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불친절한 희곡은 상상력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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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칼럼] 불친절한 희곡은 상상력을 만든다

서경동 (극단 헤르메스 연출가)

  • 승인 2021-07-07 16:44
  • 신문게재 2021-07-08 19면
  • 오희룡 기자오희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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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동 연출가
제법 날씨가 더워졌다. 비가 간간이 내리는 시간은 참 여유롭기까지 하다.

연극 공연을 하나 올리고 나면 맥없이 잠만 잔다. 빠르게 속도를 내면서 달려온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피로하다. 오늘은 서늘한 빗소리와 책을 마주하며 앉아 있다. 내 앞에 놓인 책은 희곡이다. 어쩔 수 없다. 나에게는 그 어떤 문학보다 희곡이 가장 재미있으니까. 그 안의 텍스트가 판도라의 상자처럼 열리면 보물을 하나 발견한 것처럼 유레카를 부르곤 한다. 그 재미로 주변 친구들에게 가끔 특별한 날 희곡을 선물하기도 하지만 영 반응들이 좋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희곡은 불친절하다. 소설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낯선 문학이다.

희곡은 무대 공연을 목적을 만든 대본이다 보니 대사 글과 행동에 대한 기록만 있다. 그리고 좁은 무대에 올려지기 위해서 쓰이기 때문에 공간 제한된다. 좁은 무대에서 다양한 환경과 장소를 보여주는 것에 한계가 있다. 또한 인물이 너무 많아도 안 된다. 전쟁의 상황을 보여 주더라도 수십 명의 궁중이나 전투 장면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희곡은 행동의 축약의 글이다. 그 축약된 행동 기록으로 한 줄의 대사에서 행동을 표현한다. 무슨 분위기인지, 어디로 움직이는지, 그리고 감정과 기분까지 만들어내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무대 공연이 목적인 희곡은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제약이 만드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어 무대에 올려지는 것이 희곡의 매력이다. 그래서 희곡은 읽는 사람의 상상력이 필수이다.

희곡은 비극, 희극, 희비극으로 나눌 수 있다.

'비극'은 아리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말한 것과 같이 주인공이 불행하게 끝을 맺는 극에서 공포와 연민을 통하여 감정의 정화(淨化)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정화의 감정에서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한다. 여기서의 카타르시스(catharsis)는 보편적으로 우리가 쓰고 있는 개념과는 조금 다르다. 주인공을 통한 비극을 보며 나에게는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안도감과 주인공의 처절한 감정에서 느끼는 감정 이입으로부터 오는 감정 해소 등으로 말할 수 있다.

'희극'은 경쾌하고 재미있는 다양한 인물을 통하여 인간성의 결점이나 사회의 풍자를 드러내고, 웃음 속에 갈등을 해소하여 행복으로 끝나는 극이다. 희극은 웃음이라는 효과를 통해 인간 사회의 모순과 비리를 비판하고 바로잡는 기능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희비극」은 위의 비극과 희극을 넘나들며 비극과 희극을 융합시킨 작품을 가리키는 말이다. 비극처럼 보이기도 희극처럼 보이기도 하며, 그 안에 웃음을 수반한 비극을 보여준다.

난 이중 희비극을 좋아한다. 대표적으로 부조리(이치에 맞지 아니하거나 도리에 어긋남) 작품을 말할 수 있는데 유명한 희곡 작가로는 사뮈엘 베케트(Samuel Beckett)의 '고도를 기다리며', 외젠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들로, 2차 세계대전 뒤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함을 작가들은 고발하고 있다. 내가 부조리 작품을 좋아하는 것은 행위적인 글보다 대사 중심의 텍스트가 주는 맛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위의 두 작가는 희곡 안에 반복되는 대사의 나열로 얼핏 보면 서로가 어떠한 대사를 주고받는지 의문투성이인 텍스트로 표현한다. 서로가 소통되지 않고 무엇을 결론짓지 않는 반복되는 그 일상들은, 지금 우리의 삶과도 다르지 않는 사회상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행위의 글이 별로 없다는 것은 희곡을 읽는 대상자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한다. 나로서는 텍스트 안 판도라 상자의 열쇠를 찾으며 움직임을 만들기에 좋은 작품이다. 무엇보다 우리의 일상과 사회는 부조리함으로 가득 차 있으니 말이다.

희곡 한 편을 읽어 보시라고 권해 드리고 싶다. 그리고 그 작품이 말하는 무언가를 찾길 바란다. 읽은 희곡의 공연을 관람해 보는 것도 좋다. 나의 상상력과 공연을 만든 이의 상상력을 비교하며 희곡의 재미를 맘껏 느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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