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칼럼] AI시대에 한의학의 방향

  • 오피니언
  • 사이언스칼럼

[사이언스칼럼] AI시대에 한의학의 방향

정환석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기술응용센터 책임연구원

  • 승인 2025-09-11 17:43
  • 신문게재 2025-09-12 18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clip20250911101111
정환석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기술응용센터 책임연구원
예전에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표어가 있었다. 한때는 과장된 자부심이나 자기 위로로만 들렸지만, 요즘 한국 문화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현실을 보면 결코 허황된 말이 아님을 실감한다. 최근 케이팝, 드라마, 게임 등 다양한 K-콘텐츠는 세계 젊은이들을 열광하게 만들고 있다. 가끔 서울역에 가면 외국인 관광객들이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이동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고, 명동 거리는 외국인으로 북적인다. 그들이 한국의 무엇에 매료되는가를 생각해 보면 한글과 단청 같은 전통문화, 김치와 불고기 같은 음식, 갓과 한복, 그리고 K-POP의 독창적인 매력이 그 중심에 있다. 결국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적 의학인 한의학은 어떤가? 안타깝게도 상황은 그리 밝지 않다. 한국에서조차 한의학은 여전히 낡은 의학으로 치부되거나 과학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연구비를 확보하려면 인공지능, 첨단치료 같은 키워드가 붙어야 하며, 전통 한약이나 천연물 연구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한의학의 본질을 다시 살펴보면, 오히려 현대 의학이 지향하는 맞춤형 정밀의학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한의학은 원래 개인 맞춤의학을 근간으로 한다. 같은 병명이라도 환자의 체질과 상태에 따라 다른 처방을 내리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현대 의학이 지향하는 '정밀의학(precision medicine)'의 철학과 일치한다. 최근에는 유전체(DNA)와 전사체(RNA) 분석 비용이 크게 낮아져, 개인별 유전적 특징을 고려한 맞춤 치료가 가능해지고 있다. 암 치료만 보아도, 환자마다 보유한 유전자 돌연변이나 발현 양상이 달라 치료제의 반응도 제각각이다. 예컨대 폐암 환자에게 암세포 성장을 부추기는 특정 유전자 변화(EGFR 변이)가 있으면 '타그리소'를 선택하고, 종양이 면역세포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내보내는 단백질(PD-L1)의 발현율이 높으면 '키트루다'를 선택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그러나 실제 환자의 몸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특정 지표 하나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보다 정교하고 종합적인 분석이 필요한 이유다.

이 지점에서 AI의 역할이 중요하다. 만약 수만 명 암 환자의 유전체·전사체 데이터와 치료 반응률이 축적돼 있다면, AI는 새로운 환자의 유전체를 분석해 기존 데이터와 비교·학습함으로써 최적의 치료법을 제시할 수 있다. 즉 환자와 가장 유사한 유전체 패턴을 가진 사례를 찾아내고, 그 사례에서 효과가 컸던 치료제를 추천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치료율을 높이고 불필요한 시도와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임상 데이터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 현재 일부 한방병원과 연구기관이 협력해 임상연구를 진행 중이지만, 아직 체계적인 유전체 데이터까지 확보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21세기를 "데이터의 시대, 데이터는 곧 석유"라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양질의 환자 데이터가 모여야 AI가 제대로 학습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한의학이 맞춤·정밀의학으로 발전할 수 있다.

앞으로 한의학이 가야 할 길은 단순한 전통 보존이 아니라,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혁신적 진화다. 전통 한약재와 치료법에 대한 방대한 임상 데이터를 디지털화하고, 이를 AI 분석과 접목한다면, 한의학은 단순한 대체의학을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정밀의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미 K-POP, 김밥, 한국 드라마가 세계인의 일상에 스며든 것처럼, 언젠가 K-Medicine이 세계 환자들의 치료 옵션으로 당당히 자리 잡을 날을 기대해 본다.
정환석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기술응용센터 책임연구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천안 중앙고 출신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 2명 위촉 '화제'
  2. 코스피 역사상 최고치 경신…대전 상장기업도 '활약'
  3. 목원대 RISE사업단 현판식·발대식… 지역상생 혁신 생태계 본격화
  4. 충남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연구팀, 학술상과 우수초록상 수상 연구성과
  5. 한남대 김민주 교수 '네빈 S. 스크림쇼 상' 수상
  1. 노인맞춤돌봄서비스 문화활동프로그램 '따뜻한 숲속의 온기'
  2. 대전서 세종 넘어가는 구즉세종로 교통사고…사고 수습 차량 우회를
  3. '전자화하는 수사, 종이없는 재판'… 형사사법 전자화 경찰·법원 '분주'
  4. 정부, 자영업 폐업 부담 정책에 대전 소상공인 숨통 트이나
  5. 전국 과학고 경쟁률 4년 만에 최저… 충북 상승·대전 회복·충남 하락

헤드라인 뉴스


李 “정책 결정 시 지역균형발전영향 평가제도 만들까 생각”

李 “정책 결정 시 지역균형발전영향 평가제도 만들까 생각”

이재명 대통령은 11일 “국가의 모든 정책을 결정할 때 지방균형발전 영향평가를 의무적으로 하는 제도를 만들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회복을 위한 100일, 미래를 위한 성장'이라는 주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재정과 사회간접자본(SOC) 배분 등 지방 우대정책을 반영하고 있다”며 “그리고 지시해놓은 건데, 환경 영향 평가를 하는 것처럼 지방균형발전 영향이 어느 정도냐, 이것을 의무적으로 평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역균형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해 국가의 중요 정책을 수립하겠다는 의미로 분..

도심 온천관광 랜드마크 `유성온천 문화체험관` 첫 삽
도심 온천관광 랜드마크 '유성온천 문화체험관' 첫 삽

대전 도심 속 온천관광 랜드마크인 '유성온천 문화체험관'이 첫 삽을 뜬다. 11일 유성구에 따르면 유성온천 문화공원 두드림공연장 일원(봉명동 574-5번지)에 '유성온천 문화체험관' 건립 공사를 오는 15일 착공한다. 이번 사업은 지난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한 '온천지구 관광 거점 조성 공모 사업'에 선정된 이후 추진됐으며, 온천 관광 활성화와 지역 대표 축제인 '온천축제'와의 연계를 통해 유성온천의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문화체험관은 국비 60억 원을 포함한 총 198억 원을 투입해 지하 1층, 지상 2층(연면..

국회 세종의사당 연결하는 `신설 교량` 입지 확정… 2032년 개통
국회 세종의사당 연결하는 '신설 교량' 입지 확정… 2032년 개통

국회 세종의사당과 금강 남측 생활권을 잇는 '금강 횡단 교량'이 2032년 수목원로~국토연구원 앞쪽 도로 방향으로 연결된다. 김효정 행복청 도시계획국장은 9월 11일 오전 10시 e브리핑 방식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금강 횡단 교량 추가 신설은 2033년 국회 세종의사당 완공 시점에 맞춰 원활한 교통 소통의 필수 인프라로 꼽혔다. 국책연구단지 앞 햇무리교를 사이에 두고 이응다리 쪽이냐, 반곡·집현동 방향에 두느냐를 놓고 여러 검토가 이뤄졌다. 햇무리교와 금남교는 현재도 출퇴근 시간대 지·정체 현상을 마주하고 있다. 행복청은 이날 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화재피해 복구 ‘한마음 한뜻으로’ 화재피해 복구 ‘한마음 한뜻으로’

  • 이재명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시청하는 시민들 이재명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시청하는 시민들

  • 옷가게도 가을 준비 완료 옷가게도 가을 준비 완료

  • 사상 최고점 돌파한 코스피…‘장중 3317.77’ 사상 최고점 돌파한 코스피…‘장중 3317.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