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79. 아침에 갈 곳이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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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79. 아침에 갈 곳이 없다면

새벽을 사랑하는 사람

  • 승인 2018-11-21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평소 애청하는 지역방송이 있다. 매일 어떤 주제를 놓고 시청자들의 참여를 동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어느 날의 주제는 '추억이 모락모락! 나의 학창시절 이야기'였다.

그래? 그렇다면 나도 참여해야지! 이에 동원되는 '인증샷'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얼추 매일 취재를 하고 글(기사)까지 쓰는 덕분의 '자산'이 PC에 가득한 때문이다. 저장된 사진 중에서 관련되는 사진을 골라 즉시 응모했다.

두 장의 사진과 문자도 보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나이 50에 간 대학, 그러나 그 배움의 열정 덕분에 현재는 기자와 작가까지 되었답니다!" 이 내용은 잠시 후 고스란히 방송되었다.

내 나이 오십, 그러니까 지천명(知天命) 때 이르러서야 그 의미처럼 비로소 천명(天命)을 알게 되어 대학의 문을 두드렸다. 3년 과정의 사이버대학이었는데 주경야독(晝耕夜讀)의 공부라서 많이 힘들었다.

학생들 중 내가 나이도 제일 많았기에 속칭 '노땅학생'으로 통했다. 그렇지만 전혀 꿀리거나 위축되지도 않았다. 한 달에 1번 있는 오프라인 수업에도 빠짐없이 참여했다. 배운다는 게 너무나 행복했고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3년 동안 공부한 덕분에 졸업식 날엔 학업우수상까지 덤으로 받을 수 있었다. 쉬 하는 말에 '인생에 늦은 때란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사람은 사실 별로 못 봤다.

사이버대학을 만나기 전까지의 나는 공식학력이 초등학교 졸업뿐이었다. 초등학교의 졸업식 날에도 소년가장으로 돈을 버느라 학교엔 가지도 못했다. 졸업 앨범은 그로부터 20년도 더 지나서 당시 동창회 총무를 하던 친구가 복사하여 전해준 덕분에 겨우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상처'는 반면교사의 거울로 작용했다. 나는 비록 못 배웠지만 아이들만큼은 반드시 잘 가르치자는 경종(警鐘)의 풍경(風磬)처럼 그렇게.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책이 있다. '갈팡질팡'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매는 모양을 뜻한다. 또한 이는 무언가를 확실하게 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모습까지를 투영한다.

한데 늦은 때란 없다. 특히나 공부는 더 그렇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은 새벽 3시다. 새벽에 하는 공부와 집필은 몰입도(沒入度)에 있어서도 '가성비'까지 뛰어나다. 갈팡질팡 망설이는 게 습관화되면 공부는커녕 뭘 해도 죽만 쑨다.

'남촌북촌계란명 동방대성여경명 산두무권월유재 교상상응인미행(南村北村鷄亂鳴 東方大星如鏡明 山頭霧捲月猶在 橋上霜凝人未行)'

이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었던 권벽(權擘)이 지은 '새벽길을 떠나며(曉行)'라는 시다. 뜻을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이 마을 저 마을에서 닭들은 울어대고 동쪽 하늘에 뜬 큰 별은 거울처럼 맑은데 산 안개는 걷혔으나 달은 아직 떠 있고 서리 내린 다리엔 사람 발자국 하나 없네."

권벽(1520~1593년)은 이문(吏文)에 밝아 행정 실무에 능했다. 선위사(宣慰使)가 되어 일본 승사(僧使)를 접대하고, 이어 서장관(書狀官)과 동지사로 두 번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원접사(遠接使)가 되기도 했다.

그 뒤 대호군·오위장·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하며 선정을 폈다. 하지만 50여 년 벼슬 재위 기간에 가사를 돌보지 않고 자식의 혼사도 모두 부인에게 맡겼다고 한다.

또한 손님도 거의 맞지 않으면서 오직 시에만 마음을 쏟아 높은 경지를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예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저서로는 <습재집> 8권이 있다.

오늘은 쉬는 날이다. 그래서 이처럼 글을 쓸 수 있어 행복하다. 그렇지만 내일은 또 새벽길을 나서야 한다. 주간근무를 하기 위함인데 새벽 첫 발차의 시내버스에 올라야 하는 때문이다.

여름엔 새벽길의 출근이 상쾌하지만 요즘은 아니다. 바야흐로 초겨울인지라 패딩 따위로 몸을 꽁꽁 감싸지 않으면 금세 고뿔이 든다. 요 며칠 감기로 고생 중이다.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약까지 지어먹고 있으나 덜 나았다.

따라서 내일 새벽길이 벌써부터 권벽의 시 구절처럼 '서리 내린 다리에 사람 발자국 하나 없는' 정도로까지 스산할 듯 싶다. 겨울은 채 도착도 안했는데 감기로 고생하는 건 야근이 잦은 때문이다.

올해로 경비원 생활 7년째다. 박봉에 고된 업무이긴 하되 경비원 생활을 하면서 두 아이를 다 결혼시켰기에 애써 만족한다. 당연한 상식이겠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갈 곳이 없다는 것처럼 대략난감과 낭패(狼狽)가 또 없다.

오래 전 실직을 했을 때의 어떤 '악몽'이다. 새벽부터 눈을 떴으되 직장이 사라지고 보니 아내가 차려주는 아침 눈칫밥을 먹을 때부터 신경이 곤두서기 일쑤였다. 그래서 대충 밥을 챙겨먹고 나면 배낭부터 챙겼다.

그리곤 산을 타기 시작했는데 덕분에(?) 대전의 산이란 산은 얼추 다 올랐지 싶다. 하산하면서는 김밥 집에서 산 한 줄의 김밥과, 마트에서 구입한 막걸리를 배낭에서 꺼내 마시는 것이 당시로선 가장 큰 낙(樂)이었다.

그러한 '아픔'이 있긴 했지만 후일 그러니까, 지금 병행하는 대전시 홍보블로그 기자로서의 취재를 하는 데도 있어서도 커다란 자산(資産)이 되었다.

새벽길은 어떤 경각심(警覺心)의 능선을 이룬다. 새벽 첫 발차의 시내버스엔 나를 비롯하여 좀 더 연로한 어르신들이 승객의 대부분이다. 나이를 떠나 오늘도 스스로 벌어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노라는 다부진 결심이 그처럼 부지런한 삶을 사는 이유일 게다.

또 하나는 새벽부터 휴지와 폐지를 주워 생활하는 빈곤층 노인들이다. 전국에 약 150만 명이나 되는 노인들이 그 같이 힘든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하나 그래봤자 정작 수입은 하루에 몇 천 원 정도 밖에 안 된다고 하니 가슴이 시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어쨌든 누구보다 부지런하기에 직원 중 가장 먼저 출근하는 사람, 경비원을 하면서도 무려 여덟 곳의 언론과 정부기관 등지에 '시민기자'로 왕성하게 글을 쓰는 사람, 내년에는 다시금 재간(再刊)의 저서를 발행할 꿈이 야무진 사람, 지금도 새벽을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홍경석-인물-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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