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제 47강 생명감응(生命感應)

  • 문화
  • 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제 47강 생명감응(生命感應)

장상현/ 인문학 교수

  • 승인 2020-12-01 10:25
  • 수정 2020-12-04 18:18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제47강 생명감응(生命感應) : 생명을 살렸으니 하늘도 감동하여 화답하다.

글 자 : 生(날 생) 命(목숨 명) 感(느낄 감) 應(응할 응, 대답할 응)

출 처 : 한국해학대전집 이인기인편(韓國諧謔大全集 異人奇人篇)

비 유 : 남을 살리는 선(善)한 일을 하면 하늘도 감동하여 복을 내린다.

우리 선조들은 전설적인 기인(奇人)들이 많다. 정감록예언서를 지은 분을 비롯하여 조선 초기 왕사(王師)였던 무학대사(無學大師), 임지왜란 당시 왜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사명당(四溟堂), 조선 중기 토정(土亭) 이지함(李之函)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기인들이 정사(正史)나 야사(野史) 혹은 전설(傳說)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토정(土亭)이 언젠가 천안 삼거리에 위치한 한 주막집에 머무르게 된 적이 있었다.

마침 그 주막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는데, 그들은 한양에서 곧 있을 '과거(科擧)'를 보기 위해 고향을 떠나온 지방의 선비들이었다.

과거에 급제(及第)하기 위하여 공부해온 그들이라, 당대(當代)에 큰 학자이며 기인으로 명성(名聲)이 높은 토정선생의 방을 찾아가 한 말씀을 듣고자 모이게 되었다.

토정이 여러 젊은이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한 젊은 선비를 향해 이르기를 "자네는 이번 과거에 급제할 운이 없으니, 서운하겠지만 그냥 고향에 돌아가시게나"라고 하였다.

모두들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민망해진 그 젊은이는 말없이 일어나 인사조차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는 뒷걸음질로 방을 빠져 나갔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청천벽력의 말에 깜짝 놀란 그 선비는 멍한 느낌에 주막을 나와 대문 옆 담벼락에 등을 대고 쪼그리고 앉아 깊은 시름에 빠졌다.

그동안 과거에 급제를 목표로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해 왔는데, 시험을 보기도 전에 고향으로 돌아가면 고향에선 나를 못난이라고 놀려댈 테고, 한편으론, 대학자이신 토정 선생의 말을 무시하고 과거를 보러 가서 정말 낙방이라도 하면 평소에 흠모해 온 토정 선생의 말씀을 우습게 아는 놈이 되는 꼴이 아닌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멀거니 땅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마침 수많은 개미 떼들이 줄을 지어 자신이 앉아있는 자리 바로 앞을 좌에서 우측으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좌측으로 눈길을 돌려 바라보니 그 뒤로도 끝없는 개미들이 줄지어 앞의 개미들을 따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도대체 이 개미들은 어디를 향해 이렇게 질서정연하게 이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호기심에 몸을 일으켜, 그 선두에 선 개미를 보기 위해 걸어가 보기로 하였다.

가다 보니 선두개미가 있는 곳으로부터 불과 몇 발자국 앞에 큰 항아리 하나가 놓여 있고, 그 독 안에는 물이 가득 차 금시라도 넘칠 듯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부엌에서 쓰고 버린 허드렛물이 배수 하수관을 통해 항아리에 떨어지게끔 되어 있었고, 물이 가득 차게 되면 자체의 무게로 인해 독이 기울어져 도랑 쪽으로 물이 쏟아지도록 만든 도구였다.

지금이라도 당장 누군가가 부엌에서 물을 버리면 그 독이 기울어져 이동하고 있는 개미들에게 쏟아져 많은 개미들이 때아닌 물벼락을 만나 다 죽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황급히 뛰어가 구정물이 가득한 독을 힘들게 옮겨 도랑에다 대고 얌전히 부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빈 독을 옮겨 제 자리에 갖다 두고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개미의 긴 행렬은 아무 것도 모르는 듯 가던 길을 계속해서 가고 있었다. 개미의 이동을 넋 놓고 바라보던 이 젊은 선비는 한참 후 토정선생이 하신 말씀이 다시 생각나, 조금 전에 앉았던 자리로 되돌아가 쪼그려 앉아 다시금 우울한 생각에 잠겼다.

그 때 문득 "자네, 거기서 무엇을 하는가?"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보니 언제 나오셨는지 토정(土亭) 선생이 대문 앞에 서서 자신을 향해 하는 말이었다.

벌떡 일어나 머리를 숙여 인사를 드리니 선생께서 선비를 향하여 다가오다가 가까이 와서 젊은이를 보더니, 이번에는 토정(土亭) 선생이 흠칫 놀라며 이렇게 묻는다.

"아니, 자네는 아까 방에서 내가 낙방(落榜)을 할 운(運)이니 고향으로 내려가라 한 바로 그 젊은이가 아닌가?"

그리고는 토정 선생이 머리를 갸웃거리시며 하시는 말씀이, "내가 조금 전에 자네에게 얘기할 때 본 자네의 상(相)과 지금 보는 자네의 상(相)이 완전히 다르니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네. 얼굴에 광채가 나고 서기(瑞氣) 가 충천(衝天)하니 과거에 급제를 하고도 남을 상(相)인데, 도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상(相)이 바뀌었단 말인가?" 하고 물으셨다.

젊은 선비는 너무나 황당하여 도대체 무슨 말씀이시냐며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니, 선생께서 재차 물으시기를, "잠깐 사이에 자네의 상이 아주 귀(貴)한 상(相)으로 바뀌었네. 분명히 무슨 일이 있었을 테니 내게 숨김없이 말씀을 해 보시게"라고 한다.

젊은이는,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하고 말씀을 드리다가 문득, 항아리를 옮긴 일이 생각이 나서 잠깐 사이에 일어난 일을 소상히 말씀드렸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선생께서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시고는 혼잣말로 말씀하시길,

'수백, 수천의 죽을 생명(生命)을 살리었으니, 어찌 하늘인들 감응(感應)이 없을 수 있겠는가!' 하시더니, 다시 젊은 선비에게 이르기를, "자네는 이번 과거에 꼭 급제를 할 것이니 아까 내가 한 말은 마음에 두지 말고 한양에 올라가 시험을 치르시게" 하고는, 젊은 선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고 주막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과연 이 젊은 선비는 토정(土亭) 선생의 말씀대로 과거에 응시하였고, 장원(壯元)으로 급제(及第)를 하였다 한다.

상(相)도 마음에 의해 뒤바뀌게 되는 것이다. 다만 그 마음 선(善)을 향해 써야 될 것이다. ?모든 생명체를 소중히 한다면 이로 인한 자신의 상이나 운명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이 분명하다.

작은 일이 이처럼 사람의 운명까지도 바꾸는 일은 많다. 특히 생명을 살리는 선(善)한 마음과 행동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의 선조들은 늘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고 착한 일(생명을 살리는 일)을 주창하고 솔선해왔다. 후손 된 자들은 마땅히 받들고 지켜야 할 의무감이 있는 것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삼불후(三不朽/인간이 살아가는데 썩지 않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하였다.

최상은 그 사람의 덕행이고, 그 다음은 그 사람이 일을 하여 공을 세우는 일이며, 그 다음은 그 사람이 남긴 학문과 저술이다. 비록 오래되어도 없어지지 않으므로 이것을 썩지 않는 것이라 한다. (上有立德.其次有立功.其次有立言.雖久不廢.此之謂不朽 대상유입덕, 기차유입공, 기차유입언 수구불폐 차지위불후)

장상현/ 인문학 교수

2020101301000791400027401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세종시, '영화·드라마' 촬영 명소로 간다
  2. 아산시 어의정로 교차점 광장 준공
  3. 교육행정 몰리고 시설직은 주춤…교육청 공채 경쟁률 '온도차'
  4. [대전 전통산업 특화거리의 새로운 미래를 그리다] ①대전 전통산업과 특화거리의 탄생과 번영…그리고 존폐의 기로
  5. 두 자녀 태우고 만취운전 30대 사고까지…여름철 엄격 단속 필요
  1. 창업기업 74곳에 최대 4억원 '대전 창업기업 들썩'
  2. 폐현수막의 변신은 ‘무죄’
  3. K리그 휴식기, 대전 서포터즈는 '청소' 중?… "승리의 기운을 줍습니다"
  4. 우송대 응급구조학과 학생들, ‘실무능력 UP’
  5. 천문연구원, 희귀 왜소신성 발견…공전주기 짧아 중요 연구대상

헤드라인 뉴스


대전 보건소 인력부족에 `허덕`…전국 광역시 중 가장 적어

대전 보건소 인력부족에 '허덕'…전국 광역시 중 가장 적어

대전시민의 당뇨와 비만의 만성질환 관리부터 감염병 예방과 임산부·아동 건강을 살피는 보건소가 인력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인구 1만 명당 보건소에 근무하는 인력을 비교한 결과 대전은 부산의 절반 수준이고, 대구와 광주, 울산, 인천보다 적어 시민 건강을 담당하는 보건소 인력 배치가 가장 적은 광역시로 파악됐다. 22일 지역 의료계에 따르면 대전의 5개 보건소에 근무하며 시민의 공공보건 의료를 뒷받침하는 인력이 광역시 중에서 가장 적은 상황이다. 2024년 말 지역보건의료기관총람 기준으로 대전 5개 보건소 근무 인원은 총 540명으로..

두 자녀 태우고 만취운전 30대 사고까지…여름철 엄격 단속 필요
두 자녀 태우고 만취운전 30대 사고까지…여름철 엄격 단속 필요

대전에서 어린 자녀 2명을 태우고 만취 상태로 운전하다 교통사고를 낸 30대 여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음주운전 사고 증가가 우려되면서 단속 강화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22일 대전서부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상과 음주운전 혐의로 30대 여성 A 씨를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A 씨는 21일 오후 8시 40분께 대전 서구 변동의 한 오거리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운전하다 사고를 낸 혐의를 받고 있다. A 씨는 신호를 위반해 좌회전하던 중 맞은편 도로에서 우회전하던 승용차와 택시를 잇따라 들이받은..

[기획시리즈] ①대전 전통산업과 특화거리의 탄생과 번영…그리고 존폐의 기로
[기획시리즈] ①대전 전통산업과 특화거리의 탄생과 번영…그리고 존폐의 기로

대전 중구 중촌동 맞춤패션거리와 정동 인쇄거리, 원동 한복거리 등 과거 대전을 상징하던 유서 깊은 산업 자산들이 중대한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자구책 마련을 위해 붙여진 특화거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급격한 산업 구조 변화와 유통 시스템 현대화 속에서 경쟁력을 잃어간 채 존폐의 기로에 서면서다. '생산의 효율화'란 거대한 산업 발전 흐름이 오늘날 현대 사회의 모든 가치를 장악하고 있지만, 지역의 고유한 숨결과 정체성이 담긴 전통산업의 흔적이 미래세대에 적절히 계승돼야 마땅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낡은 산업의 미래를 새..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폐현수막의 변신은 ‘무죄’ 폐현수막의 변신은 ‘무죄’

  • 우송대 응급구조학과 학생들, ‘실무능력 UP’ 우송대 응급구조학과 학생들, ‘실무능력 UP’

  • 민선 9기 대전시장직 인수위 기자회견 민선 9기 대전시장직 인수위 기자회견

  • 하지(夏至)맞은 주말농장 ‘구슬땀’ 하지(夏至)맞은 주말농장 ‘구슬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