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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이지 법률사무소 이지 대표변호사 |
도면으로 볼 때는 잘 드러나지 않은 것들이, 공간으로 드러나자 완전히 달랐다. 좁았다. 막혀 있었다. 이상하게 답답했다. 설계도만 믿고 따라왔는데,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가만히 들여다보니 이런 맥락이었다. 동생은 본인이 원하는 구조와 공간 활용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제시했고, 건축사무소는 그 요구를 최대한 반영해주었다. 겉으로 보기엔 '고객 중심'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문성의 포기'였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전문가라면, 요청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보다, 그 요구가 전체 공간 구조에 어떤 영향을 줄지 고려하고 필요하다면 '그건 좋지 않다'고 말해줄 수 있어야 했다. 건축가로서의 아무런 철학 없이 건축주가 원한다면 어떻게든 욱여넣은 결과가 그것이었다.
이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깨달았다. 전문가는 전체를 조율하는 지휘자여야지, 주문받는 기술자가 되어선 안 된다는 것. 이 깨달음은 곧장 내 일, 변호사 업무에 연결됐다. 소송사건 특히 이혼 사건에서 의뢰인이 말하는 '원하는 바'는 대개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경우가 많다. "끝까지 싸우겠다" "무조건 내가 다 가져오겠다" "상대방을 최대한 괴롭게 해달라" 그런 요구들을 그대로 반영하는 건, 마치 건축주의 아이디어를 전부 수용한 집처럼 결국엔 '불편하고 무너질 수 있는 삶의 구조'를 만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소송은 삶을 짓는 일이다. 설계가 잘못되면 그 집에서 편히 살아갈 수가 없다. 문서상으로 승소했더라도, 감정이 고갈되고 인간관계가 파탄 나고 경제적 기반까지 흔들린다면 그건 결코 성공한 결과가 아니다. 진짜 변호사는 의뢰인의 말을 '그대로 실현'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 말을 '해석'하고 '정리'하고, 때로는 "그건 오히려 당신에게 해가 됩니다"라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건축이든 법이든 다른 어떤 분야에서든 전문가를 선택할 때에는, 그 사람이 어떻게 삶을 살아왔고, 어떻게 삶을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의 고객에게 어떤 이익과 행복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전문가란 자신의 그런 모습을 드러내야 하고 고객에게 느끼게 해줄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드러내야 한다. 이렇게 진짜 전문가를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어떤 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집짓기 과정을 통해, 나는 전문가로서 다섯 가지 원칙을 마음속으로 세워보았다. 첫째, 예측 가능성. 감정이 아니라 구조를 보고, 다음 수순을 미리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증거 설계. 집에 기둥이 있듯, 사건에도 핵심 증거를 단단히 세워야 한다. 셋째, 절차 경제. 과정에서 불필요한 다툼과 시간 낭비를 줄이는 전략이 필요하다. 넷째, 전문가의 책임. 의뢰인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그 감정을 이해한 채 견고히 설계해줘야 한다. 다섯째, 사후 안정. 소송의 끝이 삶의 끝이 아니듯, 이후의 삶까지 고려하는 사건 진행이 중요하다.
감정에 따라 방을 나누고, 억울함만으로 기둥을 세운다면 그 집은 언젠가 무너질 것이다. 따라서 진짜 전문가라면,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따라주기보다, 그 마음을 이해하고, 삶을 지탱할 구조로 다시 그려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지향하는 변호사의 모습이다.
오늘도 내 책상 위엔 누군가의 '삶의 설계도'가 놓여 있다. 그 설계도는 소장일 수도 있고 답변서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것이 그의 다음 인생을 떠받칠 '도면'이라 믿는다. 법은 싸움의 도구이기 이전에, 사람이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설계서가 되어야 한다. 앞으로 나는 기술자처럼 일하지 않고, 삶을 짓는 건축가처럼 일할 것이다. /김이지 법률사무소 이지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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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