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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개막하는 '시그니처 대전'의 두번째 공연 연극 '불의 고리' 포스터./사진=대전예술의전당 제공 |
지난 4월 클래식 공연으로 포문을 연 '시그니처 대전'은 클래식·연극·뮤지컬·전통 등 장르의 경계를 넓히며 지역 예술인의 창작 무대를 발굴하고 있다.
이번 작품은 대전의 극단 '손수'의 수장 윤민훈 연출가가 맡았다. 그는 2015년 연출가로 데뷔한 이래 투견, 안나K, 취연 등 굵직한 작품을 선보이며 이름을 알렸다. 특히 연극 '투견'은 2022년 대전연극제 대상과 연출상을, 대한민국연극제에서는 대통령상을 수상한 수작이다.
'불의 고리'는 윤 연출가에게 유독 남다른 작품이다. 그의 데뷔작을 집필했던 고(故) 이성호 작가가 생전에 남긴 마지막 희곡이기 때문이다.
이 작가는 2022년 제14회 대전창작희곡 공모전에서 '불의 고리'로 최우수상을 수상한 후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12월 윤 연출가는 이 작품의 초연을 맡아 작가와의 마지막 인연을 무대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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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민훈 연출가. |
이번 공연은 옴니버스 형식의 네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도박 중독을 다룬 '거믄노다지'를 시작으로, 전세사기(침입자), 고독사와 데이트폭력(여인의 초상), 미혼모(노리터)까지 우리 사회 그늘을 담담히 풀어냈다. 원작 소설은 다섯 개의 이야기로 구성됐지만 각색 과정에서 네 편으로 정리됐다.
윤 연출가는 "작품의 각 에피소드는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지만, 현실의 고통이 끊어지지 않고 연결된다는 의미에서 전체적인 서사를 고리처럼 구성했다"며 "웃음을 유발하지만 이내 씁쓸함을 안기는 서사 속에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담담하게 비추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관객이 극장을 나설 때 마음속에 잔상이 남고 하루의 술안주가 될 만큼의 여운을 남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윤 연출가는 특히 미혼모의 현실을 그린 마지막 에피소드 '노리터'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고 밝혔다. "미혼모의 삶을 형상화하기 위해 동네 놀이터의 길고양이 세계를 의인화해 은유적으로 풀어내고자 했다"며 "고양이의 위계질서를 통해 이야기를 구성했고, 표현하는 과정에서 영화 '나홀로 집에'의 비둘기 아줌마에서 모티브를 얻기도 했다"고 말했다.
윤 연출가는 대전 출신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 이 도시를 기반으로 활동해온 지역 예술인이다. 10여 년 전 대전예술의전당 스프링페스타 참여하며 대전과 인연을 맺었고, 이후 극단 손수를 창단하며 본격적으로 대전에 자리잡았다.
그러나 지역 예술 생태계는 결코 녹록지 않다. 그는 "작품 하나 제작하는 데 3000만~5000만 원은 기본"이라며 "자체 제작은 거의 불가능하고 대전에서는 지원 기회도 부족해 타지역 공연이 더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공연은 윤 연출가에게 각별하다. 윤 연출가는 "대전예술의전당과의 협업을 통해 제작 여건이 좋아져 새로운 시도들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었고, 초연 때보다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완벽주의 연출가로 통하는 그는 사소한 부분 하나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 그는 "연출가가 나태해지면 작품의 퀄리티가 떨어지기 때문에 매 순간 창피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잡는다"며 "이번 작품에도 최선을 다해 임했으니 기대해도 좋다"고 전했다.
최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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