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감정형(F) 선생님과 사고형(T) 학생들이 서로를 이해하기까지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감정형(F) 선생님과 사고형(T) 학생들이 서로를 이해하기까지

황지연 흥도초 교사

  • 승인 2021-12-09 10:52
  • 신문게재 2021-12-10 18면
  • 조훈희 기자조훈희 기자
황지연(흥도초)
황지연 흥도초 교사.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 '사운드 오브 뮤직'의 마리아 선생님은 어린 시절부터 내가 꿈꾸어 온 선생님의 모습이다. 누군가는 내게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환상일 뿐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이상적인 교사가 되는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아이들의 작은 변화를 포착하는 재능이 있었고, 아이들의 삶이 진심으로 궁금했으며 나의 언어적/비언어적 표현들은 잘 전달되는 강점이 있었다. 난 관계 맺기에 강점을 가진 교사라 생각했었다. 2021년 지금의 아이들을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2021년 3월, 모둠과 학급을 세우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시도해보았지만 무언가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관계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 기분이었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많은 활동을 제공해도 좀처럼 열광하거나 흥분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문제는 딱히 문제라고 꼬집을 행동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학급의 규칙을 잘 지키고 있었고 수업 시간 주어진 활동을 완료했다. 누군가에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학급이었다.

지난 4월 실시한 MBTI 검사에서 사고형(T)과 감정형(F)의 구성원 비가 23:3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의 학급은 감정형(F)과 사고형(T)이 비슷하거나 혹은 감정형(F)이 조금 우세한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제야 난 그동안 이해되지 않았던 아이들의 반응과 행동이 하나씩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예의 바르게 인사는 하지만 표정과 에너지가 없는 아이들의 모습, '인사를 하는 행위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인사를 통해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구나.'

이어진 나의 고민은 '아이들의 행동이 잘못된 것인가?'의 문제였다.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지 않고 친교의 표현에 소극적인 것이 가르쳐야 하는 영역인가 하는 문제 말이다. 하루는 교실을 청소하며 분리수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모습을 발견하고 사진 찍어 아이들에게 문자로 전송했다. 오늘은 너희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선생님이 청소하는 것이 조금 힘들다는 메시지와 함께.

답장은 바로 날아왔다. 놀랍게도 26명의 아이들 중 '죄송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긴 답장은 하나도 없었다. '제가 한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는 분리수거를 잘하겠습니다.'라는 답장들로 가득했다. 이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나는 동학년 사고형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이라면 이 문자에 어떻게 답장하시겠어요?"라고 질문하자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다. 자신이 분리수거를 잘못하지 않았다면 죄송하다고 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죄송하다고 말하는 순간, 그 쓰레기는 내가 버린 것이 된다라는 생각지도 못한 이유였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 옳고 그름의 가치가 말과 행동의 기준이 된다고 이야기해주셨다. 이후에도 이해되지 않는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애써 이해하는 척 넘어가곤 했다.

결국, 나의 서운함은 10월 28일 울음과 함께 터져버렸다. 1년의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친밀함을 느낄 수 없었던 아이들을 향한 서운함이었다. "선생님은 이제 너희들과 마음을 나누는 일을 하지 않겠어. 선생님으로서 해야 하는 수업은 최선을 다해 할 거야. 하지만 더 이상 너희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은 하지 않을 거야. 상처받고 싶지 않아."

차가운 공기가 흐르는 교실에서 3주의 시간이 흘렀다. 11월 17일, 수업을 마치고 두명의 친구가 내게 편지를 건넸다. 우리 반 친구들의 글을 모은 편지에는 그토록 듣고 싶었던 아이들의 진심이 꾹꾹 담겨 있었다. 그리고 11월 22일, 월요일 난 아이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최소한의 선생님, 학생의 역할을 다 하는 것만으로는 행복한 학급을 만들 수 없음에 동의했고 서로의 노력이 필요함을 인정했다.

이제 아이들은 아침이면 배에 힘을 주고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하려 노력한다. 쉬는 시간이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려 노력한다. 그 변화의 노력이 고맙기만 하다. 교사인 나도 아이들의 반응을 오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혼자 서운해하지 않으며 대체할 수 있는 말과 표현을 가르친다.

함께 할 날을 20여일 앞둔 요즘, 하루하루 시간이 가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서로를 이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아이들이기에 시간이 쌓아 올린 관계의 굳건함이 내겐 더욱 특별하다.

황지연 흥도초 교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갑천 야경즐기며 워킹' 대전달빛걷기대회 5월 10일 개막
  2. 수도 서울의 높은 벽...'세종시=행정수도' 골든타임 놓치나
  3. 충남 미래신산업 국가산단 윤곽… "환황해권 수소에너지 메카로"
  4. 이상철 항우연 원장 "한화에어로 지재권 갈등 원만하게 협의"
  5.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1. 충청권 학생 10명 중 3명이 '비만'… 세종 비만도 전국서 가장 낮아
  2. 대학 10곳중 7곳 올해 등록금 올려... 평균 710만원·의학계열 1016만원 ↑
  3.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4. [춘하추동]삶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5. 2025 세종 한우축제 개최...맛과 가격, 영양 모두 잡는다

헤드라인 뉴스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이제는 작업복만 봐도 이 사람의 삶을 알 수 있어요." 28일 오전 9시께 매일 고된 노동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주는 세탁소. 커다란 세탁기 3대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노동자 작업복 100여 벌이 세탁기 안에서 시원하게 묵은 때를 씻어낼 때, 세탁소 근로자 고모(53)씨는 이같이 말했다. 이곳은 대전 대덕구 대화동에서 4년째 운영 중인 노동자 작업복 전문 세탁소 '덕구클리닝'. 대덕산업단지 공장 근로자 등 생산·기술직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일반 세탁으로는 지우기 힘든 기름, 분진 등으로 때가 탄 작업복을 대상으로 세탁한다...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올 시즌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프로야구 한화이글스가 9연전을 통해 리그 선두권 경쟁에 돌입한다. 한국프로야구 10개 구단은 29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휴식 없는 9연전'을 펼친다. KBO리그는 통상적으로 잔여 경기 편성 기간 전에는 월요일에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프로야구 5경기가 편성했다. 휴식일로 예정된 건 사흘 후인 8일이다. 9연전에서 가장 주목하는 경기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 승부다. 리그 1위와 3위의 맞대결인 만큼, 순위표 상단이 한순간에 뒤바..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생이 교직원과 시민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부리고, 교사가 어린 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28일 오전 8시 33분쯤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 2학년 A(18) 군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4명과 행인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A 군을 포함한 모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이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이지만, 학부모 요구로 일반학급에서 공부해 왔다. 가해 학생은 사건 당일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 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

  •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