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시평] 닫힌 문은 강제로 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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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시평] 닫힌 문은 강제로 열 수 없다

이근찬 우송대 보건의료경영학과 교수

  • 승인 2025-05-20 10:36
  • 신문게재 2025-05-21 18면
  • 김흥수 기자김흥수 기자
이근찬
이근찬 우송대 보건의료경영학과 교수
사직한 전공의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지난해 3월 초에 그만두고, 지난 1년간 여러 가지 일을 했다고 한다. 레지던트 과정을 3년동안 생활하고 1년만 견디면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하고 본인이 희망하던 진로를 밟을 수 있었지만, 포기했다. 언젠가는 돌아가서 남아있는 수련 과정을 마치고 전문의를 취득할 계획이지만, 당장은 병원의 임기제 의사직에 지원해 일할 예정이라고 했다.

교육부가 7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 1학기에도 의대생들의 수업 거부가 지속되면서 유급 예정 인원은 8305명, 성적 경고 예상 인원은 3027명에 이른다. 전체 재학생 1만9475명 중 각각 42.6%와 15.5%에 해당하는 수치다. 왜 의대생 과반수가 공부를 거부하게 됐을까?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은 한국 보건정책사에서 대표적인 정책 실패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책은 형식적으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한 채 추진댔지만 실질적인 동의는 얻지 못했다.

경영조직이론가인 체스터 버나드가 말했듯이, 권한은 지시자가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수신자가 그것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성립한다. 사람은 큰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수용의 범위(zone of indifference)'를 가지고 있다. 권한이 수용되기 위한 네 가지 조건이 있다. 명령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이 조직의 목적과 상충하지 않는다고 판단돼야 하고, 개인의 이익이나 신념·가치와 충돌하지 않아야 하며, 수용이 가능할 만큼 심리적·신체적 역량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번 정책은 이 네 가지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정책의 목표와 실행 방식, 그리고 장기적인 영향에 대한 설명이 충분치 않아 이해 가능성이 낮았고, 지역보건의료 개선이라는 공익적 목적은 의료계가 중요하게 여기는 의료의 질, 교육여건과 같은 전문직의 가치와 괴리가 컸다. 더불어 의사들의 근무환경 악화, 경쟁 심화, 직업 정체성 위협이라는 요인과 맞물리며 정책은 개인적인 손해로 인식됐다. 마지막으로 강압적으로 시행하고, 계엄 포고문에서 명문화된 처벌 위협은 기존 수련 과정의 불만과 누적돼 심리적 수용 한계를 넘어섰다. 결과적으로 권위는 무력화되었고, 명령은 '지시'로 남았으며, 저항이라는 형태로 표출됐다.

기성세대에 비해 젊은 세대는 권한의 수용범위가 좁아지고 있다. 계엄령 상황에서 명령을 이행한 자와 거부한 자의 연령과 세대를 떠올려보면 이러한 세대적 간극은 명확하다.

정책의 정당성은 발화자의 의도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수신자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정책은 설득이 되거나 강제가 되거나, 혹은 저항의 대상이 된다. '닫힌 문은 강제로 열 수 없다'는 말은 지금 우리 상황을 보여준다. 이는 의사소통 구조 자체의 실패를 의미한다.

권위의 재구성은 조율의 구조에서 시작돼야 한다. 의료를 둘러싼 다양한 기능 체계, 즉, 의료체계, 교육체계, 정치체계가 서로 다른 언어와 논리로 작동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들 사이의 오해와 단절을 피하려면, 서로 다른 입장을 연결하고, 각자의 언어로 말하고 들을 수 있는 대화의 구조가 필요하다. 조율이란 서로 다른 이해가 충돌하지 않고 병존할 수 있도록 열려 있는 접면을 설계하는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 지금의 갈등은 단순한 정원 확대 문제를 넘어서, 오랜 시간 누적된 한국 의료의 구조적 병폐와 연결돼 있다. 의료는 점점 더 시장 논리, 기업 논리, 경쟁 논리에 잠식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의사들의 가치 규범도 흔들리고 있다. 환자의 건강보다 병원의 수익을 우선시하게 되는 구조, 젊은 전공의들이 의료 전문직이 아니라 단순한 노동력으로만 평가되는 현실은 오래전부터 시작된 일이다.

의료계 내부의 자기 성찰도 필요하다. '왜 우리는 이토록 분노하는가'라는 질문은, '우리는 어떤 가치를 지키려 하는가'라는 질문과 이어져야 한다. 그 가치의 재정립은 사회가 바라는 의료의 공공성, 형평성과도 연동돼야 할 것이다. 이 변화는 의료계만의 일이 아니다. 정부의 정책 기조, 사회적 신뢰 회복이라는 더 넓은 구조와 연결돼야 한다. 닫힌 문은 강제로 열 수 없다. 문 앞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 /이근찬 우송대 보건의료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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