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이 몸을 종신토록 잘 지키는 것도 효도의 길이지만, 부모를 오랫동안 모시며 함께 하기를 옛 사람들은 진정 바랬다. 효(孝)라는 글자가 '늙을노()'자에 '아들자(子)'자를 합했으니 자식이 늙은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이 효(孝)의 뜻이 된다. 자식이 부모에 대한 존칭으로 슬하(膝下)라 했고, 부모를 모시는 것을 시하(侍下)라 했다. 모시는 자체를 경사스러운 일로 보았으므로 '시(侍)'자 대신에 '경(慶)'자를 함께 쓰기도 한다.
부모가 모두 생존해 계시면 '구시하(俱侍下)'라 했다. 아버지 한 분만 계시면 '엄시하(嚴侍下)'라 했고, 편모슬하(偏母膝下)면 '자시하(慈侍下)'라 했다. 엄부자모(嚴父慈母)의 뜻을 취한 것이다. 조부모와 부모 모두 생존해 계시면 뭐라 부를까? '거듭중(重)'자를 써서 중시하(重侍下) 혹 중경하(重慶下)라 부르면 된다. 그러나 부모가 모두 안계시면 '영감하(永感下)'라 말하면 된다. 그저 부모가 살아계심을 큰 즐거움으로 삼았고, 하루하루 애일(愛日)의 심정으로 효양(孝養)했으며, 부모가 작고하시면 스스로 죄인으로 자처하였다.
옛날 사람들은 굳이 효자라는 명칭여부를 떠나서 자식된 도리로 맛있는 음식이 들어오면 부모에게 먼저 드렸고, 부모의 마음만이 아니라 눈과 귀를 즐겁게 해드리고 그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신(操身)했다. 과거 필자의 조부께서는 당신의 부모 고생하신 것을 생각해서 생일잔치는 물론 환갑전까지 자리를 깔고 눕지 않았다 한다. 당신 눈으로 부모의 고생하신 모습을 보았는데 어찌 호의호식하며 편히 잘 수가 있겠냐는 것이다. 부모가 계실 때에는 그 뜻을 살폈고, 부모가 돌아가셨어도 그 행실을 본받으려 했으니 '부자유친(父子有親)'의 친(親)함이란 이로 인해서 생겨나는 것이다.
과거에 효자(孝子)를 국가나 사회에서 우대하고 장려하였다. 효자가 나오면 우선 먼저 그 지방의 고을에서 발천(發闡)해서 유림(儒林)의 심사를 거쳤다. 그런데 효자발천의 심사조목이 대체적으로 세 가지였다. 첫째 상분첨고(嘗糞甛苦)다. 부모가 병들었을 때 똥이 달고 쓴 지를 맛보아 진찰한 것이다. 둘째가 혈지소친(血指甦親)이다. 부모가 운명하기 직전 손가락을 깨물어 부모의 입에 떨어뜨려 소생시키는 것이다.
셋째가 삼년시묘(三年侍墓)다. 묘소에 여막을 치고 묘소를 시중드는 것이다. 시묘(侍墓)에 대해서 퇴계는 비례(非禮)라 했지만 여기서 논할 대목은 아닌 것 같고, 하여간 꼭 세 가지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효자가 되려면 이런 정도는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조목을 갖추고 유림의 심사를 거쳐서 중앙의 예조(禮曹)로 올라가는데 최종 입격되면 임금이 정려문(旌閭門)을 설치하도록[施門] 명하고 그의 행실을 표창하고 관직에 등용하기까지 했다. 효자는 결코 역적이 되지 않을 것임을 믿었기 때문이다.
부모를 위하는 이러한 효행은 결국 자식이 부모를 높이려는 마음에서 이루어진다. 부모가 잘났던 못났던, 아버지 공경하기를 하늘 섬기듯 어머니 사랑하기를 땅을 섬기듯, 부모 아래에 자식이 태어났으니 자식들은 응당 부모 봉양하기를 천명으로 여겨야 하건만,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과거 옛날이야기같이 들린다. 자식들에게 효도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아예 내지 못할 뿐더러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는 아비가 자식의 눈치를 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아비의 탓인지 자식의 탓인지 아니면 사회나 국가가 그렇게 만든 것인지…. 아마도 모두의 탓일 것이다. /주역학자·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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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국 주역학자·원광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