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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성은 광주제일고와 연세대를 졸업한 뒤 1990년 현 프로야구 구단 KIA 타이거즈의 전신인 해태에 입단했다. 이호성은 신인 시절 타율 0.304, 7홈런, 48타점을 기록해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 또 타율 0.281, 21홈런, 84타점으로 맹활약해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이호성은 해태, KIA 등에서 12시즌 동안 뛰며 2001년 은퇴했다.
하지만 은퇴 이후 이호성은 연거푸 개인사업에 실패해 파산 상태에 이르렀다. 예식장과 게임장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수십억대 손해를 냈다. 또한 이호성은 2005년 전남 순천에서 화상 경마장 관련 사기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이호성은 2008년 내연녀 김씨와 그의 세 딸을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당시 이호성은 네 모녀가 살고 있는 서울 창전동 집에서 김씨와 두 딸을 목 졸라 살해했고, 이후 김씨의 큰 딸을 다른 장소로 유인해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실종 다음 날 큰 딸의 휴대폰 신호가 전남 화순에서 잡힌 점과 아파트 CCTV에 이호성이 여행가방과 이불을 가지고 나간 것이 발견 된 점 등을 근거로 이호성을 용의자로 지목, 수배했다. 수사망이 좁혀오자 이호성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200년 3월 10일 한강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누리꾼들은 "볼수록 충격적이야", "나 글도 못읽겠어 소름끼쳐서", "나 방송보고 이호성이란 사람 첨봤는데 진짜 충격이었다","아 소름끼쳐 진짜 이거 영화냐", "아 소름 무섭다 진짜 사람이 어찌" 등 수많은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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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이슈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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