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사또 영접한 아전의 영전
대발연 인사잡음의 책임은…
측근 위한 ‘설관(設官)’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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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용 논설위원 |
“요즈음 관례를 보면 아전과 노속(奴屬)으로 신관(新官 신임 수령)을 모시고 오거나 내행(內行·사모님)을 모시고 온 자는 다음해에 반드시 좋은 자리를 얻게 되는데 이는 사적인 일로써 공적인 상(賞)을 주는 꼴이다. (신관을 모시러) 서울 한번 갖다온 것이 큰 노고라 할 것도 없는데, 이 때문에 제일 좋은 자리를 내려 줄 수는 없는 것이다.” 『목민심서』
신임 사또를 영접하러 가는 것만으로도 인사 혜택을 입는데, 사또로 만들어 주는 사람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지금의 자치단체장들의 측근은 선거 때 한편이 되어 당선에 공을 세운 사람들이다. 이창기 대전발전연구원장도 그런 과정을 통해 염홍철 시장한테 한 자리를 얻은 셈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시장의 측근으로 호칭되는 게 언짢은 것 같다. 지난주엔 이 연구원에서 빚어진 인사 잡음에 대해 이 원장이 댓글 해명을 하면서 나온 그의 '측근론'이 눈길을 끌었다. 이 원장은 측근이란 말에서 종속의 의미를 강하게 느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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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측근은 말 그대로 ‘곁에서 가까이 모시는 사람’이지 정책 코드가 잘 맞는 사람을 뜻하진 않는다. 코드가 맞는다면 동지(同志)일 뿐이다. 코드가 맞아도 ‘심리적 거리’가 먼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다. 같은 당내에서 투쟁하는 사람들이 대개 이런 경우다. 그렇다면 측근은 누군가를 가까이서 모시는 ‘종속적 존재’임이 분명하다.
명색 지식인이 누군가의 종속적 존재로 인식되는 것을 좋아할 리 없다. 대학 교수이기도 한 이 원장이 시장 측근으로 불리는 것을 싫어할 만한 이유는 알겠다. 이 원장은 시장의 동지로 봐주길 원하지만 동지로 볼지 측근으로 볼지는 사람들이 판단할 몫이다.
측근이 동지와 다른 점은 ‘뜻’보다는 ‘이해(利害)’를 같이 한다는 것이다. 권력(벼슬)을 추구할 때나 서로 모이는 것은 '먹을 것'을 함께 좇기 위함이다. 집권에 성공하면, ‘주군’과 함께 측근으로서 권력을 누린다. 이런 점 때문에 측근에 대한 이미지는 부정적이지만 어떤 권력도 측근을 두지 않은 경우는 없었다. 현실 정치에선 측근 없이 혼자 하는 정치는 불가능하다. 보수정권도, 진보정권도, 군사정권도, 민주정권도 다 측근을 썼다. 지방권력도 기업체에도 다 측근이나 가신이 있다.
측근을 무조건 백안시할 필요는 없다. 주군을 위해 가장 노력해야 할 사람들이 이들이다. 주군과 공동운명체로 책임감을 가지고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측근은 주군과 개인적 이해도 함께하지만 주군이 이뤄야 할 공적(公的) 목표에 대한 책임도 함께 갖기 때문이다.
인사권자들이 측근을 쓰는 명분도 거기에 있다. 안희정 지사도 측근을 여러 명 쓰고 있다. 충남도는 업무 특성상 안 지사의 철학을 고려해 채용하다 보니 일부 선거공신들이 채용됐다고 말한다. 염 시장도 이창기 교수를 원장으로 앉힐 때는 자신의 생각을 잘 이해하고 열심히 실천할 사람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인사잡음으로 시장한테 질책받는 걸 보면 이창기 원장이 시장 생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책임은 시장에게도 있다. 아랫 사람은 윗사람을 보고 배우는 법이다. 위에서 '과감하게' 측근을 채용하는데, 아로에서 뭘 망설이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이번 인사잡음이 아니다. 체육회상임부회장처럼 필요도 없는 자리 만들어 측근을 뽑는 게 진짜 문제이지 연구원 측의 해명처럼 사람 구하기 어렵다는 7개월 짜리 한시직 연구원 자리에 많지 않은 월급 받고 측근의 배우자가 지원했다면 오히려 고마운 일 아닌가?
안 지사도 취임 6개월을 넘기면서 선거캠프에 참여했던 측근들을 대거 입성시키려 한다는 소문이다. 도지사의 '철학'으로 해명하고 있지만 측근을 위해 일부러 만드는 자리가 없지 않을 것이다. 시장이든 도지사든 '측근을 위한 설관(設官)'은 말아야 한다. /김학용·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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