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아는데, 살아내진 못하나보다'

  • 오피니언
  • 춘하추동

[춘하추동]'아는데, 살아내진 못하나보다'

김충일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24-07-16 17:21
  • 신문게재 2024-07-17 18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김충일 북칼럼니스트
김충일 북-칼럼니스트
찬 맛이 나는 바람이 섞여 불어오는 이른 새벽. 한 낮의 뜨거운 열풍을 품고 있는 선선한 바람이 코끝을 슬쩍 건드리고 거실 창문의 커튼을 흔든다. 일찍 눈 뜬 아내가 아침 눈 맞춤과 함께 '오늘이 초복(初伏)이네'라는 말을 건넨다. 기도로 아침을 열기 위해 나가는 아내의 현관문 여는 소리 속에 이미 입맛을 놓쳐버린, 작년에 '닭다리 하나와 수박 한 쪽'도 챙그려 드리지 못한 노모의 얼굴이 겹친다. 하루하루가 가는 것은 누구나 아는데 그러나 아무도 그 사실을 살아내진 못하나보다.

지난 주말 언제 부턴지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빈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게 된다는 고등학교 동기 몇몇이 자식의 늦은 혼사에 감사하다며 마련된 자리에서 맛난 점심을 먹고 왔다. 게다가 인사차 함께 자리한 새 신랑과 새색시의 좋은 선물까지... 이제는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뀔 때 반사 신경의 반응 속도가 늦어지고 있다는 혼주는 애경사에는 즐거움 속에 늘 생각지 못한 아쉬움이 묻혀있음을 알고 이를 '의미심장한 식사'로 풀어내고 있었다.

이를 '이웃과의 밥상'이라 부르자. "아픈 몸이/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 온갖 식구와 온갖 친구와/ 온갖 적들과 함께/ 적들의 적들과 함께/ 무한한 연습과 함께"( 김수영의 「아픈 몸이」, 부분) 물론 이 시는 김수영의 시사(詩史)에서 중요한 변곡점을 이룬, 시대의 퇴보를 온몸으로 아파하는 모습이 담겨진 현실 참여적 견해로 본다, 허나 오늘 춘추자(春秋者)는 이 '밥상'을 머리로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몸으로는 행하지 못하는 어느 한 '답답한 인생'의 참회의 두리번거림으로 읽는다.

우리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어떤 이유로든 스스로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생각하고 느끼고 마주치는 대상들과 부대끼며 사는 아픈 존재들이다. 세상의 모든 아픈 것들(식구, 친구, 적들, 적들의 적들, 이 모든 것인 세상)과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즉 친화적 관계로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는 날 까지 "무한한 연습"을 하며, 넘어지고 엎어지고 다치며 '이웃과의 밥상'을 향하여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 무한한 연습만이 아는 것을 살아내는 제일 덕목이다.



또 한 번 이 만남을 '살음의 밥상'이라 불러보자. "가련한, 가련한, 가련한 인생에/첫째는 살음이다. 살음은 곧 살림이다./살림은 곧 사랑이다. 그러면,/사랑은 무엔고? 사랑은 곧/제가 저를 희생함이다./그러면 희생은 무엇? 희생은/남의 몸을 내 몸과 같이 생각함이다."(김소월의 시「가련한 인생」,부분) 인생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살아가는 것, 생존이다. 그렇게 소월 시인은 생존을 살림 앞에 놓는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타자)을 살려야 한다. 이런 살림이 곧 사랑이고 자기희생이다. 자기희생이란 그저 자기 몸을 없애는 것도 아니고 불이익을 감내하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 먼저 '나'라는 고정되고 미화된 '자기 프레임'을 깨트려 바꾸는 것이다. 그래야만 타자를 사랑할 수 있고 살릴 수 있고 결국 내가 살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삶의 지혜임을 알고는 있다. 그런데 '그것을 실천해봤어?' 그날의 혼주가 마련한 '살림 밥상'은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걷는 것의 차이가 어떠한 지를 또 한 번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내가 조금은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는 자긍심이 없진 않다. 다만 세월의 흐름 속에서 가끔은 느는 새치와 주름, 넉살을 가장한 속물이면서 괜찮은 인간인 척하는 소름끼치는 가면을 늘려가며 살지 않았는지 돌아보기도 한다. 지난 토요일의 '이웃과의 살음의 밥상'모임은 마음을 내려놓고 사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며 나에게도 '지혜의 실천 밥상'을 톺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듯 두 생각이 서로밀치고 뒤엉키면서 만들어진 회색지대는 일상의 매 순간 생겨난다, 그 속에서 '아는데, 살아내진 못하나보다'라며 하루를 또 보내는 일이 삶의 리얼리티가 아닐까.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이진숙 교육장관 후보자 첫 출근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립대·지방대와 동반성장"
  2. '개원 53년' 조강희 충남대병원장 "암 중심의 현대화 병원 준비할 것"
  3. 법원, '초등생 살인' 명재완 정신감정 신청 인용…"신중한 심리 필요"
  4. 33도 폭염에 논산서 60대 길 걷다 쓰러져…연일 온열질환 '주의'
  5. 세종시 이응패스 가입률 주춤...'1만 패스' 나오나
  1. 필수의료 공백 대응 '포괄2차종합병원' 충청권 22곳 선정
  2. 폭력예방 및 권리보장 위한 협약 체결
  3. 임채성 세종시의장, 지역신문의 날 ‘의정대상’ 수상
  4. 건물 흔들림 대전가원학교, 결국 여름방학 조기 돌입
  5. (사)한국청소년육성연맹, 관저종합사회복지관에 후원물품 전달식

헤드라인 뉴스


야권에서도 비충청권서도… 해수부 부산이전 반대 확산

야권에서도 비충청권서도… 해수부 부산이전 반대 확산

이재명 정부가 강공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보수야권을 중심으로 원심력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충청권에서만 반대 여론이 들끓었지만, 행정수도 완성 역행과 공론화 과정 없는 일방통행식 추진되는 해수부 이전에 대해 비(非) 충청권에서도 불가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원내 2당인 국민의힘이 이 같은 이유로 전재수 장관 후보자 청문회와 정기국회 대정부질문, 국정감사 등 향후 정치 일정에서 해수부 이전에 제동을 걸고 나설 경우 이번 논란이 중대 변곡점을 맞을 전망이다. 전북 익산 출신 국민의힘 조배숙..

李정부 민생쿠폰 전액 국비로… 충청권 재정숨통
李정부 민생쿠폰 전액 국비로… 충청권 재정숨통

이재명 정부가 민생 회복을 위해 지급키로 한 소비쿠폰이 전액 국비로 지원된다. 이로써 충청권 시도의 지방비 매칭 부담이 사라지면서 행정당국의 열악한 재정 여건이 다소 숨통을 틀 것으로 기대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1일 전체회의를 열어 13조2000억원 규모의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 관련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다. 행안위는 이날 2조9143억550만원을 증액한 2025년도 행정안전부 추경안을 처리했다. 행안위는 소비쿠폰 발행 예산에서 중앙정부가 10조3000억원, 지방정부가 2조9000억원을 부담하도록 한 정부 원안에서 지방정..

대전·충남기업 33곳 `초격차 스타트업 1000+` 뽑혔다
대전·충남기업 33곳 '초격차 스타트업 1000+' 뽑혔다

대전과 충남의 스타트업들이 정부의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에 대거 선정되며, 딥테크 기술창업 거점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1일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2025년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에 전국 197개 기업 중 대전·충남에선 33개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이는 전체의 16.8%에 달하는 수치로, 6곳 중 1곳이 대전·충남에서 배출된 셈이다. 특히 대전지역에서는 27개 기업이 선정되며, 서울·경기에 이어 비수도권 중 최다를 기록했다. 대전은 2023년 해당 프로젝트 시행 이래 누적 선정 기업 수 기준으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수영하며 야구본다’…한화 인피니티풀 첫 선 ‘수영하며 야구본다’…한화 인피니티풀 첫 선

  • 시구하는 김동일 보령시장 시구하는 김동일 보령시장

  • 故 채수근 상병 묘역 찾은 이명현 특검팀, 진실규명 의지 피력 故 채수근 상병 묘역 찾은 이명현 특검팀, 진실규명 의지 피력

  • 류현진, 오상욱, 꿈씨패밀리 ‘대전 얼굴’ 됐다 류현진, 오상욱, 꿈씨패밀리 ‘대전 얼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