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킬러와 어머니 사이의 갈등과 모순

  • 문화
  • 공연/전시

[김선생의 시네레터] 킬러와 어머니 사이의 갈등과 모순

  • 승인 2025-05-15 16:44
  • 신문게재 2025-05-16 9면
  • 최화진 기자최화진 기자
KakaoTalk_20250514_160542536
영화 '파과' 포스터.
손톱이라 불리다가 한자어 조각(爪角)이라는 이름으로 산 여자가 있습니다. 40년을 킬러로 지내며 이제는 조직의 대모가 되었습니다. 벌레 같은 인간들을 소리소문없이 처단해 온 그녀에게 사적인 감정은 평생의 금물이었습니다. 돌보거나 지켜야 할 인간관계를 만드는 것도 철저히 회피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영화는 늙은 여성 킬러 조각을 세 명의 젊은 남성과 연관 짓습니다. 유사 모자 관계라 할 만합니다. 자경단 조직의 손 실장과 그녀는 철저히 킬러로서의 영역에서 만납니다. 사회적으로, 인간적으로 해악을 끼치는 인물을 제거해 온 조직을 금전적 이익과 결부시키려는 손 실장을 그녀는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손 실장과의 관계에서 그녀는 완연히 킬러입니다. 또한 비정한 대모이기도 합니다.

수의사 강봉희와 그의 딸에 대하여 그는 킬러라기보다 어머니 혹은 할머니로 그려집니다. 오랫동안 감췄고, 금기시했던 사적 감정과 인간적 돌봄의 관계, 지켜야 할 만남을 이어갑니다. 이것은 킬러로서의 그녀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일이 되고, 영화의 서사를 위태롭게 만듭니다. 지금 그녀는 인간 본연의 애정에 노출되었습니다.

끝으로 자경단 조직인 신성무역에 갓 영입된 젊은 킬러 투우와의 관계에서 그녀는 휘청입니다. 강봉희 가족을 대하는 애정을 빌미로 그녀의 목을 노리는 투우에 대해 그녀는 잔혹한 전설적 킬러의 면모를 강력하게 드러냅니다. 그러나 영화는 그들이 오래전 유사 모자 관계로 만났음을 보여줍니다. 조각을 향한 투우의 공격이 애증의 산물이듯 그녀 역시 투우에 대해 잔인함으로만 대하지 못합니다. 그를 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일에 대해 미안함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 미안함을 타고 들어오는 투우의 공격과 그를 자식처럼 사랑했지만 처단해야 하는 어머니와 킬러로서의 양립할 수 없는 조각의 극단적 정념이 스크린을 뒤덮습니다. 영화는 전반부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달콤한 인생>(2005)을 잇는 스타일리시한 액션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후반으로 가면서 조각과 관련한 복잡한 서사가 이어지며 관객들의 생각을 깊어지게 합니다. 아내와 어머니가 되어 사는 평범한 여성의 삶을 버리고 평생을 살다가, 다시금 지켜야 할 것에 결부되는 그녀가 애처롭습니다. 한편으로 그녀를 그렇게 만든 세월과 세상을 생각합니다. 사람다움을 상실한 벌레투성이 말입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공기 중 이산화탄소 직접 포집 기술 2026년 스마트팜서 상용화 기대
  2. 예산 관광의 새 마루지… 예당호 착한농촌체험세상 개장
  3. [현장] 유학생에겐 외로운 명절 연휴… 전통문화로 정 나누는 대학가
  4. 충청지방우정청, 추석 앞 아동복지시설에 '추석빔' 전달
  5. 한화이글스 2025 포스트 시즌 경기 날짜는?
  1. [추석특집] 긴 한가위 연휴 '고향 사랑' 지역명소 여행은 어때요?
  2. [국군의날] #아내는 TOD 남편은 육군경비정…충남서해 수호 부부군인의 '하모니'
  3. 볼거리·체험거리 풍성… 긴 추석연휴 충남 방문 어때?
  4. 야구의 메카 세종 향해 도약… 제9회 세종시장기 생활체육 야구대회
  5. 과학기술 출연연 성과 한 곳에… 국립중앙과학관 '출연연 통합 홍보관' 개관

헤드라인 뉴스


역대급 긴 연휴… `고향사랑` 지역명소 즐겨볼까?

역대급 긴 연휴… '고향사랑' 지역명소 즐겨볼까?

민족 대명절 추석이 다가왔다. 2025년 추석 연휴는 최장 10일로 여느 때보다 길다. 국민 10명 중 4명이 연휴 중 국내외 여행을 계획 중이다. 해외로 떠나는 인원도 적지 않지만 그동안 미처 몰랐던 지역의 숨은 명소를 찾는 것도 기억에 남는 명절을 보내는 방법이 될 것이다. 한국교통연구원이 8월 22일부터 28일까지 국민 99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 40.9%가 추석 연휴 여행을 계획했다. 이중 국내 여행은 89.5%, 해외여행은 10.5%다. '민족대이동'으로 고속도로와 국도뿐 아니라 하늘길도 붐빌 전망이다. 유독..

[10월 2일 노인의 날] 디지털 세상에 도전하는 어르신들
[10월 2일 노인의 날] 디지털 세상에 도전하는 어르신들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 힘으로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다루고 싶어요." 노인의 날을 하루 앞둔 1일, 대전 유성구 진잠도서관 디지털배움터. 낯선 프로그램 화면 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던 한 수강생의 말에는 디지털 사회에 뒤처지지 않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다. 키오스크와 모바일·인공지능(AI) 서비스 확산으로 고령층의 디지털 소외가 심화되는 가운데, 스스로 배우고 도전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작은 희망을 보여주고 있었다. '디지털배움터'는 누구나 쉽게 디지털 세상에 적응하고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디지털 역량 교육을 추진한다. 이곳에서는..

경찰 국정자원관리원·관련업체 4곳 압수수색…계약·고용관계 파악할듯
경찰 국정자원관리원·관련업체 4곳 압수수색…계약·고용관계 파악할듯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전산실 화재와 관련해 경찰이 2일 오전 9시부터 국정자원관리원과 배터리 이전사업에 참여한 민간 업체 4곳에 수사관을 보내 압수수색에 나섰다. 대전경찰청은 이날 수사인력 30명을 투입해 압수수색을 진행하며 화재 원인 규명에 필요한 증거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그동안 관계자들 진술조사를 통해 수집한 정보를 서류와 데이터 등을 확보해 검증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또 현장에서 배터리 이전 작업을 실시한 이들의 고용과 하청 계약서를 확보해 정당한 업무가 이뤄졌던 것인지 파악하려는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배터리를 옮..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한복 입고 배우는 큰절 한복 입고 배우는 큰절

  • 다 같이 외치는 ‘청렴 동구’ 다 같이 외치는 ‘청렴 동구’

  • 추석 앞 붐비는 도매시장 추석 앞 붐비는 도매시장

  • 열려라 취업문 열려라 취업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