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고향사랑기부제가 내게 준 두 번째 삶

  • 오피니언
  • 월요논단

[월요논단] 고향사랑기부제가 내게 준 두 번째 삶

고두환 사회적기업 ㈜공감만세 대표이사

  • 승인 2025-09-21 16:28
  • 신문게재 2025-09-22 18면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고두환
고두환 대표
나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뇌경색으로 쓰러졌었다. 서울역 후미진 쪽을 걷다가 길거리에 쓰러졌는데, 눈 앞의 세상이 녹아내리는 찰나의 순간이 지금도 숨 막히게 떠오른다. 한동안 오른쪽 눈 시력이 없었고, 말이 어눌했다. 러시아 월드컵 전후 기억은 뒤죽박죽이었다.

작은 기업조차 운영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아주 쉬운 일도 벅찼고, 일상은 사는게 아니라 견뎌야 하는 도전의 시간이었다. 주변 사람들을 잘 만나 일본에서 재활을 권유받았다. 일본에서도 사업을 했고, 언젠가 한 번 살아보고 싶었다. 별 생각 없이, 될 때로 되란 심정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인적이 드문 산골 마을에 자리 잡은 나는 시시때때로 헬기를 타고 재활을 위해 이곳저곳을 누볐다. 서서히 오른쪽 눈 시력이 돌아오고, 말이 또렷해졌다. 뒤죽박죽인 기억도 돌아왔다. 어느 날, 집 마당을 쓸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슨 수로 헬기를 타고 다닌거지?'

군수를 만날 일이 있었다. 단 면을 보자면 헬기를 유지하는 비용이 비쌀지 몰라도, 단 면을 생각하면 보건소를 유지하는 것보단 훨씬 이득이란 얘기를 들었다. 꼬리표 달린 예산으로 획기적 사업을 할 순 없는데. 고향납세를 통해 과감히 의료용 헬기를 도입한 셈이다.

예전에 드라마를 봤다. 동남권 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입으면, 엠뷸런스가 대형병원에 옮길 때 사망률이 너무 높았다. 헬기를 띄우고 싶은데, 한 번 띄울 때 비용이 비쌌다. 그런데, 사망한 유족들은 보통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다. 당장은 헬기를 띄우는 게 비싸 보여도 장기적으로 노동자를 살리는 게 국가 재정 관점에선 이득이었다. 그런데, 꼬리표 달린 예산으론 이런 획기적 의사결정을 할 수 없었다. 이국종 교수가 작동하지 않는 무전기라며 성질을 내고 집어 던지는 쇼츠 영상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봤다. 그것도 마찬가지 상황이었을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강릉 산불 때 길거리에 나 앉은 할머니들이 가장 필요했던 건 슬리퍼였는데, 그걸 사줄 꼬리표 예산은 애석하게도 없었다. 노원문고 탁무권 대표님의 도움으로 동대문 시장에서 사이즈별 슬리퍼를 수백켤레 사가는 새벽 길에 우리 사회가 아무리 고도화해도 모세혈관처럼 모든 사각지대를 커버하진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향사랑기부제에 참여한다는 건, 직장인 입장에서 전액 세액공제와 답례품 때문이다. 그런데 경북 산불에 며칠 만에 수십 억의 기부금이 몰리고, 유기견 살처분 제로를 선언한 광주 동구나 장거리 통학을 하느라 아침밥을 거르는 중학생을 챙기는 경기 안성에 기부금이 몰린다. 혜택 때문에 참여하지만, 종국에는 꼬리표 달린 예산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 효능감에 모두 공감한다.

우리는 경제 대국이다. 마음 먹으면 못하는 일은 없는 나라다. 재해가 터지면 굶지는 않지만, 슬리퍼를 사긴 어렵다. 유기견은 딱하지만 살처분한다. 장거리 통학하는 중학생은 아침을 굶는다. 누구에게는 세상 어떤 일보다 안타까운 일인데, 국가 재정 운용 관점에서 우선 순위가 되긴 어렵다.

국가 예산 700조 시대다. 지난해 고향사랑기부제 모금액은 879억이다. 공제액을 상향해서 모세혈관처럼 사각지대를 해결해보는 품격 정도는 대한민국에 사는 국민으로서 체감하고 싶다.지난 해, 일본 고향납세액은 12조원 가량이다. 1,000조원이 훌쩍 넘는 일본 정부 예산에서 푼 돈 일 수 있다. 그런데 그 돈이 해낸 일은 적어도 12조원 보다는 효능감이 있다고 모두가 말한다. 양 당이 지난 대선 때 냈던 고향사랑기부제 공약은 대동소이했다. 고향사랑기부제에 날개를 달아줘야 하는 이유다.

/고두환 사회적기업 ㈜공감만세 대표이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교단만필] 서글프지 않은 이별을 배우기까지
  2. 충남교육감 후보자 등록 첫날, 이병도·김영춘·이병학 등록 마쳐… 이명수 15일 등록으로 변경
  3. [스승의날-대전교사 신문고] 명퇴·퇴직 희망 교사 절반 이상… 빛바랜 스승의날 '씁쓸한 교사들'
  4. 목원대 라이즈 사업단, 동아리로 학생 창업 역량 키운다
  5. '민주 박수현·국힘 김태흠' 충남지사 후보자 등록 완료
  1. [스승의날-대전교사 신문고] "말도 안 되는 민원 안 받게…" "민원 안전장치 필요"
  2. 월평정수장 주변 용출수 수돗물 영향 확인… 4곳 모두 소독부산물 나왔다
  3. 2022년 화재참사 현대아울렛 점장·소방업체 소장 실형 구형
  4. 학비노조 투쟁 예고에 대전 학교 급식 현장 긴장
  5. 대덕경찰, 오정중서 청소년 사이버도박 자진신고 상담

헤드라인 뉴스


대전 교사 절반이상 명퇴·퇴직 희망… 씁쓸한 스승의날

대전 교사 절반이상 명퇴·퇴직 희망… 씁쓸한 스승의날

교사들의 사기를 높이고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지정된 스승의 날이지만 정작 현장 교사들이 느끼는 감정은 차분하다 못해 냉소적이다. 악성민원이나 불합리한 제도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벅찬 교사들에게 더 이상 스승의 날은 교사로서 자긍심을 느끼는 날이 아니다. 중도일보가 스승의 날을 앞두고 실시한 긴급 설문조사 결과 교사 절반가량이 교사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으며 대다수가 교권침해를 경험했다. 명예퇴직을 고려하거나 당장 퇴직하고 싶은 교사도 응답자의 절반을 넘었다. 대전교사노조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대전지부의 협조를 통해 5..

`제2회 올댄스페스티벌 전국댄스경연대회` 16일 대전서 막오른다
'제2회 올댄스페스티벌 전국댄스경연대회' 16일 대전서 막오른다

대전시댄스스포츠연맹은 16일 한밭체육관에서 '제2회 올댄스페스티벌 전국댄스경연대회'를 개최한다. 대전댄스스포츠연맹이 주최·주관하고 대전시와 대전시체육회가 후원한 이번 대회는 댄스스포츠를 비롯해 라인댄스, 힙합, 방송댄스, 코레오 등 다양한 장르의 댄스가 함께한다. 전국 각지에서 선수와 관계자 등 1000여 명이 참가할 예정이며, 참가자들은 장르별 무대를 통해 그동안 갈고닦은 기량과 개성 넘치는 퍼포먼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특히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도 함께 마련돼 눈길을 끈다. 대회 마지막 순서로 진행되는 라인댄스 무료 워크숍은 참가..

금강벨트 4개 시도지사 후보등록 직후부터 뜨거운 난타전
금강벨트 4개 시도지사 후보등록 직후부터 뜨거운 난타전

6·3 지방선거 공식 후보 등록 첫날인 14일, 충청권 광역단체장 4석이 걸린 금강벨트에서 여야 후보들이 일제히 등록을 마친 뒤 거세게 충돌했다. 각각 내란청산과 정권심판 프레임을 내 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후보들이 충청 지방 권력 쟁탈 혈전에 돌입하면서 헤게모니 싸움을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4년 전 4개 시도지사를 모두 내주며 참패한 여당은 설욕을 위해, 당시 대승을 거둔 제1야당은 수성을 위한 건곤일척 혈투가 본격화된 것이다. 각 시도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대전, 세종, 충남, 충북 등 4개 시·도 광역단체장 후보들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전국동시 지방선거 대비 대테러 합동훈련 전국동시 지방선거 대비 대테러 합동훈련

  • 오늘은 내가 대전시의원…‘의정활동 체험 재미있어요’ 오늘은 내가 대전시의원…‘의정활동 체험 재미있어요’

  • ‘딸과 함께 후보자 등록’ ‘딸과 함께 후보자 등록’

  • 대전시장 후보 등록하는 허태정, 이장우, 강희린 대전시장 후보 등록하는 허태정, 이장우, 강희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