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길을 잃을 용기, 그리고 다시 시작하기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칼럼] 길을 잃을 용기, 그리고 다시 시작하기

조부연 도자디자이너

  • 승인 2026-03-04 17:03
  • 신문게재 2026-03-05 19면
  • 최화진 기자최화진 기자
2025120301000316200011751
조부연 도자디자이너
우리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인생의 많은 시간을 계획에 쏟는다. 실패를 줄이려 계산하고, 이미 성공한 사람들의 방식을 따라가며 안전한 선택을 찾는다. 효율과 속도가 미덕이 된 시대에서 오답 없는 삶은 하나의 규칙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예술의 세계에 들어서면 다른 법칙이 작동한다. 가장 깊이 헤매던 순간이 새로운 시작이 되기도 하고, 길을 잃은 사람만이 지도에 없는 풍경을 발견하기도 한다.

개념미술가 솔 르윗은 "아이디어는 예술을 만드는 기계"라고 말했다. 이 말은 종종 감정을 배제한 차가운 창작 방식으로 오해되지만, 그의 뜻은 달랐다. 여기서 기계란 반복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창조를 움직이는 구조와 에너지에 가깝다. 오히려 예술은 익숙한 궤도에서 벗어나는 순간 살아난다. 정답만을 좇는 태도는 안정감을 줄 수 있지만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닫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시작을 미루는 이유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준비가 부족하다는 생각, 재능에 대한 의심, 이미 늦었다는 불안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그러나 예술가 메리 코리타 켄트는 창작의 원칙을 단순하게 말했다. "그저 작업하라." 영감은 완벽한 조건에서 생기지 않는다. 손을 움직이고 한 줄을 쓰는 행동 속에서 생각이 흐르기 시작한다. 기다림보다 실행이 먼저이며, 자신감은 시작 이후에 따라온다.

늦었다는 판단 역시 마음이 만든 환상일 때가 많다. 예술의 역사에는 삶의 후반에 자신만의 언어를 찾은 이들이 적지 않다. 창작을 위해 거창한 환경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집 한구석의 작은 책상이나 잠시 비워 둔 식탁 위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공간의 크기가 아니라 매일 같은 시간에 자신을 마주하는 지속성이다. 그렇게 쌓인 시간은 실패를 견디게 하고 다시 돌아오게 하는 힘이 된다.

생각이 막힐 때 해결책은 의외로 단순하다. 산책을 하거나 책상을 정리하는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마음의 흐름이 달라진다. 창작은 머릿속에서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몸과 함께 진행되는 과정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조차 생각이 익어가는 과정일 수 있다.

화가 스탠리 휘트니는 "나쁜 날도 좋은 날"이라고 말했다. 잘 풀리지 않는 하루 역시 새로운 방향을 찾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결국 창작은 특별한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길을 잃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허락하는 태도에 가깝다. 우리는 여전히 정답을 원하지만 삶과 창작에서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는 움직임이다. 지금의 서툰 한 걸음이 결국 새로운 길을 만든다. 길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걸어간 자리 뒤에 천천히 생겨난다.

예술의 이야기는 결국 우리 모두의 삶과 닿아 있다. 창작자는 특별한 존재라기보다 매일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아이를 키우며 쓰는 짧은 메모, 퇴근길에 떠오른 생각을 기록하는 습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작은 변화를 시도하는 마음 역시 창조의 한 형태다. 완벽한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계속 시도하는 태도이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씩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

삶은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끊임없이 수정되는 원고와도 같다. 오늘의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다시 고쳐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결국 예술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방식 속에 조용히 스며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작은 용기다. 어제와 다른 한 줄을 쓰고, 한 번 더 시도하며, 스스로의 속도로 걸어가는 일. 그렇게 쌓인 시간 끝에서 우리는 어느새 자신만의 길 위에 서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 길은 느리지만 분명하게 우리를 다음 장으로 이끈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걸어간다.

조부연 도자디자이너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예산군, 가을 대표축제 3개로 관광객 맞는다
  2. 국회 세종의사당 1191억원 대전 트램 2043억원 반영
  3. [충남대, 서울대 10개 국가대표로] 교육-연구-산업 연결 'NEXUS' 들여다보니
  4. 정부 R&D 예산 첫 39조 돌파…출연연 예산도 19% 증액
  5. 검찰청 폐지까지 한달… 출범 초기 수사인력 확보 변수 떠올라
  1. 충남지역 최대 140㎜ 많은 비… 토사유출·낙석·점포 침수 등 피해 잇따라
  2. [2027 수시로 간다-대학의 색, 미래의 선택] 우송대, ‘글로벌 특성화’로 차별화
  3. 충남도의회 초선의원, 5분발언서 송전선로·지방소멸 등 민감 이슈 정조준
  4. “교육활동보호관, 이름뿐인 기구 안 된다”…전교조 현장 대응 주문
  5. 충남대병원, 난임시술 '체외수정시술 1등급' 평가

헤드라인 뉴스


충청권 지방공기관 경영정상화 시급…24곳 부채중점관리기관 지정

충청권 지방공기관 경영정상화 시급…24곳 부채중점관리기관 지정

충청권 공기업 또는 출연·출자기관 등 24곳이 부채중점관리기관으로 지정돼 경영 정상화를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또 이 가운데 8개 기관은 재무위험이 큰 부채감축대상기관으로 분류돼 고강도의 수익성 개선 방안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행정안전부는 2일 이런 내용의 2025년도 지방공기업 결산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방공기업의 최근 3년 치 결산 자료를 토대로 다양한 재무지표를 평가해 모두 102개 기관(공사 22개·출자 30개·출연 50개)을 부채중점관리기관으로 지정했다. 작년보다 3개 감소한 규모다. 평가에..

보금자리론 인기 시들… 5%대까지 높아지자 매력 잃었나
보금자리론 인기 시들… 5%대까지 높아지자 매력 잃었나

시중은행보다 낮은 금리로 주목받았던 저금리 정책자금인 보금자리론의 인기가 식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금리가 다섯 차례 연속으로 인상되며 고정금리가 5%대까지 빠르게 상승한 데다, 시중은행 변동금리 하단보다도 높아지면서 매력을 잃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2일 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2026년 7월 기준 보금자리론 신규 판매액은 1조 6127억원으로, 6월(2조 1623억원)보다 25.4%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5년 6월 1조 5174억원 이후 13개월 만에 가장 적은 수준이다. 보금자리론이란, 보금자리론은 주택금융공사가..

정부 중앙행정기관 지방 이전 계획 발표 앞두고 충청권 촉각
정부 중앙행정기관 지방 이전 계획 발표 앞두고 충청권 촉각

정부가 3일 중앙행정기관 지방 이전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충청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내건 '행정수도 완성'과 지방균형발전을 위한 공공기관 2차 지방 이전의 밑그림을 공식적으로 처음 제시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2일 국무총리실에 따르면 정부는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행정·공공기관 이전 계획 및 공공기관 기능 개혁 방안' 관련 기자회견을 개최한다. 기자회견에는 한성숙 국무총리를 비롯해 행정안전부 장관과 국토교통부 장관, 재정경제부 2차관 등 관계부처 인사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중앙행정기관 이전은 행정안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추석 앞두고 벌초 한창인 국립대전현충원 추석 앞두고 벌초 한창인 국립대전현충원

  • 수능 전 마지막 모의평가…집중하는 수험생들 수능 전 마지막 모의평가…집중하는 수험생들

  • 대전신세계 개점 5주년…베어 벌룬과 ‘찰칵’ 대전신세계 개점 5주년…베어 벌룬과 ‘찰칵’

  • 물폭탄에 잠긴 교량 차지한 오리 물폭탄에 잠긴 교량 차지한 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