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는 삶의 이음매] 43. 은인여식(恩人女息)

  • 문화
  • 사자성어는 삶의 이음매

[사자성어는 삶의 이음매] 43. 은인여식(恩人女息)

홍경석 / 수필가 & '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 저자

  • 승인 2020-02-14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얼마 전부터 외손녀가 걸음마를 시작했다. 딸이 그 모습을 밴드의 '가족방'에 동영상으로 올렸다. 그 모습을 보자니 어찌나 귀엽고 예쁘던지!!

건강하게 자라서 머지않아 달음박질까지 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곤 툭하면 "외할아버지 댁에 가고 싶어요!"까지 외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지금과 달리 과거엔 자녀를 많이 낳았다.

조부와 조모의 보살핌으로 쑥쑥 성장했다. 지금으로선 어림도 없는 얘기겠지만 그때는 아이가 있는 방에서도 어르신들이 담배를 즐겨 태웠다. 할머니가 입에서 잘게 부순 밥알과 기타의 과일 따위까지 아이에게 먹이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러한 풍경들이 이제는 전설로 전해질 따름이다. 하여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무튼 예나 지금이나 내 자손은 귀하다. 한데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라는 뜻을 지닌 사자성어에 거자일소(去者日疎)라는 게 있다.

이 말의 본래 취지는 죽은 사람에 대한 생각은 날이 갈수록 잊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면 점점 사이가 멀어짐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말인데 가족도 자주 만나야 정이 드는 법이다.

심리학을 전공한 딸답게 자녀교육에 있어서도 남다른 행보를 보일 것으로 믿는다. 내가 바라는 외손녀에 대한 딸의 자녀교육 '범주'는 평소 집안 어르신을 자주 찾아뵙도록 했으면 하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늙으면 더 외로워진다. 이럴 때 가장 약이 되고 힘이 되는 건 단연 '내 새끼들'이다. 외손녀의 걸음마에 이어 화상통화로 친손자의 모습까지 일견(一見)하자면 계속하여 건강하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진시황도 피해가지 못 했거늘 어찌... 하여간 나는 사실 1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삶에 대한 애착과 의욕이 없었다. 당시는 아들과 딸이 모두 대학에 가기 전이었다.

그 즈음, 비정규직과 박봉의 힘든 삶은 정말이지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빈곤에 찌들다보면 때론 높은 건물의 옥상에서 투신하거나 강물에 뛰어들어 죽고만 싶었다. 그러다가 딸이 서울대 합격증을 건네주면서부터 비로소 '살고자 하는 삶'으로 치환되었다.

외손녀와 친손자의 모습을 보자면 나도 녀석들처럼 어렸을 적엔 어땠을까… 라는 기시감(旣視感)이 밀물로 다가온다. '울엄마도 날 낳고는 그런 느낌에 젖었겠지? 그런데 왜!' 나를 버리고 집을 나갔을까...

어머니의 가출 시기는 내가 생후 첫 돌을 맞기도 전이었으니까 그야말로 '핏덩어리'였다. 길을 가노라면 전도하는 교인을 자주 본다. 그는 자신의 종교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나는 이미 너무도 일찍 그 '지옥'을 경험했다. 그것도 유년기에서부터 청소년기에 이르기까지.

[임시정부 100년 시대 조국의 기생충은 누구인가]의 홍찬선 저자는 그의 책에서 "난파선에서 살아남으려면 기도만 해서는 안 되고, 육지를 향해 끊임없이 노를 저어야 한다"고 했다.

옳은 소리다. 일상적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다. 노를 젓는 열심과 성실이 담보되지 않으면 가뜩이나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서 낙오될 수도 있다.

저자는 아울러 자녀를 이른바 '스카이'(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영문표기 첫 자로 만든 말) 대학에 보내려면 필요한 필수항목으로 엄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 본인의 체력을 꼽았다.

이 외에도 "할머니의 운전 실력과 동생과 형, 언니의 희생이 양념처럼 뒤따른다."고 적었다. 여기서 나에게 해당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딸은 출신고교에서 유일무이 서울대를 갔다.

그것도 장학생으로. 조금 늦긴 했지만 아들 역시 작년에 서울대 대학원을 수료(修了)했다. 이 같은 '쾌거'에 사돈어르신께서 더 좋아하셨다. 딸은 서울대 대학원 졸업 때까지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장학금을 받았다.

재학 당시 매달 생활비를 보내느라 힘들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죽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가난을 탓하지 않고 너무나 잘 자라준 아이들과 '약속'한 때문이다.

'그동안 허룽허룽 살아서 미안했다. 앞으론 정말 열심히 잘 살겠다!' 약속은 지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나는 9년 전 경비원으로 취직했다.

작년 말에 정년(1959년생이므로)이었지만 우수사원으로 꼽혀 촉탁직으로 계속 근무하고 있다. 딸은 나를 살려낸 은인이기도 했다.

홍경석 / 수필가 & '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 저자

사자성어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천안시, 광덕면 물놀이 관리지역 현장 안전점검 실시
  2. 천안시, 여름 휴가철 하천·계곡 불법행위 특별단속
  3. 대전교육청 교육국장에 명달호… 9월 1일자 181명 인사
  4. [현장에서 만난 사람]세계 최대 반도체 공정 장비 제조 기업 ASML 한종호 매니저
  5. '위안부' 기림절, 세종서 만난다… 역사의 아픔 치유, '평화의 장'
  1. 천안시, 고액·상습 체납자 가택수색…승용차 압류·공매 착수
  2. 천안시, 2026 을지연습 전시종합상황실 근무자 사전교육
  3. 천안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스마트폰 가족치유캠프' 운영
  4. 대전농협-기성농헙-고향주부모임대전시지회, 이심점심 중식지원 봉사활동
  5. 홈플러스 충청권 5곳 영업 재개…상품 채우기 ‘속도전’

헤드라인 뉴스


대전 트램 또 지연되나…8개월째 호남선 비개착공사 시공사 선정 난항

대전 트램 또 지연되나…8개월째 호남선 비개착공사 시공사 선정 난항

2028년에서 2030년으로 개통이 미뤄진 대전 도시철도 2호선 트램 사업이 또 지연될 위기에 놓였다. 서대전 지하차도 구간 가운데 호남선 직하부 비개착공사에 대한 시공사 선정이 8개월째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공사 난이도는 높은데 사업비 단가는 낮게 책정된 탓에 입찰 과정에서 업체 사업 포기와 유찰이 반복된 것이다. 일각에선 트램 사업 주체인 대전시가 국가철도공단에 위탁만 해놓고 손 놓고 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9일 중도일보 취재결과, 대전 도시철도 2호선 트램 12공구 일대 서대전 지하차도 구간(699m) 중..

홈플러스 충청권 5곳 영업 재개…상품 채우기 ‘속도전’
홈플러스 충청권 5곳 영업 재개…상품 채우기 ‘속도전’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간 홈플러스가 긴급운영자금 2000억 원을 확보하면서 충청권에서도 영업을 다시 시작했다. 장기간 문을 닫았던 점포가 재개장하면서 소비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상품 입고가 충분하지 않은 곳도 있어 매장 정상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지난 7일부터 영업을 중단했던 전국 67개 점포를 대상으로 가오픈을 진행하고 있다. 충청권에서는 대전 유성점과 가오점, 세종점, 충남 논산점과 보령점 등 5개 점포가 영업 재개 대상에 포함됐다. 이번 영업 재개는 지난달 13일 임시 휴..

중고차 `숨은 수수료` 없앤다지만… 소비자 부담은 그대로?
중고차 '숨은 수수료' 없앤다지만… 소비자 부담은 그대로?

정부가 중고차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비용을 차량 판매가격에 포함하는 '총액 표시제'를 도입한다. 소비자가 온라인에서 확인한 차량 가격과 실제 구매가격이 달라지는 원인인 '숨은 수수료'를 없애겠다는 취지다. 국토교통부는 6일 이 같은 내용의 '중고차 소비자 보호 대책'을 발표했다. 중고차 판매업자가 인터넷 플랫폼 등에 차량을 광고할 때 차량 가격뿐만 아니라 매도비, 알선수수료, 성능보증보험료 등 소비자가 부담하고 있는 각종 수수료를 판매가 총액에 표시하도록 의무화하는 게 골자다. 현재 소비자가 중고차 시장에서 차량을 구매할 경..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쓰레기와 악취에 몸살 앓는 으능정이거리 쓰레기와 악취에 몸살 앓는 으능정이거리

  • 도심 속 시원한 물놀이 도심 속 시원한 물놀이

  • ‘안전모를 착용합시다’ ‘안전모를 착용합시다’

  • 극한 폭염 속 안전한 열차 운행을 위한 선로관리 극한 폭염 속 안전한 열차 운행을 위한 선로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