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여자]나무에 깃들여- 정현종

  • 전국

[시 읽는 여자]나무에 깃들여- 정현종

  • 승인 2018-04-13 09:00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900828252
게티이미지 제공
나무들은

난 대로가 그냥 집 한 채.

새들이나 벌레들만이 거기

깃들인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면서



까맣게 모른다 자기들이 실은

얼마나 나무에 깃들여 사는지를!





나무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봄에 가 보아도 그 자리, 여름·가을에도 또 거기에 있다. 이파리를 떨군 겨울에도 꿋꿋이 한 자리를 지킨다. 엄동설한 눈보라를 맞으며 나무는 봄을 준비한다. 제일 먼저 계절의 변화를 우리에게 알린다. 새의 혀 같은 싹이 돋아날 때의 희열감이란! 갓 태어난 강아지의 귀처럼 여리디 여린 이파리를 피워낸 쥐똥나무 울타리를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숲은 나의 안식처. 나무는 나의 동무. 늠름한 상수리 나무를 한번 안아본다. 코를 박고 냄새를 맡는다. 광목 행주치마를 두른 엄마 품을 파고들 때 나던 눅눅한 풀 냄새가 떠오른다. 이른 봄 갓 태어난 아기 다람쥐 두 마리가 천방지축 나무들을 오르내리며 숨바꼭질 하기에 여념이 없다. 산비둘기의 쓸쓸한 울음소리가 저 멀리 숲 속에서 허허롭게 울려 퍼진다.

아주 어렸을 때 우리의 놀이터는 나무였다. 동네 앞 팽나무는 우아하고 멋들어졌다. 나이가 몇 살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냥 오래 전에 태어난 나무인 것만 알 뿐이었다. 팽나무에 오르면 우리는 서울 부산 대구 저 멀리 제주도까지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었다. 나뭇가지마다 도시 이름을 붙여 놓았기 때문이다. 팽나무는 그렇게 아이들의 친구였고 어른들의 쉼터였다. 내 키가 좀 자랐을 때 팽나무는 베어져 어디론가 실려 갔다. 그리고 어른들은 깨달았다. 마을 사람들이 팽나무에 얼마나 의지했는 지를.

느티나무만큼 지혜로웠으면 좋겠다. 소나무처럼 굳세었으면 걱정이 없겠다. 회양목 꽃처럼 향기로우면 나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나무야 나무야.
우난순 기자 rain4181@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논란의 금속보호대 대전교도소 1년간 122회 사용… 기록누락 등 부실도
  2. 이철수 폴리텍 이사장, 대전캠퍼스서 ‘청춘 특강’… 학생 요청으로 성사
  3. 고교학점제 취지 역행…충청권 고교 사교육업체 상담 받기 위해 고액 지불
  4. ‘숭고한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5.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대전충청본부, 치매안심센터 찾아 봉사활동
  1. 서울대 10개 만들기·탑티어 교수 정년 예외…교육부 새 국정과제 본격 추진
  2. 세종 BRT예정지 미리알고 땅 매입한 행복청 공무원 "사회적 신뢰 훼손"
  3. "치매, 조기진단과 적극적 치료를" 충남대병원 건강강좌
  4. 새 정부 교육 국정과제 '시민교육 강화' 대전교육 취약 분야 강화 기대
  5. [세종 다문화] 군사 퍼레이드와 역사 행사, 다문화 가정이 느끼는 이중적 의미

헤드라인 뉴스


충남도 5년간 11조 투입해 서해안 수소벨트 구축

충남도 5년간 11조 투입해 서해안 수소벨트 구축

충남도가 석탄화력발전소 밀집 지역인 서해안 일원에 친환경 수소산업 벨트를 구축한다. 도는 수소 생산부터 저장, 활용까지 국내 최대 수소산업 클러스터를 구축해 글로벌 수소 허브로 탈바꿈시킨다는 목표다. 김태흠 지사는 18일 서산 베니키아호텔에서 열린 '제7회 수소에너지 국제포럼'에서 19개 기관·단체·대학·기업과 업무협약을 맺고, 서해안 수소산업 벨트 구축 본격 추진을 선언했다. 이날 포럼에는 김 지사와 제프 로빈슨 주한 호주 대사, 니쉬 칸트 씽 주한 인도 대리 대사, 예스퍼 쿠누센 주한 덴마크 에너지 참사관 등 500여 명이 참석..

불꽃야구, 한밭야구장에서 직관 경기 열린다
불꽃야구, 한밭야구장에서 직관 경기 열린다

리얼 야구 예능 '불꽃야구'가 대전 한밭야구장(대전 FIGHTERS PARK)에서 21일 오후 5시 직관 경기를 갖는다. 18일 대전시에 따르면 이번 경기는 한밭야구장을 불꽃야구 촬영·경기 공간으로 활용하기로 한 협약 이후 시민에게 개방되는 첫 무대다. '불꽃야구'는 레전드 선수들이 꾸린 '불꽃 파이터즈'와 전국 최강 고교야구팀의 맞대결이라는 예능·스포츠 융합 콘텐츠로 주목받고 있다. 21일 경기는 수원 유신고와 경기를 갖는다. 유신고는 2025년 황금사자기 준우승, 봉황대기 4강에 오른 강호로, 현역 못지않은 전직 프로선수들과의..

추석 앞두고 대전 전통시장 찾은 충청권 경제단체장들 "지역경제 숨통 틔운다"
추석 앞두고 대전 전통시장 찾은 충청권 경제단체장들 "지역경제 숨통 틔운다"

충청권 경제 단체들이 추석을 앞두고 대전지역 전통시장을 찾았다. 내수 침체로 활력을 잃은 지역경제에 숨통을 틔우기 위한 캠페인을 위해서다. 특히 이번 캠페인에는 이상천 대전세종중소벤처기업청장이 취임 직후 첫 공식일정으로 민생현장을 찾아 눈길을 끌었다. 대전세종충남경제단체협의회(회장 정태희)는 지난 17일 오전 대전 서구 한민시장에서 '지역경제 활성화 캠페인'을 개최했다. 행사에는 이상천 중기청장을 비롯해 정태희 회장(대전상의 회장), 김석규 대전충남경영자총협회장, 송현옥 한국여성경제인협회 대전지회장, 김왕환 한국무역협회 대전세종충남..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민생회복 소비쿠폰 2차 지급 준비 만전 민생회복 소비쿠폰 2차 지급 준비 만전

  • 2025 적십자 희망나눔 바자회 2025 적십자 희망나눔 바자회

  • 방사능 유출 가정 화랑훈련 방사능 유출 가정 화랑훈련

  • ‘숭고한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숭고한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