합니다
  2. 불기 2568년 부처님 오신 날 봉축 법요식…관불의식 하는 신도들
  3. 항소심 재판부, JMS 정명석 목사 고소인 제출 녹음파일 복사 허용
  4. 이전 놓고 대립하던 대전시와 소진공 '갈등 해결 수순'
  5. 성심당 대전역점 입찰 서류 제출... 재계약 이뤄낼 수 있을까

헤드라인 뉴스


다슬기 채취에 낚시행위 여전…갑천습지 관리부재 `언제까지`

다슬기 채취에 낚시행위 여전…갑천습지 관리부재 '언제까지'

대전 월평공원 구간의 갑천을 국가습지 보호지역으로 지정한 지 1년을 앞뒀으나, 관리계획이 아직 수립되지 않아 현장 훼손 행위에도 손을 쓰지 못해 방치되고 있다. 하천에 들어가 다슬기를 마구잡이 채취하고 땅을 다지고 평상을 쌓아 낚싯대를 드리워도 제지가 없으며, 습지보호를 알리는 안내판 하나 게시되지 않았다. 15일 오전 갑천의 국가 내륙습지 보호지역에서 한 남성이 하천에 몸을 담근 채 무엇인가 채취하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천변 가장자리 물속에 잠긴 나무와 풀뿌리를 몇 차례 발로 차 이때 떨어진 무엇인가 소쿠리로 낚아채 잡는 것으로..

[WHY이슈현장] `충청의 5·18`, 민주화 향한 땀방울 진상규명은 진행형
[WHY이슈현장] '충청의 5·18', 민주화 향한 땀방울 진상규명은 진행형

5·18민주화운동을 맞는 마흔 네 번째 봄이 돌아왔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온전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5·18민주화운동은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1980년 5월 민주화 요구는 광주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뜨거운 열기로 분출되었는데, 대전에서는 그동안 교내에서 머물던 '계엄령 해제'와 '민주주의 수호' 시위가 학교 밖으로 물결쳐 대전역까지 진출하는 역사를 만들었다. 광주 밖 5·18, 그중에서 대전과 충남 학생들을 주축으로 이뤄진 민주화 물결을 다시 소환한다. <편집자 주> 1980년 군사독재에 반대하며 전개된 5·18민주화..

`27년만의 의대증원` 예정대로… 지역대 이달말 정원 확정
'27년만의 의대증원' 예정대로… 지역대 이달말 정원 확정

법원이 의대증원 처분을 멈춰달라는 의대생·교수·전공의·수험생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27년 만의 의대 증원'이 예정대로 진행될 전망이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7부(구회근 배상원 최다은 부장판사)는 의대교수·전공의·수험생 등이 보건복지부·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의 항고심에서 1심과 같이 '각하'(소송 요건 되지 않음)했다. 다만 의대생들의 경우 "집행정지를 인용할 경우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며 기각(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음) 했다. 법원 판단에 따라 의료계가 재항고할 것으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의정활동 체험하는 청소년 의원들 의정활동 체험하는 청소년 의원들

  • 대전 발전 위해 손 잡은 이장우 시장과 국회의원 당선인들 대전 발전 위해 손 잡은 이장우 시장과 국회의원 당선인들

  • 불기 2568년 부처님 오신 날 봉축 법요식…관불의식 하는 신도들 불기 2568년 부처님 오신 날 봉축 법요식…관불의식 하는 신도들

  • 호국영령 기리며 태극기 꽂기 봉사 호국영령 기리며 태극기 꽂기 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