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칼럼] RE100을 넘어, 고온가스로가 여는 진짜 무탄소 사회

  • 오피니언
  • 사이언스칼럼

[사이언스칼럼] RE100을 넘어, 고온가스로가 여는 진짜 무탄소 사회

조재완 한국원자력연구원 경제성분석실 선임연구원

  • 승인 2025-09-04 16:59
  • 신문게재 2025-09-05 18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clip20250904095210
조재완 한국원자력연구원 경제성분석실 선임연구원
새해가 시작하면 항상 북적이는 곳이 있다. 바로 헬스장이다. 새해 다짐을 하며 1년짜리 회원권을 끊는다. 회원권을 끊으면 매일 운동해 건강해질 것이라 다짐하지만 누구도 나를 믿어주지 않는다. 3일이 지나고 3주가 지나면 운동 주기와 의지가 급격하게 떨어질 것을 모두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말까지 매일 운동을 할 확률은 아마 10%도 채 안 될 것이다.

RE100도 그렇다. RE100은 Renewable Energy(재생에너지) 100%의 줄임말로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전기를 모두 재생에너지로 사겠다는 약속이다. 하지만 이 계약서에는 매일 운동하겠다는 조건이 있지 않다. 재생에너지를 시간 단위로 매칭하는 것이 아니라, 1년간 총량 기준으로 맞추면 된다는 점이다. 즉, 물리적으로는 화석연료로 만든 전기를 끌어다 쓰더라도 재생에너지 전기를 샀다는 계약서나 인증서만 있으면 RE100을 달성한다는 것이다.

이를 넘어 진짜 무탄소 에너지를 쓰겠다는 움직임이 24/7 CFE(Carbon-Free Energy Compact)이다. 24/7 CFE는 2021년 유엔 에너지(UN Energy)를 중심으로 시작한 이니셔티브로 24시간 주 7일을 꾸준히 무탄소 에너지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RE100이 헬스장 1년 자유 이용권이라면 24/7 CFE는 매일 운동시간이 정해진 PT 수업이다. 들쭉날쭉한 운동이 아닌 매일 정해진 시간에 꾸준히 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1년 뒤 자유 이용권 회원은 운동을 제대로 했는지 장담할 수 없지만, PT 수업 회원은 가끔 결석은 있어도 대체로 80% 이상은 꾸준히 운동을 이어간다.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 RE100이 가치 없다는 말은 아니다. 최소한 헬스장 회원권을 끊은 사람이 아무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보다는 분명 더 나은 출발점이다. 단지, RE100만으로는 무탄소 사회로 가기에 한계가 있다는 의미이다. RE100을 주관하고 있는 더 클라이밋 그룹(The Climate Group)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 `24년부터 유사한 이름의 24/7 무탄소 연합(Carbon-Free Coalition)을 출범시켰다. RE100은 시작이고, 다음 단계로의 도약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2022년에는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 24/7 CFE의 다음 단계인 CFE 이니셔티브를 제안해 국제적인 공감대와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기존의 RE100과 24/7 CFE는 전기에 국한되지만, 탄소중립의 큰 숙제는 바로 산업의 무탄소화다. 마치 헬스장 회원권과 PT 수업만으로는 건강해질 수 없고, 식단 관리까지 같이 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철강과 석유화학을 비롯해 에너지를 많이 쓰는 중공업이 중심이어서 더욱 힘들다. 치킨과 피자를 야식으로 먹는 민족에게 닭가슴살 샐러드 식단이 유난히 더 힘들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해법으로 주목받는 것이 바로 고온가스로다. 고온가스로는 차세대 원자로의 일종으로 기존처럼 물을 끓이는 대신 헬륨 기체를 데워 에너지를 생산하는 원자로다. 물을 끓이는 원자로는 작동온도가 물의 끓는 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지만, 액체가 아닌 기체를 데워 쓰는 원자로는 훨씬 더 높은 온도에서 작동할 수 있다. 높은 온도의 헬륨 가스를 전기 생산에 쓸 수도 있지만, 고온·고압의 증기 생산에 활용할 수 있다. 기존의 석탄이나 천연가스를 태워서 하던 공정을 무탄소 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이다. 산업 공정에 필요한 고온·고압의 증기를 대규모로,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무탄소 에너지원이 드문 상황에서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고온가스로는 이제 실증에 도전할 수 있는 수준이다. 물론 고온가스로가 상용화되기까지는 경제성과 수용성 확보, 사용후핵연료 관리 방안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실증에 성공한다면 우리는 산업 부문 탄소중립의 가장 큰 문을 열게 될 것이다. 탄소중립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당장의 선택이다. 고온가스로는 그 선택을 실현하는 현실적 도구다. 우리의 도전이 세계 산업계의 탄소중립 표준을 만드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조재완 한국원자력연구원 경제성분석실 선임연구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수소트램 ‘유지냐 변경이냐’…민선 9기 고심
  2. 수사 중요성 커졌는데 '베테랑'은 부족… 대전경찰 인사 시험대
  3. 세종도시교통공사 '내부 갑질' 논란 반복… 자정 시스템 없나
  4. [기고] 대학 간 경계 허무는 충청권 국립대 연합체계
  5. 아산시, 온양 원도심 도시 재생 추진
  1. 방산 집적화 중인 충청권… 중수청 방위사업 전문조직은 수원에
  2. 충청권서 5년새 요양병원 21개 문닫아…"노인환자 진료공백 없도록 관리를"
  3. [시간속의 대전]1. 대전시민회관 그리고 '우뢰매'의 기억
  4. 고도화되는 드론 위협… 육군 32사단, 국가중요시설 방어훈련
  5. 부축빼기 절도범의 과감한 중고거래! 경찰~ 그거 제가살게요(영상있음)

헤드라인 뉴스


허태정 대전시장 “트램 2030년 완공 지킨다”…수소 방식은 재검토

허태정 대전시장 “트램 2030년 완공 지킨다”…수소 방식은 재검토

<속보> 대전 도시철도 2호선 수소트램 도입 재검토에 나선 허태정 시장이 20일 "급전방식 교체 여부에 대해 조만간 결론 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 시장은 이날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2030년 트램 완공 의지를 표명하며 이같이 밝혔다. 이 같은 언급은 트램 완공 시점을 2030년 당초 계획대로 추진하되 수소연료전지 방식을 유지할지, 다른 급전방식으로 전환할지 최종 판단 단계에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본보 8월 19·20일 자 1·2면 보도> 허태정 대전시장은 "트램에 대해선 두 가지 선택지를 고민 중"이라며 "하나는 급전..

코픽스 상승에 주담대 변동금리 인상세... 고정·변동형 두고 셈법 복잡
코픽스 상승에 주담대 변동금리 인상세... 고정·변동형 두고 셈법 복잡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 기준인 코픽스가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며 대출 차주들의 부담을 키우는 모습이다. 4개월 연속 상승한 코픽스가 1년 7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하며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데, 차주들은 고정형과 변동형을 두고 셈법이 복잡하다. 20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7월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전달(연 3.05%)보다 0.13%포인트 높은 3.18%로 집계됐다. 이는 2024년 12월 3.22%를 기록한 이후 1년 7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코픽스는 국내 8개 은행이 조달한 자금의 가중평균금리로, 은행이 실제 취급..

김민석 첫 충청행보 세종… `행정수도 설계자` 이해찬 정치 유산 잇는다
김민석 첫 충청행보 세종… '행정수도 설계자' 이해찬 정치 유산 잇는다

더불어민주당 사령탑에 오른 김민석 신임 당대표가 취임 후 첫 충청권 방문지로 행정수도 세종을 찾았다. '행정수도 설계자'로 일컫는 이해찬의 정치적 유산을 계승하겠단 의지와 함께, 민주당의 연속 집권을 위한 정치적 방향성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특히 행정수도특별법 당론 채택과 세계 유일의 'AI 국회'를 표방한 세종의사당 건립 의지를 밝힌 만큼, 김 대표가 행정수도 완성에 대한 민주당의 실천 의지를 얼마나 구체화할지 지역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민석 대표는 20일 오전 세종시 은하수공원에 안장된 故 이해찬 전 국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소방차 길 터주기는 의무입니다’ ‘소방차 길 터주기는 의무입니다’

  • ‘더위야 가라’…도심 속 숲길 걸으며 休 ‘더위야 가라’…도심 속 숲길 걸으며 休

  • ‘방독면 착용은 이렇게’ ‘방독면 착용은 이렇게’

  • 폭발물 테러 및 화재 대응 훈련 폭발물 테러 및 화재 대응 훈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