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강병수 교수 |
사람은 태어나 구순기, 아동기, 청소년기, 성인이라는 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자기만의 특성을 만들어 간다. 즉 육체적 성숙과정과 사회화과정을 통해서 주위 환경에 적응하면서 일관되고 지속적인 자기만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
지역에 대한 정체성도 마찬가지이다. 정체성에 따라 지역을 보는 시각도 달라진다. 다른 지역을 낮게 보거나 적대시하는 '지역배타주의'와 지역에 자부심과 애향심을 가지는 '지역애향주의'로 나타날 수 있다. 지역배타주의는 지역간 갈등을 야기하지만 지역애향주의는 지역에 장학금을 희사하는 등 지역발전에 기여하게 된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현재나 미래보다는 과거의 정체성을 본인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유년 시절에는 성년이 된 미래의 정체성을 상상하면서 열심히 노력한다. 인간은 과거의 정체성, 현재의 정체성, 미래의 정체성이라는 스팩트럼 가운데 가장 원하는 정체성을 본인과 동일시하게 된다.
지역에 대한 정체성도 개인의 정체성과 비슷하다. 세종시를 예로 들면, 세종시민 다수가 연기군 시절의 과거 정체성이나 현재의 세종시 정체성보다는 우리나라 수도라는 미래의 정체성을 세종시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2003년 대전을 진짜(?) 사랑하는 분들과 '대전학연구회'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14년 후인 2017년 대전학연구회를 사단법인으로 발족시키면서 사단법인 '대전학연구회' 이사장겸 회장을 맡게 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모 신문사 기자께서 "왜 경상도 사람이 대전학연구회 이사장을 하느냐?'고 따졌다. 해서 직선거리로는 제 고향이 그분 고향보다 대전에 더 가깝다고 했지만 마이동풍(馬耳東風).
그러나 3년 전 대전학연구회에서 운영하는 '대전바로알기시민스쿨'에서 대전이 고향인 수강생 한 분이 "경상도 분이 사단법인 대전학연구회 이사장을 하고 있다니 대전이 너무 자랑스럽다."라고 하시는 것을 보고 "대전의 정체성이 포용과 관용과 개방성으로 한층 더 나아가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충청도라고 하면 대전, 세종, 충남·북 지역을 모두 포함한다. 충청도는 지리적 인접성과 충청도라는 동일 행정구역, 그리고 전통적인 유교문화를 바탕으로 오랫동안 지역정체성을 공유하였다. 그러나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사회로 진전되면서 농경사회에서 공유하던 전통적인 충청도의 지역정체성이 조금씩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1990년 지방자치의 실시로 광역지방자치단체가 탄생하면서 충청도의 정체성은 광역지방자치단체별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전광역시는 충청남도와 분리되면서 농촌 및 지방행정보다는 대도시행정과 과학기술도시로 특성화해 가고 있다. 충청도라는 과거의 정체성은 공유하지만, 충청남·북도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6.25사변 이후 다양해진 인구구성이 정부대전청사의 입주로 더욱 다양해지면서 대전에서는 '고향'이라는 말보다는 '고장'이라는 용어를 발전적으로 선호하면서 새로운 정체성이 형성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라는 광역자치단체가 탄생하면서 우리나라 수도기능의 하나인 중앙행정기능을 수용하면서 세종시민은 수도라는 미래의 정체성에 무게를 두게 된 것이다. 대전광역시와 세종특별자치시를 가운데 두고 지리적으로 분리된 충청남도와 충청북도는 대전과 세종보다는 보수적인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충청도는 하나로 단합되지도 않고 지역의식도 약하다는 불평을 할 수도 있으나 자연스럽고 발전적인 지역의식으로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유교문화와 농경사회에서 충청도 양반으로 불리던 충청지역의 정체성이 희석되는 가운데 각 광역자치단체들은 과거의 정체성, 현재의 정체성, 미래의 정체성이라는 스펙트럼에서 지역발전을 더욱 견인할 수 있는 각자의 정체성을 찾고 발전적 지역의식을 고양해 가고 있는 것이다.
/강병수 충남대 명예교수.대전학연구회 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