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낙엽을 밟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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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칼럼] 낙엽을 밟으며

김명순(대전문인총연합회장)

  • 승인 2021-11-24 16:51
  • 신문게재 2021-11-25 19면
  • 오희룡 기자오희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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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순 문인협회장
저녁 산책길을 나서는데 가로수 길에 노란 은행잎이 누워있다가 벌떡 일어나 나뒹군다. 은행잎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얼굴들이 그려진다. 낱장의 흑백 사진이 이내 천연색 동영상으로 변하여 이마 위 하늘에 영화관 스크린처럼 나타난다. 갑천을 따라 서쪽으로 걸어간다. 갑천 상류를 따라가다 보면 마음은 고향을 향해 달려간다. 정림보를 지나 노루벌 흑석리로 달려가 두물머리 정방이 마을에서 머뭇거린다. 왼쪽으로 가면 한삼천 벌곡을 지나 대둔산 수락계곡으로 이어지고, 오른쪽 두계천은 금암리 고향 마을을 지나 계룡산 암용추 숫용추 발원지로 이어진다. 고향에서 내려오는 물빛에 얼굴을 비춰보고 강바람을 마시면 엄마 냄새가 나는 듯 행복하다.

산책길에서 매일 만나는 흰뺨검둥오리는 오리발을 내저으며 잠수질하느라 바쁘고, 언제나 홀로 서 있는 쇠백로는 기도하는 수도승처럼 부동으로 서 있다. 사람들이 가을이면 단풍을 찾아간다. 나무들이 오색 찬란한 옷을 벗는 가을 산에서 떨어져 누운 단풍잎을 거울 들여다보듯 보는 까닭은 자신의 삶을 비춰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참 다행이며 행복한 것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분명한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한곳에 머물러 살아도 사계를 여행하며 날마다 다르게 변하는 자연과 동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절의 변화를 모르고 열심히 사는 사람도 가을이 오고 가는 것을 아쉬워한다. 가을이 관조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봄에는 온갖 꽃 빛에 반하고 꽃향기에 흥분하여 춤을 추지만 가을에는 단풍을 바라보다 낙엽을 밟으며 고개 숙인다. 찻잔을 들고 창밖을 내다보며 사색에 잠기는 계절이다.

시인을 가리켜 자연을 관조하는 사람이라 했다. 시인은 사람을 스승으로 삼기보다 자연을 스승으로 삼는다. 자연에 존재하는 생명체에 자기 자신을 비춰보고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이 꽃이 되었다가 낙엽이 되고, 우렁이가 되고 지렁이도 된다. 차에 치여 죽은 고라니가 되어 가슴을 쓸어내린다. 짐승들만 차에 치여 죽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도 병들어 죽는 사람보다 횡사로 세상을 뜨는 사람이 더 많다. 죽는 줄도 모르고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뛰어다니지 말고 천천히 걸어 다녀야 한다. 자연은 뛰어가지 않는다. 시계의 초침처럼 항상 같은 속도로 가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자연을 관조하며 산다면 언어가 아닌 마음이 통하는 삶으로 즐거워할 것이다.



계절을 관조하는 삶을 살다 보면 흐르는 시간을 관조하며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자연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하루의 시간을 여행하는 즐거움도 있다. 아침에 뜨는 해를 바라보고 열심히 일하다가 가끔은 하늘을 걸어가는 해를 바라보면 해가 웃어준다. 아름답게 석양을 물들이며 지는 해를 바라보기도 하고 밤에는 달과 별을 바라보며 독백의 시간을 갖는 일을 가끔 즐기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다. 시간을 관조하는 삶이란 항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하기 위한 경건한 시간을 마주하는 것이다.

혹시 좋은 소식이 있을까 하여 텔레비전 뉴스를 본다. 그런데 뉴스 속에 뉴스가 없다. 인간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소리를 전해주고 있다. 개인마다 자기 의견을 발설할 수 있는 유튜브가 일상화되다 보니 맑은 물을 흐리게 하는 유튜버들이 난무하고 있다. 자연을 관조하는 삶은 미디어로 흔들리는 마음을 정화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가을 낙엽 진 나목의 침묵을 배워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유형이 무형을 낳고 무형이 유형을 낳는다. 관조의 시간이 무형이라면 삶은 유형의 시간이다. 이제 와 관조의 의미를 더듬다 보니 인생의 시간도 저물어간다. 오늘은 배추를 거둔 밭에 나가 마늘을 심어야겠다. 나는 아버지처럼 서서 쇠스랑 질을 하고 아내는 어머니처럼 엎드려 호미질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겨울을 지나 내년 하지까지 남새밭을 지켜줄 마늘을 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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