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필톡] 통치자의 책사

  • 오피니언
  • 우난순의 필톡

[우난순의 필톡] 통치자의 책사

  • 승인 2019-07-24 13:54
  • 신문게재 2019-07-25 18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필톡컷
이제는 고인인 된 정두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그는 한때 'MB의 최측근', '왕의 남자'로 불렸다. 이명박 정권의 개국공신이었던 정두언은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권력의 정점을 누렸다. 그러나 권력의 달콤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정두언은 이명박 대통령의 충직한 참모가 아니었다. 그의 타고난 성격이라고 해야 하나.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대통령 측근들에게 공격의 날을 세웠다. 특히 '상왕'이라 불린 대통령의 형 이상득에 대해 가차없는 비판과 2선 후퇴를 요구했다. 이명박은 형에 대한 비판을 대통령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했다. 정두언은 MB의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일등 공신이었으나 한순간 '비운의 책사'라는 닉네임을 얻고 비주류로 살았다. 정두언은 그의 책에서 "용기 있는 사람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이를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허나 MB로선 '믿었던 놈한테 발등 찍힌' 격이었다. 그것은 배신자의 행위였다.

권력에 취한 리더는 자신을 신으로 간주한다. 오만한 통치자는 비판적 사고를 가진 측근을 원하지 않는다. 오직 권력자의 권위에 충성하는 부하만이 생존을 보장받는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근대 정치학의 시작이라고 평가받는다. 마키아벨리는 정치는 욕망하는 인간들을 상대하는 학문이자 기술이기 때문에 윤리만 가지고 접근하면 반드시 실패한다고 했다. 이상을 위해 힘쓰느라 현실을 간과하는 사람은 구원이 아니라 파멸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간담이 서늘해지는 경구다. 현실 정치의 속성을 날카롭게 짚은 마키아벨리는 인간은 사랑보다는 두려움에 복종한다고 했다.



전두환은 여우처럼 영악했다. 공포정치의 대가 박정희의 정치적 기술을 터득한 전두환은 권모술수에 능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자신도 박정희처럼 공포의 대상이기를 바랐다. 힘과 권위를 누리는 냉혹한 통치자를 꿈꿨던 전두환은 지나치게 보스 기질이 강해 한낱 저잣거리의 조폭처럼 보였다. 그는 자신에게 충성하는 측근에겐 확실히 보상했다. 분별력이 결여된 사람들은 이런 그를 통 큰 리더라고 치켜세웠다. 전두환에겐 충견같은 부하가 있었다. '의리의 돌쇠' 장세동. 사냥개는 선혈이 뚝뚝 흐르는 고깃덩이를 던져주는 보스에게 목숨바쳐 충성했다. 장세동도 힘세고 무시무시한 전두환을 닮기를 원했다. 전두환의 아바타 장세동은 5공 시절 대통령 경호실장과 안기부장을 하면서 무서운 사건들을 기획했다. 그의 충성심은 5공 청문회 때 절정에 달했다. 전두환의 얼굴을 '용안'이라고 해서 국민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용안은 임금의 얼굴을 일컫는다. 전두환과 장세동은 마키아벨리의 정치철학에 부합하는 인물인가.

정두언은 MB 정부에서 누구보다 편하고 화려한 길을 걸을 수 있었다. 그러나 대장부이길 바랐던 그는 올바른 소신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정치는 사악한 욕망의 세계라고 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의 주인공들도 잔인하고 대담하다. 맥베스는 인륜과 도덕을 저버리는 악인인 동시에 악의 유혹에 저항하려는 양심도 있는 유형이다. 갈등에 사로잡힌 그를 악의 지름길로 내몬 사람은 다름아닌 아내다. 레이디 맥베스는 여성의 본성인 모성애를 거부하고 마키아벨리적 남성성을 자처한 책사였다. 양심과 야심, 선과 악. 인간이 선한 천사라면 정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는 적과 동지의 구분이 명백하게 나타날 때 생명력을 갖는다. 정치는 자연의 풍경처럼 아름답지 않다. 중상모략과 권모술수가 판치는 정치의 세계는 윤리적 행동이나 선악의 규칙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핍박과 고통도 이겨낼 수 있었다고, 오직 국민과 자신의 양심만이 두려울 뿐이라고,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던 정두언은 왜 죽음을 택했을까. <미디어부 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날씨]대전·충남 1~5㎝ 적설 예상…계룡에 대설주의보
  2. 세종시 체육인의 밤, 2026년 작지만 강한 도약 나선다
  3. 목원대, 시각장애인 학습·환경 개선 위한 리빙랩 진행
  4. 충남대 김용주 교수 '대한기계학회 학술대회' 우수학술상 수상
  5. 건양대, 논산 지역현안 해결 전략·솔루션 제시 프로젝트 성과 발표
  1.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2. '자기계발 명상 캠프', 20대에 써내려갈 성공 스토리는
  3. '대통령 세종 집무실', 이 대통령 임기 내 쓸 수 있나
  4. 햇잎푸드, 100만불 정부 수출의 탑 수상... "대전을 넘어 전 세계로"
  5. 천안법원, 정지 신호에도 직진해 사망자 유발시킨 30대 중국인 벌금형

헤드라인 뉴스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대전시는 오랜 기간 문화 인프라의 절대적 부족과 국립 시설 공백 속에서 '문화의 변방'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민선 8기 이장우 호(號)는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대형 시설과 클러스터 조성 등 다양한 확충 사업을 펼쳤지만, 대부분은 장기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민선 8기 종착점을 6개월 앞두고 문화분야 현안 사업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대전시가 내세운 '일류 문화도시' 목표를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프라 확충보다는 향후 운영 구조와 사업화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는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중도일..

"대전 충남 통합논의" … 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대전 충남 통합논의" … 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김민석 국무총리와 더불어민주당 충청권 의원들이 대전시와 충남도 행정통합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전격 회동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얼마 전 충청권을 찾아 대전 충남 통합에 대해 긍정적 메시지를 띄운 것과 관련한 후속 조치로 이 사안이 급물살을 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김 총리와 민주당 충청권 의원들이 15일 서울에서 오찬을 겸한 간담회를 갖는다. 김 총리와 일부 총리실 관계자, 대전 충남 민주당 의원 대부분이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회동에서 김 총리와 충청권 의원들은 대전 충남 통합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대전 원도심 재편의 분수령이 될 '대전역 철도입체화 통합개발'이 이번엔 국가계획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14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초 철도 지하화 선도지구 3곳을 선정한 데 이어, 추가 지하화 노선을 포함한 '철도 지하화 통합개발 종합계획' 수립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종합계획 반영 여부는 이르면 12월, 늦어도 내년 상반기 중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당초 국토부는 12월 결과 발표를 예고했으나, 지자체 간 유치 경쟁이 과열되면서 발표 시점이 다소 늦춰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실제로 전국 지자체들은 종합..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

  •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