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필톡] 보문산에서 벌새를 봤다니까요?

  • 오피니언
  • 우난순의 필톡

[우난순의 필톡] 보문산에서 벌새를 봤다니까요?

  • 승인 2019-08-21 13:38
  • 신문게재 2019-08-22 22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벌새
지난 주 금요일 아침 보문산에 갔습니다. 제가 늘 찾는 곳입니다. 막 산에 오르는데 이슬비가 내렸습니다. 우산을 받쳤지만 맘 같아선 비를 맞고 싶었습니다. 어찌나 예쁘게 내리던지요. 촉촉해진 땅과 물을 머금은 나무들이 생명의 기를 내뿜었습니다. 새들의 지저귐과 진초록의 나뭇잎들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달콤한 밀어처럼 들렸습니다. 비가 멈추자 숲은 또 하나의 명장면을 연출했습니다. 뽀얀 안개가 숲을 감싸기 시작하더군요. 안개는 나무와 나무 사이에서 휘몰아치면서 뱀처럼 나무를 휘감고 올랐습니다. 숲의 정령이 잠에서 깨어나는 겁니다. 신비로웠습니다. 안개는 숲의 모습을 더욱 또렷하게 보여줍니다. 나뭇가지의 거미줄은 미세한 물방울이 매달려 마치 비단 실로 짠 그물 같았습니다. 숲은 살아있는 생명체입니다. 인간처럼 말을 해야만, 두 발로 걸어야만 살아 있는 게 아닙니다.

드디어 시루봉에 올랐습니다. 정자 옆엔 이름을 알 수 없는 꽃이 만발했는데 향기가 진했습니다. 그런데 말벌 한 마리가 꽃 사이를 날아다녔습니다. '말벌도 꿀을 먹나?' 의아해서 자세히 들여다봤습니다. 맙소사! 벌새였어요. 믿어지지 않아 눈을 비비고 또 보았습니다. 분명히 벌새였습니다. 크기도 그렇고 황금색이어서 영락없이 말벌인 줄 알았지요. 저는 몇 백만년 전의 화석을 발견한 것처럼 놀라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1초에 날갯짓을 90번이나 한다는 벌새. 정말 선풍기 날개 돌아가듯 날개가 안 보이더군요. 벌새는 바늘처럼 기다란 부리로 꿀을 빨았습니다. 초고속으로 날갯짓하면서 말입니다. 흥분을 누르고 조심조심 스마트폰을 눌렀습니다. 그런데 벌새가 갑자기 제 품안에 들어왔다가 다시 꽃으로 갔습니다. 짜릿했습니다. 벌새가 제 존재를 알았을까요? 그 사이 한 할아버지가 트로트메들리를 크게 틀어놓고 옆에서 맨손체조를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할아버지에게 조그만 소리로 음악을 꺼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선뜻 들어주시더군요. 아! 제가 벌새를 보다니요. 그것도 보문산에서요.

보문산은 예전엔 산에 보물이 묻혀 있다해서 보물산으로 불렸습니다. 맞습니다. 보문산은 대전시민들에겐 보물입니다. 숨을 쉬게 해주는 허파역할을 하니까요. 대전 아쿠아리움을 볼 때마다 마음이 언짢아집니다. 막대한 돈을 들여 지었지만 방문객이 별로 없거든요. 산을 파헤치고 뭉개면서 이런저런 건물들이 마구 들어섭니다. 지난 16일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 조정협의회는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설악산 케이블카는 개발과 환경 보호라는 찬반 입장차가 첨예한 논쟁거리입니다. 개발을 전혀 안하면서 살 수는 없지만 이젠 환경 보호도 생각해야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개발논리가 앞서는 게 현실이지요. 환경은 한번 훼손되면 복구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알다시피 시화호, 새만금 간척 사업 그리고 '단군 이래 최대의 사기극' 4대강 사업은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갔습니다. 결론은 환경 파괴라는 오명만 얻고 말았습니다.

오래 전 정선 가리왕산에 올랐던 기억을 잊지 못합니다. 울창한 활엽수림이 장관이었습니다. 거기도 동계올림픽 스키장 건설로 오래된 나무들이 다 베어져 시뻘건 황토가 드러나 볼썽사나워졌잖습니까. 올림픽 한 번 치르자고 소중한 우리 산이 순식간에 황폐화됐습니다. 그렇다고 올림픽 부대시설이 제대로 쓰여지는 것도 아닌 것 같고요. 저희 집에선 보문산이 보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보문산과 눈을 맞춥니다. 하루를 그렇게 시작합니다. 산은 저의 안식처입니다. 문득 곤돌라가 윙 쇳소리를 내며 보문산을 오르내리는 걸 상상해 봅니다. 그러면 새들이 떠나겠지요. 나무들은 온전할까요? 숲과 더불어 살고 싶습니다. 당신은 물질과 정신 중 무엇을 택하시겠습니까? <미디어부 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유통소식] 대전 백화점과 아울렛서 가정의 달 선물 알아볼까
  2. 천안동남서-압구정KM 성형외과, 마약범죄예방 나선다
  3. 한덕수 대행 “직면한 위기, 제가 해야하는 일 하고자”… 총리 사퇴
  4. "금강수계기금 운영 미흡 목표수질 미달, 지자체 중심 기금 개선을"
  5. [르포] "안전한 게 맞나요?"…관저다목적체육관 천장 낙하에 불안 고조
  1. 서산 금동관음상 5일 친견법회 마치고 10일 이국땅으로
  2. 나의 MBTI 맞춤형 반려식물은? 정원문화 새바람
  3. 세계노동절 대전대회
  4. 보이스피싱 예방, 우리가 앞장선다
  5. 세종시 이응다리 무대...시인들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

헤드라인 뉴스


대선 앞 세종 집값 상승률 2주 만에 12배↑… 대전·충남은 `하락`

대선 앞 세종 집값 상승률 2주 만에 12배↑… 대전·충남은 '하락'

6월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실 이전 기대감에 세종시 집값이 급등하고 있다. 최근 70주 만에 아파트 가격이 상승세로 전환한 데 이어, 이번 주에는 4년 8개월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하면서다. 2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2025년 4월 넷째 주(28일 기준) 전국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세종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대비 0.49% 상승했다. 2주 전(0.04%)과 비교해 무려 12배 이상 오른 수치다. 세종 집값은 2023년 11월 이후 하락세를 보이다가 4월 둘째 주 0.04%로 70주 만에 상승 전환됐다. 셋째 주(0.23..

한덕수, 대선출마 선언…"임기단축 개헌후 대선·총선 동시실시"
한덕수, 대선출마 선언…"임기단축 개헌후 대선·총선 동시실시"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한 전 총리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임기 첫날 대통령 직속 개헌 지원기구를 만들어 개헌 성공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며 "3년 차에 새로운 헌법에 따라 총선과 대선을 실시한 뒤 곧바로 직을 내려놓겠다"고 말했다. 이어 "취임 첫해에 개헌안을 마련하고, 2년 차에 개헌을 완료하겠다"며 "개헌의 구체적인 내용은 국회와 국민들이 치열하게 토론해 결정하시되, 저는 견제와 균형, 즉 분권이라는 핵심 방향만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한 전 총리는 "나..

세종시 베어트리파크, 어린이날 특별한 추억 선사
세종시 베어트리파크, 어린이날 특별한 추억 선사

세종시 베어트리파크가 어린이날 연휴를 맞아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5월 5일 아기 반달곰의 백일잔치를 포함해 다양한 어린이날 행사를 진행한다. 국내 유일의 행사로, 어린이와 가족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할 예정이다. 베어트리파크는 5월 1일부터 6일까지 무료 체험과 나눔, 마술쇼, 버블쇼 등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5월 5일에는 아기 반달곰의 백일잔치가 열리며, 관람객들은 마술과 버블쇼를 즐기며 아기 반달곰의 새로운 이름을 짓고 축하 노래를 부르는 시간을 갖는다. 이 외에도 5월 1일과 6일에는 입장객에게 선착순으로 새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화려한 개막…4일까지 계속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화려한 개막…4일까지 계속

  • 세계노동절 대전대회 세계노동절 대전대회

  •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