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문산 파고든 동굴, 누가 왜?] ③태평양전쟁 요새화 산물 유력…옛 충무시설 연계도

[보문산 파고든 동굴, 누가 왜?] ③태평양전쟁 요새화 산물 유력…옛 충무시설 연계도

일제 1944년 전국에 방공호, 진지 등 요새화
제주 동굴진지 같은 때 보문산 요새화 가능성
"아쿠아리움 옛 충무시설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

  • 승인 2023-12-12 17:40
  • 수정 2024-02-28 10:48
  • 신문게재 2023-12-13 3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보문산만큼 대전의 역사를 품은 산이 또 있을까. 바위에 새겨진 고려 때 불상부터 시루봉 정상 백제의 성곽 그리고 일제강점기 일본인 별장과 을유 해방기념비가 한 곳에 머문다. 한국전쟁 대전지구 전승비(UN탑)와 남북분단의 망향탑 역시 숲속에 어우러진다. 이런 보문산에 전에 보고된 적 없는 동굴 5개가 최근 잇달아 발견됐다. 정을 치고 화약을 터트려 돌을 나른 흔적이 역력한 이들 동굴은 누가 왜 조성했을지 추적해 본다. <편집자 주>

[보문산 파고든 동굴, 누가 왜?]

3. 일제 방공호, 짙은 그림자

1-9(대전시 중구 대종로 171번길 87-1)
대전 중구 호동의 또다른 동굴이 하늘을 향해 입구가 놓여 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조명을 들고 다시 찾은 대전 중구 호동의 동굴 끝 지점에서 화약 투약구로 보이는 구멍 16개를 발견했다.

무릎 높이부터 사람 머리에 닿을 위치까지 동굴 끝 벽면에 30~40㎝ 간격으로 고르게 뚫려 있었는데 동굴의 다른 벽면에서는 볼 수 없는 흔적이었다. 구멍에 화약을 넣어 금방이라도 터트릴 시점에 작업이 돌연 중단되고 근로자들은 사라진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곳을 왜 만들려고 했을까?

대전 보문산에 최근까지 발견된 동굴 5개를 굴착한 때로 가장 유력하게 제시되는 시기는 1944~1945년 태평양전쟁 패전을 앞둔 일제 강점기 말기다. 제주와 부산, 군산 일원에서 항공기 폭격을 방어하고 전쟁물자를 숨기려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방공호가 여럿 발견되었는데 보문산의 동굴 역시 같은 시기에 조성되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전북 군산대 교정에서 지난해 동굴 6개가 발견됐는데 일제강점기 일본군 무기고로 추정되며, 광주에서도 2021년 5·18역사공원 터에서 일본군이 만든 비행장 추정 지하시설이 발견된 것을 비롯해 2013년 유류저장고와 2021년 군 시설 추정 동굴이 여럿 나왔다. 일제가 태평양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미군의 한반도 공습과 상륙에 대비해 1944년부터 제주와 부산, 군산 등의 군사전략상 중요 지역에 동굴과 진지, 탄약고, 격납고를 만들어 군사 요새화를 한 바 있다. 다만, 대전에서는 일제강점기 동굴과 진지 등이 공식 보고된 사례가 없어 2015년 문화재청 태평양전쟁 유적 일제조사 때도 대전에 일본군 주둔지터 3곳만 보고됐다.

특히, 조성 시점을 명확하게 판단하지 못한 채 현재 아쿠아리움 관람시설로 사용 중인 옛 충무시설과 같은 시점에 조성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옛 충무시설의 대형 동굴은 내부 길이가 220m에 이르고 총면적 6000㎡의 U자형태의 지하 공간으로 한때 을지연습 육군전술지휘소로 사용됐으나 조성 주체와 시점을 단정하지 못하고 있다. 일제 말기 총독부 관료를 역임한 인물이 조선 주둔 제17방면군 일본 참모의 말을 인용해 남긴 "남조선이 전장이 될 때 군사령부는 대전으로 전진하는데, 그때 쓰고자 대전공원 중에 대규모 방공호를 파고 종전 시는 회칠만 되어 있었다"라는 기록의 방공호가 옛 충무시설의 동굴을 의미한다는 해석 정도가 최근까지 연구다. 결전을 위한 지하 총사령부를 대전에 위치하려 대규모 지하시설을 조성했다는 주장은 학계에서 논문으로도 발표되었으나 그동안 주변에 관련 부대시설이 발견되지 않아 미완의 연구과제였다.

1-10(대전시 중구 대종로 171번길 87-1)
대전 호동 동굴 입구에서 10m 떨어진 지점에 일본군 화약고로 알려진 시설물이 보인다. (사진=임병안 기자)
보문산에서 발견된 동굴이 옛 충무시설의 지하시설과 근거리에 위치했고, 산을 타고 걸어서 이동할 거리에 있어 같은 시기 조성되었을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일제 말기 주둔 일본군의 대전 주둔과 군사령부 이전 계획' 논문으로 태평양전쟁 말기 대전의 전략적 역할을 분석한 조건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보문산 동굴의 군사적 조성과 사용에 대해 충분한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다. 일본군은 한반도 전쟁 시 사용할 동굴의 굴착, 진지 구축을 실시했고, 여기에 동원된 인력은 병사노무동원의 형태로 이뤄졌는데, 보문산에서도 징용 형태의 동원을 통해 굴착했을 개연성도 제기된다. 제주 등에서 방공호를 구축한 이들 대다수가 노동수단으로 일본군에 끌려온 사람이었다.

조건 연구위원은 "관람시설로 쓰이는 옛 충무시설의 벽면을 관찰했을 때 콘크리트조를 쌓은 방식이 일본군이 다른 곳에 구축했던 지하시설물과 유사한 것을 확인했으나 마감재를 덧칠해 놓은 탓에 정확한 판정은 어려웠다"라며 "보문산에서 새롭게 발견된 동굴이 옛 충무시설과 관련 있는지 충분히 조사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아산시, 국화로 물들다", '제26회 아산시 국화전시회 개최'
  2. 대전 유성국화축제 한창…13만 분 가을꽃 물결
  3. 온통대전, 11월부터 월 최대 9만 1000원 캐시백 받는다
  4. 사라진 일제 대전비행장… 도솔산·남선공원에 지하시설 남아 있을까
  5. 김찬술 대덕구청장 결국 병원행…區의회는 또 원구성 무산
  1. 대덕구의회 사퇴 촉구 빗발치지만 주민소환은 '그림의 떡'
  2. 2026년 육군본부 국정감사
  3. [주말사건사고] 대전서 주택·차량 화재 잇따라…충남선 교통·물놀이 사고로 2명 숨져
  4. 대덕대교 부분 통제 첫 날…차로 통제에 병목현상
  5. 세종시의원 의정비 인상 논란… 요식행위 그친 시민 의견수렴

헤드라인 뉴스


김장 앞두고 배춧값 내렸지만… 농가도 소비자도 웃지 못한다

김장 앞두고 배춧값 내렸지만… 농가도 소비자도 웃지 못한다

본격적인 김장철을 앞두고 배추와 무 가격이 지난해보다 떨어졌지만 생산 농가와 소비자 모두 마냥 반기기 어려운 상황이다. 농민들은 생산비 상승과 농산물 판매가격 하락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걱정하고, 소비자들은 새우젓 등 일부 양념 재료의 가격 급등으로 김장비용 부담을 느끼고 있다. 김장 물가 안정에도 농가와 가계의 서로 다른 고민이 자리한 셈이다. 20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전날 기준 배추 1포기 소매가격은 5463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8% 하락했다. 무도 1개당 2251원으로 7.5% 내..

세종시로 이전하는 `국가기관`… 종사자 주거 안정 대책은
세종시로 이전하는 '국가기관'… 종사자 주거 안정 대책은

중앙행정기관의 대규모 이전을 앞둔 세종시에서 주택 공급에 속도를 내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성공적이고 원활한 이전을 끝마치기 위해선 이전 기관 종사자들의 정주여건 안정화가 필요충분조건이란 판단에서다. 당장 내년 2000여 세대의 임대주택을 비롯해 3년간 1만 세대의 입주가 가시화된 상태인데, 공급 물량을 더욱 확대하고 인허가 기간 단축 등 주택 수급에 힘을 실을 전망이다. 20일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에 따르면 내년 중 법무부와 성평등가족부를 비롯한 27개 중앙행정기관, 종사자 기준 3000명에 육박하는 인원이 세종으로 자..

은행서 잠자는 계좌 3억 4000만개... 장기 미거래 계좌 해마다 `급증`
은행서 잠자는 계좌 3억 4000만개... 장기 미거래 계좌 해마다 '급증'

금융권에서 장기간 거래가 없거나 휴면 상태인 '잠자는 계좌'가 3억 4000만개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금융당국과 금융회사들이 숨은 금융자산을 찾아주고 있지만, 장기 미거래 계좌 등은 해마다 늘고 있다. 20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5년 말 장기 미거래·미청구 계좌와 휴면금융자산 계좌는 총 3억 4191만 개로 나타났다. 2021년 말(2억 6440만개)보다 7751만개(29.3%) 증가했다. 장기 미거래 계좌는 통상 3년 이상 거래가 없는 계좌를 의미한다. 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사람 키보다 높게 쌓인 건설폐기물 사람 키보다 높게 쌓인 건설폐기물

  • 국회 과방위 국감장에 등장한 휴머노이드 국회 과방위 국감장에 등장한 휴머노이드

  • 가을비에 바빠진 발걸음 가을비에 바빠진 발걸음

  • 대덕대교 부분 통제 첫 날…차로 통제에 병목현상 대덕대교 부분 통제 첫 날…차로 통제에 병목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