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증오 정치의 희생양이 돼버린 대전시의 제도적 자산

  • 오피니언
  • 세상보기

[세상보기]증오 정치의 희생양이 돼버린 대전시의 제도적 자산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 승인 2023-11-09 14:31
  • 신문게재 2023-11-10 19면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정치권에 대한 국민 불신의 원인을 '반사이익 구조'에서 찾는 한 정치인의 진단이 눈길을 끈다. 반사이익 정치구조는 양당 이외의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상대방이 잘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이 못했을 때 내가 이익을 보는 구조를 의미한다. 이런 구조에서 상대방이 좀 더 나쁘고 무능력하다는 프레임을 씌울 수만 있다면 선거에 이긴다는 생각에 국민의 '문제해결 경쟁'이 아니라 '증오 경쟁'에 집착한다. 승자독식의 규칙까지 더해지면서 죽기 살기로 전개되는 증오 경쟁은 승자의 보복 정치로 이어진다. 보복은 사람뿐만 아니라 정책과 제도를 향한다. 객관적 타당성과 필요성과 무관하게 패자의 정책과 제도는 설 자리를 잃는다. 선거 승자의 편협하고 권위주의적인 개인적 특성까지 더해지면 보복 정치는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좋은 정책과 제도 파기로 인한 기회비용과 매몰비용은 증폭된다.

민선 8기 대전시정의 전개는 반사이익 구조에 의한 증오와 보복 정치의 적나라한 적폐를 그대로 보여준다. 작년 6월 치러진 제8대 지방선거는 정책경쟁이 실종되고 시종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깎아내리기로 일관하면서 반사이익 구조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120여만 대전시 전체 유권자 중 51%가 투표장을 찾지 않았다. 개표 결과 전체 투표자의 51.2%인 31만 표를 획득한 이장우 후보가 당선되었다. 전체 대전시 유권자 4분의 1의 지지만으로 당선자가 권력을 잡은 셈이다. 낙선 후보에게 투표한 49%의 시민과 기권한 51%의 전체 유권자를 고려한다면, 당선자는 기존 정책을 손보는데 신중한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 하지만 이장우 시장은 충분한 공론과 검토 과정 없이 자신만의 이념적 잣대로 대전시가 키워온 대표적인 제도와 정책을 재단하고 폐기하면서 적나라한 보복 정치 수순을 밟아왔다.

주민참여예산제가 대표적이다. 2014년 '지방재정법'에 의해 모든 지방자치단체에 의무화된 주민참여예산제는 전 세계 유수의 도시들이 앞다투어 강화해나가는 제도다. '지방재정법' 제정 이전인 2007년 당시 한나라당 소속 박성효 대전시장이 광역자치단체로는 최초로 도입한 제도이기도 하다. 또한 민선 7기 말 행정안전부 평가에서 최우수 광역자치단체로 선정되면서 많은 지자체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짙은 이념적 색안경을 낀 이장우 시장의 눈에 주민참여예산제는 진보시민단체를 위한 '그들'의 제도로 분류된다. 민선 8기 출범과 함께 이미 배정된 예산액을 반으로 삭감한 것을 시작으로 대전시 주민참여예산제는 200억에서 50억 규모의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주민참여예산제를 가장 잘 운영하는 광역자치단체는 보수의 텃밭인 대구시로 알려져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홍준표 대구시장은 긴축균형 예산을 강조하면서도 170억의 주민참여예산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동 단위 주민참여예산제를 폐지한 대전시와는 달리 대구시는 40억 원의 예산을 여전히 읍면동 참여형 사업으로 배정하고 있다. 대구시의 높은 제도적 성과의 동력으로 중간지원조직인 '대구시마을공동체지원센터'의 현장 지원이 꼽힌다. 센터는 주민들에게 가장 익숙한 읍면동의 의제 발굴을 지원하면서 마을자치 플랫폼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

대전에도 대구시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시민 공동체 활동의 전문 지원기관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쌓아온 '대전시사회적자본지원센터'가 있다. 최근 대전시는 뚜렷한 이유 없이 올해 말 10년 역사의 사회적자본지원센터를 폐쇄하는 결정을 내렸다. 지역공동체 역량 강화와 참여를 통한 사회문제 대응이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핵심 글로벌 의제가 되고 있다. 마을공동체 지원정책을 강화하지는 못할망정 오랜 세월 대전시가 쌓아 올린 지역공동체 활성화의 제도적 자산을 대전시 스스로 파기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고 불행한 일이다. 보수 상징인 대구의 자랑으로 뿌리내린 제도들이 왜 대전에서는 색깔론으로 매도되고 폐기돼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반사이익 구조와 보복 정치의의 덫에서 벗어나 시대정신에 입각한 대전시장의 성숙하고 균형감 있는 리더십을 기대해본다.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당신을 노리고 있습니다”…대전 서부경찰서 멈춤봉투 눈길
  2.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3. 대전·충북 회복기 재활의료기관 총량 축소? 환자들 어디로
  4. 충남도, 국비 12조 확보 위해 지역 국회의원과 힘 모은다
  5. 경영책임자 실형 선고한 중대재해처벌법 사건 상소…"형식적 위험요인 평가 등 주의해야"
  1. 충남도의회, 학교 체육시설 개방 기반 마련… 활성화 '청신호'
  2.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3. 대전동부교육지원청, 학교생활기록부 업무 담당자 연수
  4.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5. 충남권 역대급 더운 여름…대전·서산 가장 이른 열대야

헤드라인 뉴스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전국 4년제 대학 중도탈락자 수가 역대 최대인 10만 명에 달했던 지난해 수도권을 제외하고 충청권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학교를 떠난 것으로 조사됐다. 대전권에선 목원대와 배재대, 대전대 등 4년제 사립대학생 이탈률이 가장 높아 지역 대학 경쟁력에서도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4일 종로학원이 발표한 교육부 '대학알리미' 분석에 따르면, 2024년 전국 4년제 대학 223곳(일반대, 교대, 산업대 기준, 폐교는 제외)의 중도탈락자 수는 10만 817명이다. 이는 집계를 시작한 2007년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인데, 전년인 2023년(10..

꿈돌이 컵라면 5일 출시... 도시캐릭터 마케팅 `탄력`
꿈돌이 컵라면 5일 출시... 도시캐릭터 마케팅 '탄력'

출시 3개월여 만에 80만 개가 팔린 꿈돌이 라면의 인기에 힘입어 '꿈돌이 컵라면'이 5일 출시된다. 4일 대전시에 따르면 '꿈돌이 컵라면'은 매콤한 스프로 반응이 좋았던 쇠고기맛으로 우선 출시되며 가격은 개당 1900원이다. 제품은 대전역 3층 '꿈돌이와 대전여행', 꿈돌이하우스, 트래블라운지, 신세계백화점 대전홍보관, GS25 등 주요 판매처에서 구매할 수 있다. 출시 기념 이벤트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유성구 도룡동 엑스포과학공원 내 꿈돌이하우스 2호점에서 열린다. 행사 기간 ▲신제품 시식 ▲꿈돌이 포토존 ▲이벤트 참여..

서산 A 중학교 남 교사, `학생 성추행·성희롱` 의혹, 경찰 조사 중
서산 A 중학교 남 교사, '학생 성추행·성희롱' 의혹, 경찰 조사 중

충남 서산의 한 중학교에서 남성 교사 A씨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개월간 성추행과 성희롱을 했다는 고소장이 접수돼 경찰이 수사 중이다. 일부 피해 학생 학부모들은 올해 학기 초부터 해당 교사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반복된 부적절한 언행과 과도한 신체접촉을 주장하며, 학교에 즉각적인 교사 분리 조치를 요구했다. 이에 학교 측은 사건이 접수 된 후, A씨를 학생들과 분리 조치하고, 자체 조사 및 3일 이사회를 개최해 직위해제하고 학생들과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했으며, 이어 학교장 명의의 사과문을 누리집에 게시했다. 학교 측은 "서산교육지원청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동구 원도심에 둥지 튼 대전일자리경제진흥원 대전 동구 원도심에 둥지 튼 대전일자리경제진흥원

  •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 늦더위를 쫓는 다양한 방식 늦더위를 쫓는 다양한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