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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들고 큰소리로 불렀다. "아저씨이!" 내 외침에 삽살개가 짖어대자 할아버지가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나를 내려다 봤다. 살구 안 파시냐고 물으니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주인어르신 부부는 몇 년 전만 해도 정정했는데 어느새 허리가 바짝 굽었다. 나는 살구가 어쩜 이렇게 많이 열렸냐고 감탄을 연발했다. "작년엔 냉해 때문에 살구꽃이 제대로 피기 전에 다 저버려서 하나도 안 열렸는데 올해는 실하게 열렸어." 살구나무 아래엔 그물을 쳐 놓아 떨어진 살구 상태가 온전했다. 마침 할머니가 다라에 살구를 주워 담고 있었다. 나도 거들었다. 할아버지는 임자 만났다는 듯 집 자랑에 침을 튀겼다. "우리 집 전망이 기가 맥히잖어? 가끔 집 팔라고 오는 사람들이 있어. 카페 하기 좋은 터니께. 난 안 팔어." 내가 땅값이 비싸겠다고 하자 "여기선 젤 비싸지"라고 대꾸했다. 아닌 게 아니라 대전 시내와 식장산이 훤히 보여 눈이 시원했다. 인심 좋은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더 드려. 많이 드려"라고 재촉했다.
살구잼을 만들기로 한 것은 할아버지의 조언 덕분이었다. "살구는 버릴 게 없어. 잼도 맛있고. 씨도 얼매나 좋은 건디. 기침에 좋아. 콜드크림에 살구씨 가루 개서 얼굴에 바르면 피부도 좋구." 할아버지는 작년에 담근 살구잼 맛도 보여줬다. 며칠 후 퇴근하고 저녁을 먹고 잼 만들기에 돌입했다. 깨끗이 씻어 씨를 발라낸 살구를 믹서에 넣고 갈았다. 곱게 간 살구는 영락없는 호박죽이었다. 거기에 설탕을 붓고 센불에 끓이다가 불을 확 줄이고 뭉근히 끓였다. 시간이 지나자 되직해졌다. 그러더니 화산 분화구의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으면서 점액질이 위로 튀어올라 냄비 밖 사방으로 떨어졌다. 재빠르게 냄비 주위에 신문을 깔았다. 수저로 저으면서 '앗 뜨거'를 연발했다. 그런데 언제 불을 꺼야 하는지 가늠이 안됐다. 수저로 살짝 퍼서 쩝쩝거리며 맛을 계속 보는 사이에 결국 꾸덕꾸덕한 젤리가 돼버렸다. 사랑은 타이밍이라는데 잼도 타이밍일세. 다음엔 꼭 성공하고 말거야!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는 시도 있지만 고향을 떠난 사람에게 고향은 남다른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내 고향집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집 뒤에선 엄지손만한 보리수가 빨갛게 익어갈텐데. 6월 초 우리 가족은 1박2일 강원도 평창과 강릉을 다녀왔다. 우리는 강릉에서 '김환기 전시회'를 보는 감격을 맛봤다. 청록색 바탕에 별처럼 무수한 점들이 박힌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아득해진다. 안락한 자리를 박차고 나이 50에 뉴욕으로 떠나 그 곳에서 생을 마감한 화가. 김환기는 뉴욕의 밤하늘을 보면서 신안 안좌도의 고향 바다를 떠올렸을까. 작품에 매번 등장하는 푸른 점은 뉴욕에서 고국을 그리며 바라본 밤하늘의 별이기도 했을 터. 결핍은 예술가에게 창작의 원천이다. 그 시절 뉴욕의 김환기가 그리워한 고향의 맛은 무엇이었을까. <지방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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