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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영 충남대 교수가 펴낸 '허발과 실발' 표지./사진=김승영 교수 제공 |
20세기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이 말은 동양철학의 깊은 샘 속에서 문득 솟구쳐오른다. 그리고 이 말은 마치 조선 성리학자 퇴계 이황의 사유에 응답하듯, 리(理)가 움직이고 발동한다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진다.
김승영 충남대 교수가 최근 펴낸 '허발과 실발'(충남대출판문화원)은 이기론(理氣論)의 오랜 쟁점인 '리발(理發)'에 천착한 책이다. '리가 발동한다'는 주장에 담긴 철학적 깊이를 파고들며, 퇴계와 율곡이 갈라선 사단칠정(四端七情)의 해석에 새로운 빛을 비춘다.
퇴계는 인간 안에 자리한 도덕적 감정, 이를테면 우물가에 기어가는 아이를 보고 달려가는 마음을 '인(仁)이 발동한 것'으로 보았다. 다시 말해, 리가 단순한 설계도나 이상이 아니라, 실제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라는 것이다. 반면 율곡 이이는 이 모든 감정의 움직임을 '기(氣)의 작용'으로 보았다.
이 치열한 논쟁 속에서 김 교수는 "누가 옳은가"보다 더 근본적인 물음을 꺼낸다. '발동한다'는 동사는 정말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는 퇴계의 입장을 '실발(實發)', 율곡의 시각을 '허발(虛發)'로 명명하고, 리의 '움직임' 자체에 주목한다. 정적인 원리로만 인식되던 리가 '동사'처럼 살아 움직인다면, 그것은 철학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일지 모른다.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묻는다. "인간과 사물의 배후에 있는 설계도는 정말 가만히 있기만 하는가?" 이기론을 건축에 비유하면,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리는 설계도요, 기는 자재에 해당한다. 그러나 『허발과 실발』은 리 또한 움직이고, 발동하며, 인간의 삶과 감정 속으로 스며든다고 말한다. 설계도가 삶을 이끈다면, 그 설계도는 살아 있는 것이다.
김승영 교수는 충남대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역학연구소와 유학연구소 등에서 연구를 이어왔다. 이번 책은 충남대 우수도서로 선정돼 출판을 지원받았다.
아직 리는, 이기론은, 그리고 철학은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이제서야 리의 '발'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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