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없다고 상처까지 지워졌을쏘냐' 대전3·8민주의거 송병준 옹의 증언

  • 사회/교육
  • 이슈&화제

'기록 없다고 상처까지 지워졌을쏘냐' 대전3·8민주의거 송병준 옹의 증언

1960년 3월 8일 대전고 1학년 시위 동참
골목에서 웅크린 채 경찰에 구둣발 폭행
낯선 사람 경계하고 조명 안켜고 은둔 삶
아들 "3·8 겪은후 정신병원 가족엔 큰 상처"

  • 승인 2025-03-06 17:50
  • 수정 2025-03-07 19:25
  • 신문게재 2025-03-07 3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IMG_2775_edited
대전3·8민주의거 당시 시위에 나섰다가 경찰에 폭행피해를 겪은 송병준 씨가 아들 송재헌 씨의 도움으로 외출하고 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대전지역 학생 1600여 명이 학교 밖으로 뛰쳐나와 부정선거와 부정부패를 규탄한 대전3·8민주의거에서 부상자는 한 명도 없었던 것일까? 지금껏 발견된 당시 사진을 봐도 진압봉을 치켜든 경찰들이 좁은 골목에서 시위 학생들을 힘으로 제압하는 듯한 모습, 학생들이 혼비백산 뛰어가는 장면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으나 정부가 인정한 3·8민주의거 부상자는 0명이다. 하지만 당시 동구 인동 한 골목에서 경찰에 붙잡혀 구둣발 폭행을 당한 송병준(82·대전고 41회) 옹의 그늘진 삶은 우리가 몰랐던 대전3·8민주의거 진압 과정의 폭력성을 말하고 있다.

6일 오전 대전 유성구 수통골의 한 요양원에서 송병준 씨를 만났다. 그는 청력을 대부분 상실해 스케치북에 큰 글씨로 질문을 적으면 문장을 읽고 대화로써 대답했다. 그는 1960년 3월 8일 대전고 여느 학생들처럼 학교 운동장에 모여 함께 밖으로 나가자는 외침과 함께 공설운동장을 향해 나아갔다. 옆에 있는 친구의 팔을 걸어 스크럽을 짜기도 하고 때로는 뛰기도 하면서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인동의 어느 골목에 도달했을 때 친구들이 갑자기 빠르게 흩어지는 동안 그는 사정을 모르고 있다가 정복을 입은 경찰에 붙잡혔다.

송병준 씨는 "싸릿가지를 엮어서 세운 담장으로 가로막힌 골목에서 그곳을 벗어나려 담장 아래로 숨는데 경찰이 내 발을 잡고 잡아당겼고 그때부터 구둣발로 차인 거 같아"라며 "나는 바닥에 웅크린 채 구둣발로 마구 밟혔는데 그때 허리춤에 뼈를 다쳤는지 아야 아야 해"라고 왼손을 들어 왼쪽 허리춤을 하염없이 쓰다듬었다.

송 씨는 유성 본가를 떠나 고등학교를 다니기 위해 대흥동에 있던 친형 집에서 함께 지내는 중이었는데, 3·8의거 당일 송 씨가 어떤 모습으로 귀가했는지 기억하는 증인이 한 명 있다. 충남대병원장을 지낸 송시헌 세종충남대병원 전문의는 중도일보와 통화에서 "그는 저의 삼촌이고 삼촌이 고등학교 다닐 때 저는 초등학생으로 같은 집에서 지냈는데 어느날 늦은 오후에 삼촌이 여러 사람에 부축을 받으며 집에 들어오는데 발을 딛지 못하고 질질 끌려서 들어오시던 게 너무 놀라서 뚜렷하게 기억된다"라며 "삼촌은 이후 한참을 앓아누웠고 학교 다니기 어려워하시던 모습이 기억난다"라고 설명했다.

대전에서 1960년 대전고와 대전상업고, 대전공업고, 보문고 등의 학생들이 민주의거를 일으켰을 때 경찰은 기마경찰을 출동시키고 지프차로 돌진해 학생들을 해산시키려 했다. 또 곤봉과 카빈총을 휘둘러 학생들을 폭행했는데 마침 도로 포장을 위해 가져다 놓은 검은색 콜타르를 뿌리기도 했다. 맞아서 머리에 피가 나거나 쫓기는 중 높은 곳에서 떨어져 부상자가 속출했으나, 드러내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에 스스로 요양하고 상처는 아문 것처럼 보였다. 송병준 씨는 3·8민주의거 이후 학교를 그만두려고 마음먹고 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담임인 조남호 교사가 집에 찾아와 설득한 끝에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10년이 채 되지 않은 1970년 그는 정신질환 치료를 위해 폐쇄병동에 1년 가까이 입원했으며, 그때 허리 부상으로 직업을 갖지 못하고 어려운 시간을 견뎠다. 그는 3·8민주의거 때 경찰 폭행 피해를 2019년에서야 자신의 입으로 말했다. 고 김용재 3·8민주의거기념사업회 회장이 주관해 참여세대 증언 기록집을 만들 때 처음 자신의 경험과 피해를 공개한 것이다.

아들 송재헌 씨는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담장 밖에 사람이 지나가며 담장 안을 본다고 느끼면 몽둥이를 들고 공격적으로 대응하셨고, 신분증 없이는 외출하지 않으시고 신분증을 꼭 손에 쥐고 다니셨다"라며 "집 안에서 불을 밝히지 않고 어둡게 지내셨고, 대문과 방문을 꼭 잠그고 지내셨는데 그때는 왜 그러실까 이해하지 못하다가 2019년 3·8민주의거 때 폭행당한 기억을 말씀하는 것을 듣고서야 마음에 깊은 상처가 있으셨구나 이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국가보훈부는 최근 송병준 씨를 방문해 증언을 영상으로 기록했고, 3·8민주의거기념사업회에서도 '3·8민주의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는 구술 자료집에 그의 인터뷰를 담았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타임월드 매각 검토에 둔산 상권 촉각…백화점 유지 변수
  2. 타임월드 매각 검토에 고용 불안…노조 “안정 보장하라”
  3. 대전 한전 전력연구원 ESS 화재…배터리팩 28개 전소
  4. 행정수도 온통대전 충청 밥상머리 민심 관통 전망
  5. 최재근 일자리진흥원장과 전용석 대전신보재단 이사장 각각 임명
  1. 대전시 지역 첫 방산 소부장 특화단지... 'AX 클러스터' 시정동력 탄력
  2. 허태정 "트램 흔들림 없이 추진" 정상 추진의지 밝혀
  3. 충남 천안·아산 7개 산업단지, 반도체 후공정 특화단지 지정
  4. 천리포수목원, 꽃무릇 개화 시작…추석 절정 맞아
  5. 중부권 최대 민속놀이 대축제…제36회 충남도지사배 민속대제전 성료

헤드라인 뉴스


전국 유일 `식물의회` 대덕구의회 의장 선출 또 무산

전국 유일 '식물의회' 대덕구의회 의장 선출 또 무산

석 달째 '감투 싸움'으로 개점휴업 상태인 대전 대덕구의회가 21일 임시회를 열고 다시 의장 선출에 나섰으나 여야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또다시 무산됐다. 전국 227개 기초의회 가운데 아직까지 원 구성을 마무리하지 못한 곳은 대덕구의회가 유일하다. 민생 현안은 뒷전인 채 의장 자리를 둘러싼 여야 대치가 장기화하면서 주민들이 의회에 근조화환을 보내는 등 지역사회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21일 중도일보 취재결과, 대덕구의회는 이날 오전 제295회 임시회를 열고 전반기 의장 선출을 위한 표결을 진행했으나 단독 후보로 등록한 서미경..

저축성예금 50조원 목전 둔 대전... 은행권 예금 금리 경쟁에 더 오를까
저축성예금 50조원 목전 둔 대전... 은행권 예금 금리 경쟁에 더 오를까

주요 시중은행이 앞다퉈 정기예금 금리를 올리며 금융소비자 모시기에 나서면서 50조 원을 목전에 둔 대전 예금은행 저축성예금 수신 잔액도 크게 오를 전망이다. 최근 시장금리가 오르면서 은행들이 수신 경쟁을 본격화하고 있는데, 정기예금 금리를 3% 중반까지 올리고 있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이날부터 대표적인 정기예금 상품 금리를 0.1%포인트 올렸다. 지난 14일 같은 상품 금리를 최고 0.6%포인트 올린 이후 일주일 만에 추가 인상이다. 이에 따라 1년 이상 2년 미만 만기 예금 금리는 연 3.4%에서 3.5%로 올..

충청권 AI활용 발전비전 전력공급 원활한 확보 시급… 화력발전 의존 장래에 불리
충청권 AI활용 발전비전 전력공급 원활한 확보 시급… 화력발전 의존 장래에 불리

충청권 지자체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방산·바이오·반도체 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려 AI 데이터센터에 투자하고 있지만, 필요한 전력 확보가 주요 현안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충청권은 석탄화력발전 의존도가 높은 데다 송전망과 무탄소 전원 여력이 충분하지 않아 향후 데이터센터가 본격 가동되면 전력 공급에 병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21일 한국전력 대전충남본부와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대전·세종·충남·충북이 AI를 활용한 성장전략에 집중하면서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확대되고 있으나 전력공급이 중요한 현안으로 떠오르고..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지방의회법 제정을 촉구한다’ ‘지방의회법 제정을 촉구한다’

  • 미리 보는 2026 지상군페스티벌…유·무인 복합전투체계 실전 시현 미리 보는 2026 지상군페스티벌…유·무인 복합전투체계 실전 시현

  • ‘풍요로운 추석 명절 보내세요’ ‘풍요로운 추석 명절 보내세요’

  • 차례상 차리기 배우는 어린이들 차례상 차리기 배우는 어린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