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방서현 장편 '내가 버린 도시, 서울'…"수저 색깔로 나뉘는 도시"

  • 문화
  • 문화/출판

[신간] 방서현 장편 '내가 버린 도시, 서울'…"수저 색깔로 나뉘는 도시"

  • 승인 2025-12-04 16:38
  • 신문게재 2025-12-05 9면
  • 최화진 기자최화진 기자
noname01
신간 '내가 버린 도시, 서울' 표지./사진=문이당 제공
세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수저 계급'이라는 말이 일상 언어가 된 지 오래다.

방서현 작가는 지난 11월 10일 새 장편 '내가 버린 도시, 서울'을 펴내고 이 익숙한 말들을 한 초등학생의 시선 위에 놓았다.

앞서 2022년 첫 작품 '좀비시대'에서 계층 격차의 어둠을 배경처럼 깔아두었던 작가는 이번 신작에서 그 격차를 한가운데로 끌어올린다. 서울의 여러 동네를 수저 색깔로 부르며 서열화하는 초등학생들의 일상을 통해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 버린 도시의 불평등 구조를 정면으로 묻는 작품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부모 없이 달동네에서 할머니와 살아가는 초등학생이다. 학교에 입학한 뒤 그는 처음으로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같은 교실 안에서도 아이들은 서로의 집과 부모의 능력에 따라 흙수저·은수저·금수저로 분류된다. 달동네는 '똥수저', 오래된 주택가는 '흙수저', 아파트는 '은수저', 고급 빌라촌은 '금수저'로 불린다. 무엇을 타고 다니는지, 어떤 집에 사는지, 부모의 직업은 무엇인지가 자연스레 서열의 기준이 되고, 아이들은 그 규칙을 놀랍도록 빠르게 체득한다.

작가는 이 풍경을 과장 없이 어린아이의 시선을 통해 담아낸다. 밤마다 들리는 폭언 섞인 부부싸움, 고물더미에서 생계를 잇는 할머니의 손, 산동네 공터에서 내려다본 아파트의 환한 불빛 등 단순한 관찰이지만 그 안에는 도시가 품고 있는 불평등의 구조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학교에서는 '우리 집 아빠 차 소개하기', '우리 집 자랑거리 써오기' 같은 숙제들이 아이들의 생활을 적나라하게 비교해 놓는다. 그 속에서 주인공의 사고는 자연스럽게 결핍과 열등감으로 채워지고, 오래도록 그림을 그려왔음에도 그것을 미래로 상상할 여백조차 부여받지 못한다.

유일한 보호자인 할머니마저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소년은 도시를 떠날 결심을 한다. 그러나 작가는 도시를 벗어난다고 해서 이 구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냉담한 현실을 제시한다. '서울을 버려도 또 다른 서울이 기다리고 있다. 또 다른 피라미드가 기다리고 있다'는 문장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를 응축한다.

문학평론가 최의진은 이 소설을 "양극화가 재난처럼 삶을 삼키더라도 아무도 소리 내지 않는 고요하지만 끔찍한 풍경을 가로지르는 이야기"라고 평가한다.

전작 '좀비시대'에서 주인공이 실패하더라도 저항의 의지를 보여주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그 의지마저 체념과 무력감 속에 희미하게 가라앉아 있다. 그럼에도 마지막 장면에서 펼쳐지는 숲속 세계(수저도, 화폐도, 피라미드도 존재하지 않는 곳)는 소년의 상상만큼은 완전히 닫히지 않았음을 조용히 드러낸다.

'내가 버린 도시, 서울'은 수저 계급론이 생활 언어가 된 시대, 그 언어를 처음 배우는 아이의 목소리를 통해 도시의 민낯을 투명하게 비춘다. 잔잔하지만 서늘한 이 소설은 오늘의 서울을, 그리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긴 질서의 모양을 새삼 돌아보게 만든다.
최화진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시 국방 과학수도 날개단다
  2. [우리동네 정비사업] 대전 대표 노후지 대덕구, 사업성 악화로 상당수 정비사업 '제동'
  3. [편집국에서]대한민국 축구와 민선9기 대전시
  4. "논쟁 휘둘려 기회 놓치면 안돼"…연내 특별법 제정 역량결집 시급
  5. [맛있는 여행] 116-연꽃이 아름다운 관곡지(官谷池)의 건강한 밥상
  1. [현장취재]크리스천리더스클럽, 제주헤리티지로 비전트립 다녀오다
  2. [월요논단] '온통대전'을 넘어, 시민이 설계하는 고향사랑기부제
  3. [옅어진 대전 문인의 흔적] 단재도 서포도 백호도…대전만 낯선 지역의 인문자산
  4. 무더위 피해 서점에서 북캉스
  5. 장마 주춤한 사이 활짝 핀 개망초

헤드라인 뉴스


정부 공공기관 이전 앞두고 민선 9기 대전시 역량 시험대

정부 공공기관 이전 앞두고 민선 9기 대전시 역량 시험대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이전 계획 발표가 임박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지역 발전에 견인할 핵심 공기업 유치를 위한 대전시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지고 있다. 1차 공공기관 이전 당시 철저히 배제된 만큼, 혁신도시 완성을 통한 원도심 활성화·도심 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한 기관을 유치하기 위해서다. 20일 지역 정치권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안에 2차 공공기관 이전 내용을 발표할 방침이다. 김윤덕 국토부 장관이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해 "실무적인 부분은 상당 부분 진행됐고, 가능하면 8월이나 늦어도 9월까지는 윤곽을 마련해 대통령께..

한화, 불펜 흔들리고 중심타선 공백…후반기 전력 어쩌나
한화, 불펜 흔들리고 중심타선 공백…후반기 전력 어쩌나

후반기 반등을 노리는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전력에 경고등이 켜졌다. 불펜이 흔들리며 마운드 운영에 부담이 커진 가운데 새 외국인 투수를 영입해 선발진 재정비에 나섰지만, 중심타선마저 부상 악재를 맞으며 전력 운용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한화가 후반기 첫 과제로 떠오른 숙제는 불펜이다. 키움 히어로즈와의 후반기 첫 4연전에서 리드를 지키지 못하는 장면을 반복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19일 경기에서는 8-1로 앞서던 승부를 지키지 못한 채 연장 11회 9-9 무승부로 마무리했다. 류현진의 한·미 통산 2500탈삼진이라는 대기록과..

충남문화관광재단 대표 인선 논란 증폭…박수현 지사 인사 잡음 잇따라
충남문화관광재단 대표 인선 논란 증폭…박수현 지사 인사 잡음 잇따라

박수현 충남지사의 취임 이후 인선을 둘러싼 잡음이 잇따르고 있다. 정무부지사 임명을 둘러싼 논란과 민선 9기 도정 첫 조직개편에 대한 비판에 이어 이번에는 충남문화관광재단 대표이사 임용 절차를 놓고 노동조합이 특정 자격 미달 인사를 위한 '맞춤형 규정 개정' 의혹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면서다. 지역 시민사회에 이어 공직사회와 산하기관 노동조합까지 잇따라 인사와 조직 운영을 둘러싼 문제를 제기하면서 박 지사의 첫 인선 기조가 연이어 시험대에 오르는 모습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충남문화관광재단지회는 20일 성명을 통해 "충남도와 재단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함께 지킨 자유, 영원한 감사’ ‘함께 지킨 자유, 영원한 감사’

  • 전통시장에 바람이 솔솔…‘시원하게 장보세요’ 전통시장에 바람이 솔솔…‘시원하게 장보세요’

  • 장마 주춤한 사이 활짝 핀 개망초 장마 주춤한 사이 활짝 핀 개망초

  • 무더위 피해 서점에서 북캉스 무더위 피해 서점에서 북캉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