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나팔수를 원해요?

  • 오피니언
  • 데스크시각

[우난순]나팔수를 원해요?

[중도시감]우난순 교열팀장

  • 승인 2011-02-16 20:37
  • 신문게재 2011-02-18 21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 우난순 교열팀장
▲ 우난순 교열팀장
권력은 피지배자의 복종을 도출해내는 지배수단이라고 했다. 즉 권력의 본질은 타인을 굴복시키는 것, 타인으로 하여금 자기 앞에서 완전한 '아부'만을 행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은 집단이든 개인이든 굴복시키려는 자와 굴복당하지 않으려는 자의 헤게모니 싸움으로 점철된다.

학자들은 권력구도의 기본구조를 가족에서 찾는다. 루이 알튀세르가 가족을 '가장 끔찍한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라고 한 것처럼 남편, 아내, 자식의 관계라는 가족의 구조는 기만과 배반으로 엮어진 오이디푸스적 구조로 이뤄진다고 보고 있다. 동물들의 세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야생의 포식자 늑대들도 철저한 서열에 따른 부계사회다. 하지만 호시탐탐 권력의 자리를 넘보다가 무리에서 축출되기도 하고 우두머리가 2인자, 3인자 신세로 전락하기도 한다.

푸코는 『성의 역사』에서 “욕망이 있는 곳에 이미 권력관계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남녀사이 만큼 권력관계가 팽팽하게 유지되는 곳이 있을까. 프랑스 여성작가 아니 에르노는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것을 작품화하는 걸로 유명하다. 악마에게 혼을 팔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자신의 치부를 거침없이 내보였다. 『탐닉』은 소련외교관과의 2년간의 만남을 기록한 일기다. 남자는 '지적이지도 않고 출세지향적인 속물'이다. 에르노가 명망있는 잘나가는 작가임에도, 변변찮은 남자는 '신'으로 군림했고 그녀는 '창녀'였다. 남자는 단지 수컷이라는 이유로 헤게모니를 쥐는 위치를 점했다.

권력은 '선한 사람을 악인으로 변화시키며 악인을 더욱 악하게 만든다'고 했던가. 역사상 지도자들 중엔 권력의 논리에 종속돼 권력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보이기도 했다. 히틀러도 처음엔 신중한 정치가였다고 한다. 그러나 권력을 쥐면서 자신은 하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라는 망상을 품게 되면서 정신병자 같은 면모를 드러내 파멸하고 말았다. 심지어 스탈린은 권력상실의 불안감에 사로잡혀 아내를 자살로 몰고가는 등 극단화된 폭력을 표출했다.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을 통해 드러난 닉슨의 행적을 보면 인간이 권력에 취하면 알코올처럼 중독성을 갖게 된다는 걸 알게 된다. 세계 제 1의 강대국의 지도자로서 재선을 위해 치졸한 방법을 쓰면서까지 권력에 연연해하는, 한 인간의 정신적 허약함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강대국의 힘의 논리로 약소국에 대해 야비함을 서슴지 않는 게 미국이다. 그러나 워터게이트는 미국이 민주주의와 원칙이 살아있는 나라라는 걸 보여줬다. 거기엔 언론의 힘이 한몫했다.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의 집요하게 파헤치는 기자정신이 살아있었기에 '대통령의 음모'가 실현 불가능한 것이 돼버렸다.

언론은 비판이 생명이다. 정부 정책이든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이든, 감시자의 눈으로 잣대를 들이댈 수 밖에 없는 게 언론의 생리다. 그러나 언론의 역할을 애써 외면하고 철저한 권력유지의 발판이 되거나 수구세력의 앞잡이가 돼온 부끄러운 자화상도 숱하게 노출했다. 반대로 자신들과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균형감각을 잃은 시각을 보이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 재직 시절 보수 언론은 대통령에 대한 건설적인 비판이 아닌 파괴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는, 무자비한 하이에나 습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대통령의 학력, 표현방식 등을 문제삼는 보수 신문들의 의도적인 흠집내기는 극에 달했다. 타협을 모르는 노 대통령의 독단도 문제였다. 본질을 벗어난 비난일지라도 '눈엣가시' 같은 언론권력에 맞서 '맞장' 뜨겠다고 전투적인 자세를 취한 것은 옳지 않았다. 그것은 언론과 국민에게 이성적이지 못한 지도자의 포용력 부족이라는 빌미를 제공하는 것 밖에 되지 못한다.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권력을 손에 쥔 사람은 숭배의 대상이다. 그래서 권력자는 나르시시스트에 가깝다. 듣기에 달콤한 말만 가려서 듣고자 한다. 그것이 권력의 자리에 오른 사람의 함정이다. 대통령이든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든 지도자는 아부에 익숙한 나팔수를 가까이 두려 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자신의 존재의미를 타인의 복종을 통해 확인하려는 심리일 게다. 영리한 지도자는 권력의 쓰임을 왜곡해 비판의 펜을 부러뜨려 굴복시키려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경찰, "제원면 천내리 수난사고 안전관리 부실" …담당 공무원 등 3명 형사 입건
  2. 경찰 압수수색 중 피의자 투신…대전 재개발 전 조합장 사망
  3. [중도초대석] 허정두 국가독성과학연구소장 "변경된 명칭에 부합하는 미래 비전을"
  4. 지역기업·소상공인 240곳 '대전 0시 축제' 함께 뛴다
  5. 재개발조합 임대아파트 사업권 결정 비리 온상…통째로 넘기는 관행에 감독 부재
  1. '대통령 세종 집무실' 신속 과제 선정...외투만 화려
  2. 대전0시축제 교통통제 8~16일까지 중앙로 통제
  3. 태안출신 문양목 애국지사 유해 국내 돌아온다…13일 대전현충원 안장
  4. '대통령 세종 집무실', 2029년까지 새 정부 신속 과제 추진
  5. 양유정 한글문화도시센터장 임명...한글 문화 혁신 이끈다

헤드라인 뉴스


김건희 특검 피의자 출석… 헌정 첫 전직 영부인 공개소환

김건희 특검 피의자 출석… 헌정 첫 전직 영부인 공개소환

공천개입과 주가조작, 금품수수 등 각종 의혹을 받는 김건희 여사가 6일 피의자 신분으로 특검에 처음 출석했다. 역대 대통령 부인으로는 처음으로 수사기관에 공개 소환돼 언론 포토라인에 선 것으로, 비공개 조사까지 포함하면 2004년 이순자·2009년 권양숙 여사 비공개 조사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출석 조사를 받는 영부인이다. 앞서 특검 조사를 받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함께 부부가 언론의 취재 포토라인 앞에 선 것도 사상 처음이다. 김 여사는 이날 오전 10시 10분 종로구 KT광화문빌딩 웨스트에 마련된 민중기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피..

충남도, 정부보다 먼저 폭우피해 특별지원금 지급
충남도, 정부보다 먼저 폭우피해 특별지원금 지급

충남도는 오는 7일부터 폭우피해 관련 도 차원의 특별지원금을 피해 도민들에게 우선 신속하게 신청 및 지급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6일 도에 따르면 특별지원금은 7월 16일부터 20일까지 이어진 폭우로 피해를 입은 도민들이 실질적인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총 232억원을 투입한다. 정부 지원으로는 부족한 부분을 도와 시군이 추가 지원하는 것으로, 도는 지난 5일 피해 조사를 마치고 특별지원금을 시군에 교부했다. 이는 광역자치단체 중 가장 선제적인 조치로, 시군 재난·주택·농업·소상공인 관련 부서를 통해 정부 지원금보다 먼저 지급할..

2027 충청 유니버시아드 D-2년...8일 성공 이벤트 열린다
2027 충청 유니버시아드 D-2년...8일 성공 이벤트 열린다

2027년 8월 1일 개막하는 '충청 유니버시아드대회'의 전초 행사가 오는 8일 세종 호수공원에서 열린다. 2027 충청 유니버시아드대회 조직위원회(위원장 강창희, 이하 조직위)는 대회 D-2년을 앞두고 이날 저녁 7시 '흥이나유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2025 독일 라인루르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막을 내린 뒤, 지난 달 27일 대회기 인수 기념의 의미도 담고 있다. 사실상 본격적인 대회 준비의 서막으로 보면 된다. 최민호 세종시장과 유득원 대전시 행정부시장, 김수민 충북도 정무부지사, 박정주 충남도 행정부지사 등 충청권 4개 시·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북적이는 워터파크와 한산한 도심 북적이는 워터파크와 한산한 도심

  • 노인들의 위험한 무단횡단 노인들의 위험한 무단횡단

  • 대전 0시 축제 준비 완료…패밀리테마파크 축제 분위기 조성 대전 0시 축제 준비 완료…패밀리테마파크 축제 분위기 조성

  • 교제 범죄 발생한 대전 찾은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 교제 범죄 발생한 대전 찾은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