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제184강 면수화의(棉授花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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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제184강 면수화의(棉授花衣)

장상현/ 인문학 교수

  • 승인 2023-10-17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제184강: 棉授花衣(면수화의) : 목화는 꽃과 옷을 제공하여 준다.

글 자 : 棉(목화 면), 授(받을 수), 花(꽃 화), 衣(옷 의)로 구성된다.

출 처 : 한국인의 지혜(韓國人의 智慧). 조선 오백년 야사(朝鮮 五 百年 野史)

비 유 : 두 가지를 다 이롭게 해주는 경우를 비유한다.





벌써 10월이 중순을 넘어서고 있다. 절기로는 한로(寒露)가 지나고 상강(霜降)을 맞는 계절이다. 이 때만큼 좋은 계절도 없는 듯하다. 날씨는 춥지도 덥지도 않고, 들판에 황금물결을 비롯한 오곡백과(五穀百果)가 주인의 거둠을 기다리고 있다. 이어 주위에는 청명한 하늘과 맑은 물, 그리고 단풍 등이 마냥 즐거움을 토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옛 문헌에 한로의 초후(初候/한로부터~ 5일)에는 기러기가 와서 머물고, 중후(中候/5일~10일)에는 참새의 수가 줄고, 말후(末候/10~15일)에는 국화(菊花)가 노랗게 핀다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이 계절은 얻음과 맑음을 즐기며 서서히 겨울을 준비하는 시기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예로부터 지혜(智慧)로움과 청렴(淸廉)함을 생활상 으뜸의 가치로 여겨왔다. 이제 가을의 결실을 접해 지혜로움과 풍요로움을 생각하며 마냥 행복한 때만 기억하고 싶다.

조선 영조(英祖)의 비(妃) 정성왕후(貞聖王后)가 별세하여 3년 상(三年喪)을 치르자 영조가 직접 새로운 중전을 간택(揀擇)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기라성(綺羅星)같은 사대부(士大夫)의 규수(閨秀)들을 차례로 둘러보는데, 한 규수가 자기 아버지 성함을 적어 표시해놓은 방석을 피해 맨바닥에 앉아 있었다.

이상히 여긴 영조가 물었다.

"어찌하여 그대는 방석에 앉지 않고 맨바닥에 그리 앉아 있는가?"라고 묻자

"네!, 비록 종이에 쓴 것이라고는 하오나 아버지의 존함이 맨땅 위에 있는데 제가 어찌 감히 방석 위에 앉을 수 있겠습니까?"

왕비(王妃)를 간택할 때는 그 규수가 뉘 댁의 딸인지 알아보기 쉽도록 저마다의 방석머리에 아버지의 명패(名牌)를 두었는데 그를 두고 한 말이었다. 영조는 그 규수의 사려 깊은 행동에 감탄했다.

영조가 다시 여러 규수들에게 시험하여 물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깊은 것은 무엇인가?"

이에 어떤 규수는 산골짜기가 가장 깊다 하고, 어떤 규수는 물이 가장 깊을 것이라 하는 등 대답이 구구했으나 유독 조금 전의 그 규수만이 다르게 말했다.

"사람의 마음이 가장 깊습니다." 임금께서 "무슨 이유인가?"라고 묻자

"사물의 깊이는 자로 잴 수가 있으나 사람의 마음은 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조가 또 물었다.

"그럼 세상에서 가장 좋은 꽃은 무엇인가?"

어떤 규수는 복숭아꽃이 좋다 하고, 혹은 모란꽃이 좋다 하고, 혹은 해당화가 좋다고 하는데, 그 규수만은 또 달랐다.

"목화 꽃이 가장 좋습니다." 영조가 그 까닭을 물었다.

"다른 꽃은 한 때만 보기 좋으나 목화 꽃은 피었을 때에는 꽃이 좋고, 나중에는 솜이 되거나 무명베가 되어서 세상 사람들을 따뜻하게 해주니 좋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지혜로운 대답을 들은 영조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를 중전으로 맞으니 바로 그분이 정순왕후(貞純王后)이시다.

그 규수가 대궐로 들어가니 그녀의 의상을 만들기 위하여 상궁이 나인에게 치수를 재라 했다. 그러자 상궁에게 무례함을 지적하여 말하였다.

"내가 이제 중전이 될 몸이니 상궁이 직접 재어야 되지 않는가?"

그 때가 그녀의 나이 겨우 15세 때의 일이었다.

훗날 정조(正祖)가 이 일을 상기하여 조관(朝官)들에게 화부화(花復花/ 꽃이 진 뒤에 또 꽃이 된다)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채제공(蔡濟恭) 한 사람만이 '목화(木花/목화는 꽃이 진 뒤에도 솜이 되어 꽃처럼 보인다)'라고 맞혔다 한다.

15세의 어린 소녀가 이처럼 깊이 있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지엄하신 임금 앞에서 당당히 자기 소신을 명확히 밝히는 지혜와 용기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지금 이 시대의 여인들의 지혜는 조선시대의 여인네들보다 더욱 총명(聰明)을 더 한다. 그 이유는 문명과 과학의 발달이 지속적으로 누적되고 전수되어 인간의 생각과 사고(思考)를 한 차원 높고 깊게 발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쩐지 요즈음은 진실보다는 포장(包藏)에 신경을 더 쓰는 듯하여 씁쓸하다. 겉 모습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풍조가 짙기 때문이다.

겉치레보다 진실을 추구했던 어린 소녀의 지혜!

이러한 지혜들이 모아지고 존숭(尊崇)되어 실현되었으므로 조선이 오백년이란 긴 세월동안 깊고 아름다운 문화의 숨결이 살아있었던 이유가 아니겠는가!

서양의 문명에 이미 젖어있는 물질만능(物質萬能)과 금전(金錢)과 재물(財物)이 최우선으로 취급받는 세상에서 마음속의 진실과 타고난 지혜로움을 통해 내적으로 살찌고 풍요로운 옛 정서(情緖)의 나라로 회귀(回歸)하여 오랫동안 이어갔으면 한다.

마치 15세 소녀가 마음에 간직한 진실된 지혜를 소신껏 주장하고, 상대는 이를 높이 평가하여 받아들인 것처럼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를 이루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장상현/ 인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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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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