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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호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기술사업화실장 |
유럽은 우주에서 강자였다. 코페르니쿠스는 세계적 지구관측 체계이고, 갈릴레오는 유럽의 독자 위성항법 체계다. 유럽우주청(ESA)은 과학탐사와 국제협력에서도 높은 신뢰를 쌓아왔다. 그러나 최근 제2 우주경쟁에서 유럽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다. 문제는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다. 기술을 시장으로 전환하는 속도, 정부 수요를 민간 매출로 바꾸는 조달 방식, 그리고 안보 수요와 상업 시장을 결합하는 능력에서 미국에 뒤처졌기 때문이다. 우선 발사체 분야를 살펴보자. 아리안 5 퇴역, 아리안 6 지연, 베가-C 공백, 러시아 소유스 이용 중단이 겹치면서 유럽은 한동안 자율적 우주 접근의 취약성을 경험했다. 반면 미국은 스페이스X를 중심으로 재사용 발사체, 높은 발사 빈도, 스타링크라는 수직계열화된 경쟁력 있는 산업 구조를 구축했다. 유럽이 2023년부터 뒤늦게 'European Launcher Challenge' 사업을 통해 민간 발사 서비스 경쟁을 키우려는 것도, 기존 공공주도 모델만으로는 뉴스페이스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시장 설계다. 미국의 강점은 정부가 모든 것을 직접 개발하기보다, 민간기업이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수요를 만들어 온 데 있다. NASA의 상업물수송 서비스, 민간 달 탑재체 수송 서비스, 국방 분야의 위성 구매 등은 기업에 정부가 첫 고객이 된다는 강한 신호로 작용했다. 유럽은 대형 공공 프로그램에는 강하지만, 민간기업이 빠르게 실증하고 반복 매출을 쌓는 구조를 구축하는 데는 상대적으로 약했다. 마지막으로 안보와 산업의 결합 속도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위성통신과 상업 위성영상은 전장의 기반 인프라가 됐다. EU가 IRIS²(보안 위성통신망)을 추진하는 것도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선택이다. 그러나 초기 서비스 목표가 2029년 이후라는 점은 유럽이 필요성은 인식했지만 실행 속도에서 여전히 느리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이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우선, 누리호 성공을 발사체 자립의 성과로만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 반복 발사, 재사용발사체, 민간 발사장과 시험설비, 공공 발사 서비스 구매로 이어져야 한다. 우리 정부의 우주수송 전략도 뉴스페이스 발사 서비스 시장 진출과 민간 주도 우주경제 창출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다음으로 시장 설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대한민국 우주항공 산업육성 전략'은 2035년 글로벌 우주항공 시장 3% 점유를 목표로, R&D에서 수요 창출로, 체계 중심에서 소재·부품·장비와 활용까지, 민군협력과 타 분야 진입 촉진으로 정책 방향을 넓혔다. 공공 위성, 군집위성, 과학검증 위성, 달 착륙선, 저궤도 위성통신망을 각각의 사업으로 흩어 놓지 말고 민간기업의 실적과 서비스 시장으로 연결되도록 시장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우주안보와 우주경제를 통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영국은 스페이스X의 군용 위성통신 및 정찰 서비스인 스타실드를 군사작전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NATO도 상업 우주전략을 통해 민간 우주 서비스를 작전계획에 통합하려 하고, 핀란드 ICEYE는 SAR 위성 데이터를 NATO 상황센터와 연합작전에 제공하고 있다. 미국의 '골든돔' 미사일방어 구상에서는 스페이스X, 안두릴, 팔란티어 같은 기업이 우주 기반 센서, 요격, 지휘통제 체계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 이는 안보 수요가 발사체, 위성제조, SAR 영상, 보안통신, AI 분석, 지상국, 클라우드 시장을 동시에 키우는 구조를 보여준다. 한국형 저궤도 위성통신망, 위성정보활용 플랫폼, 우주상황인식 등도 하나의 시장 사슬로 연결될 때 의미가 커진다.
제2의 우주경쟁에서 유럽의 경쟁력 약화는 우주 강국도 한때의 기술 성공만으로 경쟁 우위를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의 과제는 발사 기회가 기업 매출로, 위성 데이터가 서비스 시장으로, 안보 수요가 산업 생태계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제2의 우주경쟁에서 승부를 가르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박정호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기술사업화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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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