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대통령 앞에선 '말 잘 듣는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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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대통령 앞에선 '말 잘 듣는 학생'

  • 승인 2026-01-25 23:41
  • 신문게재 2026-01-26 18면
  • 오현민 기자오현민 기자
반명함 사진
내포본부 오현민 기자
학창시절 반마다 꼭 한 명쯤은 있었다. 또래 친구들 말에는 유독 고집불통이던 아이. 다수가 "그건 좀 아니지 않느냐"고 말해도 혼자서 끝까지 반대를 외치던 그 친구는, 이상하게도 선생님 앞에만 서면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방금 전까지의 완강함은 온데간데없고, 선생님 말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이며 순한 양처럼 변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밉상'이던 그 아이는 선생님 앞에서만큼은 늘 모범생이었다.

요즘 대전·충남 행정통합을 둘러싼 정치권의 풍경을 보고 있자니, 문득 그 친구의 얼굴이 겹쳐진다. 대전과 충남의 행정통합 논의는 하루아침에 튀어나온 이슈가 아니다. 양 시·도지사는 수년 전부터 물밑에서 필요성과 가능성을 타진해 왔고 여론조사와 정책 검토도 이어졌다. 행정 효율성, 광역 경쟁력,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이라는 명분 역시 반복적으로 제기돼 왔다. 그럼에도 이 논의가 정치권 전면으로 부상하지 못했던 이유는 분명했다. 정치권에서 해당 사안을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은 데 더해 때로는 반대에 가까운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답보상태를 거듭하던 행정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된 계기를 꼽자면 지난해 12월 5일 충남 천안에서 열린 대통령 타운홀 미팅일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5극 3특' 구상을 언급하며 대전·충남 행정통합 논의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자, 정치권의 공기는 급변했다. 그동안 신중론이나 반대 의견을 내던 민주당 소속 인사들이 일제히 톤을 바꿨고 시대적 흐름에 부합하다는 메시지를 퍼붓기 시작했다.

행정통합은 단순히 대통령의 한마디로 찬반이 갈릴 사안이 아니다. 지역의 정체성, 행정 체계 개편, 재정 구조, 주민 삶의 변화까지 아우르는 중대한 결정이다. 그래서 더더욱 과정이 중요하다. 누가 먼저 말했느냐, 누가 호평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논의가 축적돼 왔고 어떤 우려가 제기돼 왔는지를 차분히 설명해야 한다. 그럼에도 민주당의 최근 행보는 마치 친구들 말에는 귀를 닫다가 선생님 앞에서만 태도를 바꾸는 학창시절의 그 아이처럼 비쳐진다.

정치는 신호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대통령의 발언이 중요한 기준점이 되는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지역 현안을 다루는 데 있어 '누가 말했느냐'가 '무엇을 말했느냐'보다 앞서는 순간, 정치인의 진정성은 의심받기 마련이다. 대전시민과 충남도민이 바라는 것은 특정 권력자의 눈치를 보는 정치가 아니라, 지역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정치일 것이다.

과거에는 왜 반대했는지, 지금은 무엇이 달라졌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태도만 바뀐다면, 시민들은 그 변화를 신뢰하기 어렵다. 친구들 앞에서는 고집을 부리다 선생님 앞에서만 고분고분해지는 모습이 결국 남긴 것은 '얄밉다'는 인상이었듯 지금의 정치 역시 그렇게 기억될 수 있다는 점을 정치권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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