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제143강 氣過必禍(기과필화)

  • 오피니언
  • 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제143강 氣過必禍(기과필화)

장상현/인문학 교수

  • 승인 2022-11-08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제143강: 氣過必禍(기과필화) : 기(氣)가 지나치면 반드시 화(禍)를 입는다.

글 자 : 氣(기운 기), 過(지날 과/ 지나치다), 必(반드시 필), 禍(재화 화)

출 처 : 조선명인전(朝鮮名人傳), 한국의 인간상(韓國의 人間象)

비 유 : 너그럽고 온화한 성품을 장려하거나 권장할 때



조광조(趙光祖/ 1482 ~ 1519)와 남곤(南袞/ 1471 ~ 1527)은 조선 중기 대표적인 개혁세력(新進士類)과 보수세력(勳舊派)이다.

그들은 어려서 서당에 다닐 때부터 십여 년의 나이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친한 사이였다.

두 사람의 총명과 슬기는 스승을 늘 흐뭇하게 하였다. 그들이 과거를 눈앞에 두고 학문에 열중하고 있던 어느 날 머리를 식히기 위해 가까운 산으로 산책을 나갔다.

산으로 가는 길에는 아리따운 아가씨가 지나가고 있었다. 조광조는 그 처녀를 보는 순간 공연히 가슴이 뛰고 얼굴이 상기 되었다. 마음은 괜히 부끄러우면서도 시선은 줄곧 처녀들에게 쏠려 있었다.

'내가 왜 이러지? 앞으로 해야 될 공부가 많고, 어머니 말씀대로 나라의 동량이 되어야 할 텐데…….'

조광조는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 마음이 약해서는 안 되지, 장차 어쩌려고…….'

조광조가 마음고생으로 뒤쳐져 걷는 동안 남곤은 저만치 앞서서 한눈을 팔지 않고, 오직 앞만 바라보면서 걸어갔다. 조광조는 걸음을 빨리 하여 남곤을 따라갔다.

'역시 남곤은 나보다 낫구나, 난 아직도 수양(修養)이 부족한 거야.'

집으로 돌아온 조광조는 어머니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하였다. 아들의 말을 듣고 난 어머니가 말하였다.

"애야, 그건 걱정할 일이 아니다. 네 나이 때에 처녀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란다. 그러니까 그건 잘못이 아니다. 네 또래의 사내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생각이란다."

"어머니 그렇지 않습니다. 저와 함께 간 남곤은 처녀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꼿꼿이 걸어갔습니다." "음, 그랬어?"

"예, 어머니, 남곤은 확실히 저와는 다릅니다."

어머니는 한동안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오늘 밤에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이사를 가야겠다."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이사라니요?"

"아무 말 말고 조용히 이삿짐을 싸도록 해라."

조광조는 갑작스런 어머니의 결정에 어리둥절하였다. 그러나 어머니의 말에 따라 짐을 꾸려 산을 넘어 다른 마을로 이사를 했다.

"어머니 이렇게 야반도주(夜半逃走)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애야, 사람은 자기감정에 솔직해야 한다. 예쁜 처녀가 옆을 지나가면 너 같은 총각이 눈길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남곤은 자기감정을 숨기고 목석처럼 행동했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것만으로도 그 아이가 얼마나 차디찬 사람인지 알 수 있겠다. 사람은 따뜻함과 너그러움이 있어야 되는 것이란다. 엄격함고 꼿꼿함만 가지고는 너그럽고 덕이 있는 사람이 될 수 없단다. 엄히 다스려야 할 때도 있지만, 너그러이 용서하고 관용을 베풀어야 할 때도 있어야 하는 것이란다. 앞으로 남곤은 여러 사람을 피 흘리게 할 것이니,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 참으로 냉혹한 사람이야."

조광조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고개를 숙였다.

훗날 남곤은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치는 동안 실제로 칼날처럼 냉엄한 정치를 했다. 그는 훈구파(勳舊派)의 선봉에서 기묘사화(己卯士禍)를 일으켜 집권자 조광조 등 신진사류(新進士類)를 숙청한 후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까지 올랐다.

조광조는 남곤을 비롯한 보수파들이 국가의 개혁을 막고 있다고 주상에게 공공연히 주청하고 나섰다.

이때 남곤일파는 더 이상 조광조에게 밀릴 수 없다는 판단에서 "목자(이씨왕조)는 이미 쇠퇴하고, 주초(走+肖=趙씨)가 천명을 받는다"로 문구로 바꾸어 '주초위왕(走肖爲王)'이란 허황한 사건을 만들어 썼다. 그래서 조광조는 하루아침에 역신으로 몰려 유배 길에 올랐다가 곧 바로 사사(賜死)되었다.

남곤은 말년에 선비로서 부끄러운 짓을 했다는 사실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스스로 자신의 초고(草稿)를 모두 불살랐는가하면, 자녀들에게는 자신이 죽은 뒤 비단으로 염습(殮襲)하지 말 것과 무덤에 비석을 세우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사람은 인간미(人間味)가 있어야 한다. 너무 맑고 아집(我執)에 사로잡히면 아무도 그를 상대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 '水至淸則無魚 人至察則無徒(수지청즉무어 인지찰즉무도/ 물이 지극히 맑으면 물고기가 없고 사람이 너무 살피면 따르는 무리가 없다)'라 했다. 내 자신을 돌아보고 너무 살피는 행동이 없었는가? 반성해본다.

장상현/인문학 교수

2020101301000791400027401
장상현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구도동 식품공장서 화재…통영대전고속도로 검은연기
  2. 유성복합터미널 공동운영사 막판 협상 단계…서남부터미널·금호고속 컨소시엄
  3. 11월 충청권 3000여 세대 아파트 분양 예정
  4. 대전권 대학 대다수 기숙사비 납부 '현금 일시불'만 가능…학부모 부담 커
  5. 김장 필수품, 배추와 무 가격 안정화... 대전 김장 담그기 비용 내려가나
  1. 대전교육청 교육부 시·도교육청 평가 '최우수'
  2.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 전국 신청률 97.5%… 충청권 4개 시도 평균 웃돌아
  3. 대전대 박물관, 개교 45주년·박물관 개관 41주년 기념 전시회 개최
  4. ‘여섯 개의 점으로 세상을 비추다’…내일은 점자의 날
  5. 최고 1436% 이자 받아챙긴 40대 대부업자 실형

헤드라인 뉴스


CTX 민자적격성조사 통과… 충청 광역경제권 본격화

CTX 민자적격성조사 통과… 충청 광역경제권 본격화

대전과 세종, 충북을 통합 생활권으로 연결하는 대전~세종~충북 광역급행철도(CTX) 사업이 민자적격성 조사를 통과하면서 사업 추진이 본격화 됐다. 4일 국토교통부와 대전시에 따르면 비수도권 최초의 광역급행철도인 대전~세종~충북 광역급행철도(CTX) 사업이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민자적격성 조사를 통과했다. 민자적격성 조사는 정부가 해당 사업을 민간투자 방식으로 추진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절차다. 이번 통과는 CTX가 경제성과 정책성을 모두 충족했다는 의미로 정부가 민간 자본을 유치해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

11월 13일 수능 당일 8시 10분까지 입실해야… 모바일 신분증 `불가`
11월 13일 수능 당일 8시 10분까지 입실해야… 모바일 신분증 '불가'

13일 열리는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당일 수험생은 8시 10분까지 시험실에 입실해야 하며 반드시 수험표와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단 모바일 신분증은 인정되지 않으니 주의가 요구된다. 교육부는 4일 이 같은 내용의 수험생 유의사항을 안내했다. 교육부는 수험생들을 향해 수능 하루 전인 12일 예비소집에 반드시 참여해 수험표를 수령하고 시험 유의사항을 안내받을 것을 당부했다. 수험표에 기재된 본인의 선택과목을 확인해야 하며 시험 당일 시험장을 잘못 찾아가는 일이 없도록 사전에 위치를 파악해 두는 것도 필요하다. 시험 당..

與野 대표 대전서 맞불…지방선거 앞 충청표심 잡기 사활
與野 대표 대전서 맞불…지방선거 앞 충청표심 잡기 사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약 7개월 앞두고 여야 지도부가 잇따라 대전을 찾아 충청 민심 다지기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4일 한남대에서 특강을 했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5일 대전시청에서 예산정책협의회를 주재하는 등 충청권에서 여야 대표가 맞불을 놓는 모양새다. 거대 양당 대표의 이같은 행보는 내년 지방선거 최대 격전지로 떠오른 금강벨트에서 기선을 잡기 위한 전략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5일 대전시청에서 충청권 '지역민생 예산정책협의회'를 열고 내년도 국비 확보 현황과 주요 현안을 점검한다. 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돌아온 산불조심기간 돌아온 산불조심기간

  • 전국 최고의 이용기술인은? 전국 최고의 이용기술인은?

  • 빨갛게 물들어가는 가을 빨갛게 물들어가는 가을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