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걸어두는 마을”, 단양 영춘면 유암1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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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걸어두는 마을”, 단양 영춘면 유암1리

생일과 기념일을 담은 달력으로 이웃을 다시 잇다

  • 승인 2026-01-27 07:51
  • 수정 2026-01-27 15:32
  • 신문게재 2026-01-28 17면
  • 이정학 기자이정학 기자
보도 1) 경로당에 걸려 있는 마을 달력
단양 영춘면 유암1리 마을이 이웃들의 생일·결혼기념일 담은 '마을 달력'을 제작해 공동체 온기를 전하고 있다.경로당에 걸려 있는 ‘마을달력’
충북 단양군 영춘면 유암1리의 마을회관 벽에는 한 장의 달력이 걸려 있다. 평범해 보이는 이 달력은 날짜를 확인하기 위한 도구라기보다, 마을 사람들의 이름과 시간을 함께 기억하는 장치에 가깝다.

달력 속에는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일과 결혼기념일이 표시돼 있다. 날짜 옆에 적힌 이름을 보다 보면 "오늘이 누구 생일이더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렇게 이름 하나가 불리고, 안부가 이어진다. 이 마을에서 달력은 더 이상 시간을 세는 종이가 아니라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가 되고 있다.

유암1리 마을 달력의 시작은 20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행복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처음 제작된 이 달력은 사업이 끝난 이후에도 주민들의 선택으로 계속 이어졌다. 2023년부터 올해 2026년까지는 마을회비를 모아 자체 제작하며 '기억하는 일상'을 멈추지 않고 있다.

달력에 담긴 사진들도 특별하지 않다. 전문 촬영이 아닌, 지난 1년 동안 마을 행사와 일상 속에서 주민들이 틈틈이 찍은 장면들이다. 마을 잔치, 경로당 풍경, 함께 웃던 순간들이 사진으로 남아 달력은 자연스럽게 기록물이자 추억의 앨범이 됐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농촌에서는 이웃의 생일이나 기념일을 챙기기 점점 어려워진다. 조용히 지나가는 날들이 늘어나고, 안부를 묻는 일도 줄어든다. 유암1리의 마을 달력은 이런 현실 속에서 "서로를 다시 기억하자"는 주민들의 소박한 제안에서 출발했다.

보도 1) 주민 집에 걸려 있는 마을 달력
단양 영춘면 유암1리 마을이 이웃들의 생일·결혼기념일 담은 '마을 달력'을 제작해 공동체 온기를 전하고 있다.주민 집에 걸려 있는 ‘마을 달력’.
달력이 걸린 이후 마을의 풍경은 조금씩 달라졌다. 생일을 맞은 어르신 집에 이웃이 들러 떡이나 과일을 건네고, 결혼기념일을 확인한 주민은 "오래오래 함께 사시라"며 덕담을 전한다. 달력 속 이름 하나가 대화를 만들고 웃음을 부른다. 주민들은 "달력 덕분에 하루가 덜 외롭다"고 말한다.

이 달력은 마을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외지에 나가 있는 출향인과 자녀들에게도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가 된다. 달력을 통해 부모의 얼굴과 마을 풍경을 접하며 고향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공유하게 된다.

유암1리의 마을 달력에는 큰 예산도, 화려한 디자인도 없다. 대신 사람에 대한 관심과 공동체의 기억이 담겼다. 날짜마다 적힌 이름과 기념일은 유암1리를 다시 '함께 사는 마을'로 이어 붙이고 있다.

군 관계자는 "유암1리 사례는 제도나 예산보다 사람의 마음이 공동체를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작은 아이디어가 고령화 시대 농촌 공동체 회복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단양=이정학 기자 hak4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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