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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충식 논설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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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지표상으로는 행복이 풍요에 비례하는 것은 대략 국민소득 2만 달러 선까지다. 그 이상 소득이 오르면 행복의 요건에서 밀려난다. 개선된 생활수준에 빨리 익숙해지는 것, 무엇보다 남이 얼마나 소유했는지와 끊임없이 비교하는 습성이 돈의 주는 영향력을 약하게 한다.
지난번 유엔이 발표한 세계행복지수에서 158나라 중 한국이 47위인 것 못지않게 부탄이 79위에 머물렀다는 점이 주목을 받았다. 국민소득, 기대수명 등 평가 항목 때문이었다. 우연히 알게 된 우리 집 소득분위가 평가 항목 때문에 10분위라는 사실만큼이나 신기했다. 아무튼 국민 97%가 행복하다는 부탄의 행복지수 하락의 원인으로 TV 보급이 지목되기도 한다. 누구 말대로 TV가 거실을 백만장자로 가득 채웠다면 행복지수가 낮아졌을 수 있다.
새로운 비교 기준이 결핍감을 느끼게 한다. 또 모난 자존심을 갖고 하향 비교를 하면 남의 불행까지 행복의 밑천이다. 이 세상 언어 중 '남의 불행에 고소해하는 마음'을 가장 적절히 나타내는 독일어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그것이다. 비교는 자기 성장에 방해가 되지만 동기부여로 성취 동기를 높이기도 한다. 상향 비교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적당한 남의 시선 의식은 도덕적으로는 자신을 성장시킨다.
비교는 이처럼 두 얼굴이 있다. 자신을 한계 지우고 사회적 평가 위협에 시달리게 하고 체감행복지수를 낮춰서 병폐인 것이다. 행복해지려면 심리적 회계(멘탈 어카운팅)에 좀 둔감해져야 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우리 마음속 어느 계정에서 계산되는 열등감이나 상대적 손실감이 배를 아프게 한다. 유사한 주변상황이나 배경과 저울질하는 '유사 사회 비교'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일가친척과 만난 명절에 비교의 강도가 센 이유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집단주의 성향이 짙어 비교에 예민하다. 의도적인 비교, 덕담을 가장한 비교는 상처가 클 수밖에 없다. 설날 공개된 국립국어원 국어정책통계연감도 부부(29%)와 자녀(46%) 모두 듣기 싫은 말 1위로 '비교'를 꼽고 있다. 자식은 다른 집 아이들과의 비교, 부모는 다른 부모와의 비교가 거북스럽다. 부부는 서로 경제 능력이나 가사 능력 비교가 싫다. 비교의 그 자리를 비워내고 다른 가치에 집중하는 것도 행복 자산을 늘리는 방법이다.
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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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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