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 홍시, 어른의 맛

  • 오피니언
  • 오늘과내일

[오늘과 내일] 홍시, 어른의 맛

송미나 대전중앙청과 대표

  • 승인 2021-10-24 10:46
  • 신문게재 2021-10-25 19면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송미나 중앙청과 대표
송미나 대전중앙청과 대표
추석이 지나도 한동안 따뜻하던 날씨가 갑작스럽게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졌다. 11년 만에 10월 한파 특보가 내려진 날씨 탓에 시장 상인들도 옷깃을 여미고 경매를 하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깊어지는 가을과 함께 농산물 도매시장에는 여름 내내 묵직한 존재감을 보이던 수박이 사라지고 아이들이 좋아하면서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샤인머스켓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추석 때 보이던 홍로는 사라지고 어느새 사과의 왕인 부사가 존재감을 빛내고 있다. 그리고 이제 대표적인 겨울과일이라 할 수 있는 감귤도 노오란 자태를 뽐내고 있다. 하지만 오늘 나의 눈을 사로잡은 건 경매장 작은 한켠에 조용히 자리 잡은 홍시이다.

홍시는 생감의 떫은맛이 자연적이거나 인위적인 방법으로 제거되어 단맛이 강해지고 말랑말랑해진 상태를 의미한다. 연시는 물렁물렁하다고 하여 연시라 부르고 홍시는 붉다고 하여 홍시라고 부른다. 일반인들에게 홍시는 반시와 대봉시로 알려져 있다. 반시는 조금은 납작한 편원형이 모양에 담홍색의 주홍빛이 나며 아이들 주먹만 하고, 대봉시는 전반적으로 끝이 뾰족하면서 길쭉한 타원형의 모양에 담홍색보다 더 붉은빛이 강하고 남자 어른 주먹보다 크다. 달콤한 맛의 홍시는 숙취를 풀어주고 소화를 돕는 작용을 한다.

하지만 요즘의 대세인 샤인머스켓이나 11월 초부터 나오기 시작하는 딸기에 비해 아이들이 선호하지 않는 과일이 홍시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홍시의 향과 질감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면 하늘빛을 담은 투명함 속에 탱글탱글한 포도 알알이 풍성한 달콤함으로 승부하는 샤인머스켓이나 우선 향으로 유혹하고 톡톡 터지는 달콤상콤함으로 승부하는 딸기에 홍시는 애당초 아이들의 입맛을 사로잡기에는 태생적인 어려움이 있는지도 모른다.



코로나19 이후로 못 만났던 손자가 모처럼 놀러온다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일을 사러 나오셨다는 한 어른신께서 아직 경매장 한켠에 있던 홍시를 보시고는 홍시가 정말 맛나 보인다며 반가워하신다. 어른신은 아이들의 위한 샤인머스켓과 감귤 그러더니 잠시 망설이시는 듯 하더니 홍시 몇 개를 담으시면서 이거는 우리 신랑이랑 같이 먹어야겠다면서 함박웃음을 지으신다.

어르신을 보는데 갑자기 엄마가 생각이 나는 건 '홍시가 열리면 울엄마가 생각나고 홍시가 열리면 울엄마가 그리워진다'는 노래가사 때문인지, 코로나19로 인해 소홀해진 발걸음으로 인한 미안함 때문이지 잘 모르겠다. 잠시 짬을 내어서 대봉시를 한 상자 들고 엄마 집으로 향했다.

잘 익은 대봉시를 보시더니 벌써 홍시가 나왔냐면서 좋아하시는 엄마의 얼굴이 홍시만큼 발갛다. 홍시가 열리면 울엄마가 생각난다는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돌아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괜찮다는데도 기어이 너도 하나 가져가라면서 주신 홍시를 집에 와서 맛보았다. 떫은 듯한 첫 느낌은 순식간에 달콤함으로 시원한 한입은 어느새 따뜻함으로 바뀌어서 부드럽게 목으로 넘어간다. 나도 이제 홍시의 맛을 아는 나이가 된 것 같다. 신기하게 쳐다보는 아들에게 한입을 권했으나 "으 이게 무슨맛이야" 하면서 줄행랑을 놓는다. 나는 살짝 웃으면서 혼잣말을 했다. 아들아! 이게 어른의 맛이란다.

생각해보니 홍시는 서리가 한 번 내려야 맛이 깊어진다. 우리의 삶도 미리 예측하고 앞뒤 균형을 맞추려 부단히 노력하지만 제대로 성공해본 적이 거의 없다. 홍시의 맛은 이러한 인생의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이거나, 찬서리 나무 끝에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세월의 여유를 가진 이들이 맛을 알 수 있게 만든 자연의 오묘함이 아닐까? 10월이 다 가기전 빠알간 햇 홍시 하나 놓고 어른의 맛을 아는 이와 홍시를 먹으면서 따뜻한 담소를 나누고 싶은 가을날이다.

송미나 대전중앙청과 대표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중앙로지하상가 비대위, 대전시에 공청회 요구... 경쟁 입찰 조회수 부풀리기 의혹 제기도
  2. [대전다문화] 열대과일의 나라 태국에서 보내는 여름휴가 ? 두리안을 즐기기 전 알아야 할 주의사항
  3. 중앙로지하상가 비대위, 대전시에 공청회 요구
  4. 약국 찾아가 고성과 욕설 난동 '여전'…"가중처벌 약사폭력방지법 시행 덜 알려져"
  5. [인터뷰] 송호석 금강환경청장 "대청호 지속가능 관리방안 찾고, 지역협력으로 수해 예방"
  1. [대전다문화] 7월 17일 '제헌절', 대한민국 헌법이 태어난 날입니다
  2. [대전다문화] 세계 일회용 비닐봉투 없는 날
  3. 설동호 대전교육감 새 특수학교 신설 추진할까 "적극 검토"
  4. 충남대 동문 교수들 "이진숙 실천형 리더십… 교육개혁 적임자"
  5. 제6회 인천국제해양포럼, 7월 3일 송도서 개막

헤드라인 뉴스


이재명 대통령, 4일 취임 후 첫 대전 방문 ‘타운홀미팅’

이재명 대통령, 4일 취임 후 첫 대전 방문 ‘타운홀미팅’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취임 후 처음으로 대전을 방문한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대전 유성구 도룡동 대전컨벤션센터에서 ‘국민소통 행보 2탄, 충청의 마음을 듣다’를 주제로 타운홀 미팅 시간을 갖는다. 국민의 현장 목소리를 듣고 자유롭게 토론과 질문을 하는 자리로,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비롯해 과학기술인 등 3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번 미팅은 사전에 참석자를 선정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전날인 3일 오후 2시 대통령실 홈페이지를 통해 행사 일정을 공개하고 행사 당일 현장에서 선착순으로 300여 명을 참석시킨..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41. 대전 서구 가장동 돼지고기 구이·찜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41. 대전 서구 가장동 돼지고기 구이·찜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트로트 신동 김태웅, 대전의 자랑으로 떠오르다
트로트 신동 김태웅, 대전의 자랑으로 떠오르다

요즘 대전에서, 아니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초등생이 있다. 청아하고 구성진 트로트 메들리로 대중의 귀를 사로잡고 있는 대전의 트로트 신동 김태웅(10·대전 석교초 4) 군이다. 김 군이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건 2년 전 'KBS 전국노래자랑 대전 동구 편'에 출연하면서부터다. 당시 김 군은 '님이어'라는 노래로 인기상을 받으며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공중파 TV를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 김 군은 이후 케이블 예능 프로 '신동 가요제'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김 군은 이 무대에서 '엄마꽃'이라는 노래를 애절하게 불러 패..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취약계층을 위한 정성 가득 삼계탕 취약계층을 위한 정성 가득 삼계탕

  • 대통령 기자회견 시청하는 상인들 대통령 기자회견 시청하는 상인들

  • 의정활동 체험 ‘재미있어요’ 의정활동 체험 ‘재미있어요’

  • 도심 열기 식히는 살수차 도심 열기 식히는 살수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