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민주주의 사선에 선 숨은 영웅, 영상 저널리즘의 수행자들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 민주주의 사선에 선 숨은 영웅, 영상 저널리즘의 수행자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승인 2025-05-19 09:39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이승선 교수
이승선 교수
"왜 자꾸 촬영을 합니까?" 국회 본관에 진입하던 계엄군이 기자에게 물었다. 기자가 대답했다. "우리가 기록하지 않으면 누가 합니까?". 계엄군은 입을 닫았다. 12·3 비상계엄 발령 후 계엄사령관 박안수는 포고령 1호를 포고했다. 모든 언론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으며, 위반자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된다고 밝혔다. '처단'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기록하고 알려야 한다는 기자들의 사명감을 막지 못했다. 기자 박장빈은 집에서 갓난아기를 재우고 밥을 먹고 있었다. 계엄 선포 소식을 듣자마자 국회로 갔다. 아이와 집에 있던 기자 박재현도 그랬다. 퇴근 후 집에 있던 기자 이정석은 택시를 타고 국회에 도착해 뒷문으로 현장에 갔다. 기자 박현철도 담장을 넘어 국회로 들어갔다. 집이 멀었던 기자 최대환은, 다음날 출근하라는 안내에도 국회로 달려갔다. 기자 전인제는 음주단속 현장을 취재하다 국회로 갔다. 마포에서 모임을 하던 기자 임채웅은 지하철로 국회에 도착, 담을 넘어 본관에 도착했다. 기자 김영묵은 밧줄에 카메라를 묶어 올리고 자신도 밧줄을 타고 본청 3층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기자 지선호, 기자 윤형, 기자 김대호도 그날 밤 국회로 한걸음에 달려왔다. 기자는 현장에 가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굉음을 내며 날아온 헬기에서 무장한 특수부대원들이 쏟아져 나왔다. 국회 본회의장에 진입하려던 계엄군이 본청 이층의 유리창을 깼다. 국회의원 보좌진, 사무처 직원 등이 필사적으로 계엄군의 진입을 막았다. 국회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계엄군은 기자들의 사다리를 뺏거나, 라이트를 쏘거나 카메라를 손으로 움켜쥐며 촬영을 방해했다. 1980년 5월 광주 투입 계엄군의 만행을 기억하던 기자들은 계엄군이 기자를 향해, ENG 카메라를 향해 총을 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기자들은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도 국회에 투입된 계엄군과 그들이 소지한 무력, 그에 저항하는 시민을 낱낱이 촬영했다. 기자가 기록하는 모든 순간들이 역사가 될 것이라는 사명감이었다.

평상시 3개의 풀단으로 구성돼 경쟁적으로 취재보도하던 국회 출입 영상기자들은 그날 밤과 새벽, 비상계엄이라는 비상한 상황에서 민주주의가 사선에 서 있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풀단별 경쟁이 아니라 전체 기자들의 협력이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공동취재에 돌입했다. 폐쇄적으로 운영하던 송출망을 개방하고 가용한 장비를 모두 동원해 실시간으로 영상을 송출했다. 국회에서 벌어지던 비상 상황을 국민들이 신속하고 생생하게 영상으로 전달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국회방송이 국회본회의장의 회의를 생중계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자 현세진에 의해 촬영된 국회의 비상계엄해제 의결 과정은 텔레비전과 유튜브, SNS 등을 타고 실시간으로 국내외에 공유되었다. 국회의장의 비상계엄해제 요구 의결안 선포 영상을 본 군인들은, 부대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지난 4월 4일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파면을 선고하면서, 목숨을 걸고 국회로 달려온 시민들과 부당한 명령에 소극적으로 임무 대응한 군인들에 의해 위헌적이고 불법적인 비상계엄이 저지될 수 있었음을 확인했다. 결정문에 명시적으로 적히지 않았지만, 12·3 친위 쿠데타를 막아내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데는 역시 목숨을 걸고 취재하고 보도한 언론인들의 생생한 현장 정보가 있었다. 레거시 미디어 소속의 언론인과 스마트 폰을 든 1인 미디어 저널리스트, 유튜버 등의 영상 저널리즘을 수행하기 위한 혈투와 상호 협력이 있었다. 그날 밤과 새벽, 오로지 기록하여 보도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국회로 달려온 언론인들이 없었더라면, 국회의 비상계엄해제요구 의결을 차단하기 위해 국회에 진입한 계엄군을 실시간으로 국민과 전세계에 전달하지 못했더라면, 부당한 권력의 폭력행사는 은폐되고 유혈을 동반한 비극이 44년 전 광주에서처럼 되풀이 전개되었을 것이다.



이달 17일 한국영상기자협회는 5·18기념재단과 함께 '12·3 계엄 사태 속 영상저닐리즘과 민주주의'라는 특별 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미나에서는 성찰하지 않은 저널리즘은 신뢰와 생명을 잃고 배척당한다는 것, 역사를 기록하지 않으면 진실은 기억되지도 못하다는 것,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언론인이 감히 사선에 설 때 시민들은 언론을 오히려 보호해 준다는 것이 논의되었다. 세미나에서는 재난이나 전쟁 등 위험의 정도가 확인조차 되지 않은 가장 위험한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가, 가장 늦게 떠나는 영상 저널리즘의 숙명과 그 수행자들에게 보내는 숙연한 응원이 계속되었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충청 메가시티 잇는 BRT… 세계적 롤모델 향해 달린다
  2. 32사단 과학화예비군훈련장 세종에 개장… '견고한 통합방위작전 수행'
  3. 유성선병원 변승원 전문의, 산부인과내시경학회 학술대회 우수상
  4. 대전시의사회, 성분명 처방 의무화 반대 성명…"의약분업의 기본 원칙 침해"
  5. 자치경찰제 논의의 시작은..."분권에 의한 민주적 통제 강화"
  1. 함께 노래하는 대전 의사들 20년 맞이 정기공연…디하모니 19일 무대
  2. 아산시 소재 고등학교에 나흘 사이에 2번 폭발물 설치 허위 신고
  3. 나에게 맞는 진로는?
  4. 빛으로 물든 보라매공원
  5. 대전대덕우체국 노사 재배 고구마 지역에 기부

헤드라인 뉴스


충청 메가시티 잇는 BRT… 세계적 롤모델 향해 달린다

충청 메가시티 잇는 BRT… 세계적 롤모델 향해 달린다

행정중심복합도시의 간선급행버스체계인 BRT '바로타' 이용자 수가 지난해 1200만 명을 돌파, 하루 평균 이용객 3만 명에 달하며 대중교통의 핵심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행복청은 '더 나은 바로타'를 위한 5대 개선 과제를 추진해 행정수도 세종을 넘어 충청권 메가시티의 대동맥으로, 더 나아가 세계적 BRT 롤모델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청장 강주엽·이하 행복청)은 행복도시의 대중교통 핵심축으로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한 BRT '바로타'를 세계적 수준의 BRT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17일 밝혔다. 행복청에 따르면..

32사단 과학화예비군훈련장 세종에 개장… `견고한 통합방위작전 수행`
32사단 과학화예비군훈련장 세종에 개장… '견고한 통합방위작전 수행'

육군 제32보병사단은 10월 16일 세종시 위치한 예비군훈련장을 첨단 ICT(정보통신기술)를 융합한 훈련시설로 재개장했다. 제32보병사단(사단장 김지면 소장)은 이날 최민호 세종특별자치시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세종 과학화예비군훈련장 개장식을 갖고 시설을 점검했다. 과학화예비군훈련장은 국방개혁 4.0의 추진과제 중 하나인 군 구조개편과 연계해, 그동안 예비군 훈련 간 제기되었던 긴 대기시간과 노후시설 및 장비에 대한 불편함, 비효율적인 단순 반복형 훈련 등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추진됐다. 제32보병사단은 지난 23년부터..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 가치 재확인… 개방 확대는 숙제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 가치 재확인… 개방 확대는 숙제

조선시대 순성놀이 콘셉트로 대국민 개방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3.6km)'. 2016년 세계에서 가장 큰 옥상정원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가치는 시간이 갈수록 주·야간 개방 확대로 올라가고 있다.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의 주·야간 개방 확대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주간 개방은 '국가 1급 보안 시설 vs 시민 중심의 적극 행정' 가치 충돌을 거쳐 2019년 하반기부터 서서히 확대되는 양상이다. 그럼에도 제한적 개방의 한계는 분명하다. 평일과 주말 기준 6동~2동까지 매일 오전 10시, 오후 1시 30분, 오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빛으로 물든 보라매공원 빛으로 물든 보라매공원

  • 나에게 맞는 진로는? 나에게 맞는 진로는?

  • 유성국화축제 개막 준비 한창 유성국화축제 개막 준비 한창

  • 이상민 전 의원 별세에 정치계 ‘애도’ 이상민 전 의원 별세에 정치계 ‘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