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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이 성명서에서 방송학자들은 보도의 공정성과 불편부당성을 지키려는 상식적인 구성원들이 중용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사리사욕을 우선하고 정치권에다가 줄을 대려는 구성원들이 경원당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자고 호소했다. 더불어 두 공영방송 이사들에게도 여권 야권 이사로 편을 갈라 정치권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행태를 금해달라고 요청했다. 공영방송사의 이사라면 마땅히 명망가로서 전문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로부터 4년이 흘렀다. 며칠 전 서울에서 한국방송학회 학술대회가 열렸다. 공개적인 정책설명회 또는 시민자문단 면접 방식을 거쳐 사장에 임명된 두 공영방송사의 대표가 특별 토론회에 참석했다. KBS와 MBC 사장은 방송종사자들의 제작 자율성을 보장하고 외부로부터 방송의 독립성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내부 갈등을 해소할 방책과 혁신 방향에 대해서도 의견을 피력했다. 또한 지역방송사의 여건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방송학자들은 두 대표가 부디 초심을 잃지 않기를 응원하며 박수를 보냈다.
곧이어 열린 총회에서 방송학자들은 여러 해 동안 논의해 온 쟁점을 학회 정관에 도입했다. 그동안 방송과 언론 분야의 학자들은 학회장을 지낸 분들이 임기를 마치자마자 공영방송 이사나 방송관련 공직에 취임한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왔다. 학회의 회장을 맡는 일은 누구나 함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희생하려는 의지와 헌신하는 실천적 행동이 요구된다. 학술적 성과와 원만한 인품도 회장으로 선출되는 데 주목받는 자질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력과 역량을 가진 학회장들이 방송 분야의 공직에 진출해서 '명망가로서 전문성'을 발휘하는 것은 그 자체로 흠잡을 일이 아니라고 본다. 어쩌면 독려 받을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문제는 학회장을 끝내자마자 공영방송의 이사나 관련 기구의 공직에 진출하는 것, 그마져 추천권자의 입맛에 맞게 여권 이사(위원) 또는 야권 이사(위원)로 편을 나눠 돌격전, 육탄전의 전사로 나서는 볼썽사나운 행태다. 4년 전 성명서에서 방송학자들은 공영방송사 경영진을 '부적절하고 몰지각한 언행'으로 시민들의 '분노와 조롱'을 샀다고 비판했다. 그 비판이 학회장 출신의 이른바 '전사'들에게 투사되었다. 이에 방송학회 총회에서 학자들은 '회장과 차기회장 당선자는 정해진 임기를 마친 후 1년이 경과'하지 않으면 방송관련 정부기구와 공영방송 이사직 등에 취임하지 못한다는 새 정관 규정을 승인했다. 짧게는 4년 넓혀보면 10여년 고민해 온 쟁점이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 KBS와 MBC 이사, 종편과 보도전문 채널의 이사 등이 취임을 제한받는 직위에 속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총회 의결절차 없이 자동적으로 학회 회원 자격을 상실한다는 정관 규정도 신설했다. '어마무시'한 규정이라고 힐난할 수도 있고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다짐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작은 벽돌 하나를 정성들여 다듬지 않는다면 큰 성을 축조하기 어렵다. 언론정책을 결정하는 정부기구와 공영방송사 이사회에 참여하는 학자들이 '돌격대 전사'가 아닌 '명망 있는 전문가'로 활약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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