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그해 여름

  • 오피니언
  • 세상읽기

[세상읽기]그해 여름

황미란 편집부장

  • 승인 2024-08-01 09:44
  • 수정 2024-08-01 09:53
  • 황미란 기자황미란 기자
내사진-칼럼
황미란 편집부장
나른한 오후, 장독대에 큰 대자로 눕는다. 온돌방처럼 달궈진 시멘트 바닥, 뜨끈뜨끈 시원하다. 머리 맡 스댕 세숫대야에선 애벌빨래를 마친 아버지의 메리야스가 환골탈태를 기다리고 있다. 이글대는 햇볕의 성화에 보글보글 솟아오르는 물방울들, 빨랫비누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본다. 집 울타리 터줏대감인냥 수십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밤나무와 대들보를 연결해 묶어 논 빨랫줄. 일곱식구 옷가지들이 나폴나폴 정답다. 대나무로 만든 장대가 힘껏 줄을 하늘로 들어올린다. 긴 장마끝 하늘은 더없이 맑고 푸르다. 하얀 몽실구름 사이로 고추잠자리가 철없이 노닌다. 맴맴맴, 맴맴맴…. 오래된 밤나무에서는 매미들이 리드미컬하게 장단을 맞춘다. 지금도 생생하게 그려지는 여름날의 추억.

눈코 뜰새 없었던 오전을 보내고 점심 먹으러 가는 길. 한여름 땡볕을 피해 걷는 오래된 아파트 단지 호젓한 샛길. 아름드리 나무사이로 보이는 풀꽃들. 풍경을 눈에 담는다. 매미소리가 귀청을 때린다. 쓰릅쓰릅, 쓰르르릅…. 마치 인정사정 없이 퍼붓는 소나기 같다. 오만상을 찌푸리며 밉상매미를 질타한다."저놈들은 지치지도 않는가봐", "요즘은 밤낮없이 울어대는 통에 못살겠다", "여기 사람들은 여름에 문도 못 열어놓고 어떻게 사냐" 급기야 숲세권에 살아서 좋겠다며 부러워하던 주민들 걱정까지 쏟아낸다.

매미들이 독해졌다. 단 5%, 유충에서 성충으로 자란 매미는 초복 무렵 땅을 뚫고 세상으로 나온다. 땅 속에서 7년, 땅 위에서 한 달, 사랑을 찾은 후 7일. 어찌보면 길고, 또 어찌보면 짧디짧은 삶을 살고 장렬히 전사한다. 땅위의 시간은 단 한가지 목적을 위해 서다. 수컷매미는 암컷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울림통을 울려댄다. 사랑의 세레나데. 그들 중 약 30%만 대를 잇게 된다고 하니, 짝짓기에 성공한 매미는 복많은 매미다. 나머지는 천적의 먹이가 되거나 홀로 외로이, 또 처절하게 울부짖다가 생을 마감한다. 공공의 적, 어쩔수 없다. 사랑의 노래건, 통한의 외침이건, 그 요란함이 기차소리와 맞먹는다고 하니 사람들의 원성을 사는 것은 당연한 일. 온도와 빛이라는 두 가지 조건이 맞아야 소리를 내는 놈들. 지구온난화로 더 뜨거워진 여름, 휘황찬란한 불빛 탓에 낮밤을 잊은지 오래다. 매미도 사람도 잠못드는 여름 밤.

억울하다, 매미는. 옛 사람들에게 추앙받던 귀하신 몸, 어느새 천덕꾸러기가 됐다. 불교에서는 굼벵이가 땅위로 올라와 허물을 벗고 매미가 되는 모습을 보며 '해탈(解脫)'을 이야기 했고, 도교에서는 껍질을 벗고 새로운 몸을 얻는 다하여 '재생(再生)'을 상징했다."매미는 머리에 주름이 있어 우아하고(文), 이슬을 먹고 사니 맑고(淸), 남의 곡식을 탐하지 않는 염치가 있으며(廉), 집이 없으니 검소함(儉)이 있다. 여기에 늘 때에 맞춰 행동하는 믿음(信)까지 있다." 중국 진나라 시인 육운은 한낱 보잘것 없는 곤충이지만 군자가 갖춰야할 5덕(德)이 있다며 칭송했다. 조선시대에는 임금과 관료들의 모자에 매미 날개를 달았다. 늘 곁에 두고 본받으라는 깊은 뜻이다. '221년만의 매미겟돈' 최근 미국에서는 최대 1000조 마리의 매미떼 출현이 예고된 가운데 그 대책으로 매미음식 경연까지 벌였다고 한다.그중에서도 한국계 셰프의 '매미김치'가 핫했다고 하니, 5덕에 식(食)덕을 더해야 할 것 같다.

쏴쏴~ 쏴쏴아악~ 있는 힘 다해 토해내는 강렬한 절규. 한 시인은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라고 했다. 제 할일에 최선을 다한 뜨거운 삶. 오늘을 되돌아 본다. 종이컵을 들었다 다시 내려 놓는다. 책상 위 쓰지 않는 플러그를 슬그머니 뽑는다. 매미소리가 평화로운 그날이 다시 올까? 그랬으면 좋겠다. 편집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타임월드 매각 검토에 둔산 상권 촉각…백화점 유지 변수
  2. 당진푸르지오3차 입주민, 투기꾼 탓에 추가 분담금 위기 맞자 '어깨띠' 매고 거리로
  3. 대전 한전 전력연구원 ESS 화재…배터리팩 28개 전소
  4. 행정수도 온통대전 충청 밥상머리 민심 관통 전망
  5. 최재근 일자리진흥원장과 전용석 대전신보재단 이사장 각각 임명
  1. 대전시 지역 첫 방산 소부장 특화단지... 'AX 클러스터' 시정동력 탄력
  2. 허태정 "트램 흔들림 없이 추진" 정상 추진의지 밝혀
  3. 중부권 최대 민속놀이 대축제…제36회 충남도지사배 민속대제전 성료
  4. 석 달 파행 끝낼까…대덕구의회 21일 의장단 선출
  5. 충남 천안·아산 7개 산업단지, 반도체 후공정 특화단지 지정

헤드라인 뉴스


충남 3선 국회의원 지낸 강훈식 청와대 비서실장 사의

충남 3선 국회의원 지낸 강훈식 청와대 비서실장 사의

충남 아산시을 지역구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냈던 강훈식 청와대 비서실장이 21일 사의를 밝혔다. 성기홍 청와대 홍보소통수석은 이날 오후 춘추관 브리핑에서 "강훈식 청와대 비서실장은 오늘 오전 이재명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고 말했다.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실장으로서 2025년 이재명 정부 초대 비서실장에 임명된 지 1년 4개월 여만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의 지난주 기자회견에서 국정을 바라보는 국민 시선에 대해 자신의 부족함 탓이라고 수차례 말한 상황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실장이 종합적으로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사의를 표..

저축성예금 50조원 목전 둔 대전... 은행권 예금 금리 경쟁에 더 오를까
저축성예금 50조원 목전 둔 대전... 은행권 예금 금리 경쟁에 더 오를까

주요 시중은행이 앞다퉈 정기예금 금리를 올리며 금융소비자 모시기에 나서면서 50조 원을 목전에 둔 대전 예금은행 저축성예금 수신 잔액도 크게 오를 전망이다. 최근 시장금리가 오르면서 은행들이 수신 경쟁을 본격화하고 있는데, 정기예금 금리를 3% 중반까지 올리고 있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이날부터 대표적인 정기예금 상품 금리를 0.1%포인트 올렸다. 지난 14일 같은 상품 금리를 최고 0.6%포인트 올린 이후 일주일 만에 추가 인상이다. 이에 따라 1년 이상 2년 미만 만기 예금 금리는 연 3.4%에서 3.5%로 올..

충청권 AI활용 발전비전 전력공급 원활한 확보 시급… 화력발전 의존 장래에 불리
충청권 AI활용 발전비전 전력공급 원활한 확보 시급… 화력발전 의존 장래에 불리

충청권 지자체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방산·바이오·반도체 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려 AI 데이터센터에 투자하고 있지만, 필요한 전력 확보가 주요 현안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충청권은 석탄화력발전 의존도가 높은 데다 송전망과 무탄소 전원 여력이 충분하지 않아 향후 데이터센터가 본격 가동되면 전력 공급에 병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21일 한국전력 대전충남본부와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대전·세종·충남·충북이 AI를 활용한 성장전략에 집중하면서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확대되고 있으나 전력공급이 중요한 현안으로 떠오르고..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지방의회법 제정을 촉구한다’ ‘지방의회법 제정을 촉구한다’

  • 미리 보는 2026 지상군페스티벌…유·무인 복합전투체계 실전 시현 미리 보는 2026 지상군페스티벌…유·무인 복합전투체계 실전 시현

  • ‘풍요로운 추석 명절 보내세요’ ‘풍요로운 추석 명절 보내세요’

  • 차례상 차리기 배우는 어린이들 차례상 차리기 배우는 어린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