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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왕산리 왕미마을 석실 전경 사진<제공=창녕군> |
이번 발굴조사는 2024년 국가유산청 매장유산 긴급발굴사업 공모에 선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군은 동양문물연구원에 의뢰해 조사를 진행했다.
◆왕미마을 고분의 특징과 발굴 성과
왕미마을 고분은 왕미(왕묘, 왕뫼)라는 마을 이름을 유래하게 한 상징적 고분으로, 마을 뒤편 야산에 단독으로 축조된 대형 고분이다.
발굴 결과, 이 고분은 비화가야 멸망기(6세기 중엽)에 축조된 횡혈식석실(굴식돌방무덤)로 확인됐다.
석실은 길이 570cm, 너비 230cm, 높이 210cm로 장방형 평면을 하고 있으며, 입구로 이어지는 연도 및 묘도의 길이는 560cm에 달한다.
묘도 구조는 외곽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나팔형 형태를 띠고 있다.
석실 입구는 돌로 막아 폐쇄되었으며, 추가 매장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석실 상부에는 6매의 대형 돌뚜껑이 덮여 있고, 돌뚜껑 위는 점질토와 할석으로 밀봉됐다.
봉분의 규모는 직경 17m, 높이 4.3m로, 가야고분군에서도 대형 고분에 속한다.
◆출토유물의 의미
발굴 과정에서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
토기류(굽이 달린 항아리, 굽다리접시, 뚜껑), 철기류(작은칼, 도끼), 마구류(말띠꾸미개), 조개장식 등이 확인됐다.
특히 가야고분에서 처음으로 청동숟가락이 발견되면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청동숟가락은 삼국시대 고분에서도 매우 드문 유물로, 백제 무령왕릉, 신라 금관총, 청주 신봉동 고분군, 논산 표정리 고분군에서만 일부 출토된 바 있다.
청동숟가락의 발견은 왕미마을 고분이 비화가야 최고 지배층 무덤일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역사적 가치와 중요성
삼국시대 기록에 따르면 비화가야는 555년쯤 신라에 흡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은 왕미마을 고분이 비화가야 멸망기 중심 고분군인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과 달리 단독으로 축조된 고분으로, 신라가 가야를 병합해 가는 과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고있다.
군 관계자는 "왕산리 왕미마을 고분은 비지정 유산으로 그동안 관리받지 못했지만, 이번 공모사업을 통해 조사를 진행하며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며 "앞으로 국비와 도비를 확보해 창녕 지역의 비지정 가야유산 관리에도 힘쓰겠다"고 밝혔다.
창녕군은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지역 내 가야 유산 보존과 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추가적인 유산 발굴 및 관리를 위한 노력을 이어갈 계획이다.
창녕=김정식 기자 hanul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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