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골령골 민간인 학살 최초보도 후 조국으로 못돌아가

  • 정치/행정
  • 대전

[기획]골령골 민간인 학살 최초보도 후 조국으로 못돌아가

산내 골령골 학살 보도한 영국인 기자 앨런 위닝턴
1983년 작고 후 뿌려진 하이게이트 등 현지 탐방
생전 공산주의자로 칼 막스 등 많은 영향받아
한국전쟁 보도 이후 조국에 '반역자' 낙인 굴곡진 삶

  • 승인 2019-11-19 18:47
  • 신문게재 2019-11-20 1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앨런-캡처
팟캐스트 '아는 것이 힘이다' 정진호 PD가 제작한 '70년 만의 나들이' 캡처.
[기획]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학살 진실을 재조명하다-'런던에서 산내까지'

2. '민간인 학살 보도' 기자 앨런의 발자취





KakaoTalk_20191118_041306242
젊은 시절 앨런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영국 케이블 스트리트 전투가 벌어진 곳에 그날의 기억을 잊지 말자는 의미의 대형 벽화가 그려져 있다. 임효인 기자
대전 산내 민간인 학살을 처음 세상에 알린 영국인 기자 앨런 위닝턴(Alan Winnington·1910~1983)이 남긴 기록물이 발견돼 전쟁에 대한 또 다른 진실이 규명될지 주목되는 가운데 기록자 앨런의 삶 역시 재조명되고 있다. 민간인 학살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조국에 오랫동안 돌아가지 못하는 등 굴곡 많은 인생을 살았던 그의 삶은 어땠을까.

취재팀은 지난달 26일부터 30일까지 영국 런던 등지에서 한국전쟁과 산내 민간인 학살을 최초 보도한 앨런의 발자취를 좇았다. 지난 1983년 영면한 앨런은 칼 막스가 잠들어 있는 하이게이트 공동묘지 곁에 뿌려졌다. 맑은 날보다 흐린 날이 더 많다는 영국 날씨도 이날만은 화창했다. 앨런은 세상을 떠나기 전 가족들에게 자신이 생을 마감하면 화장해 칼 막스 곁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엔 실제 막스가 묻힌 작은 비석과 막스를 기념하는 커다란 상징 조각물이 있는데 앨런이 뿌려진 곳은 작은 비석 근처다.



KakaoTalk_20191118_041304383 22
영국 하이게이트 공동묘지 내 칼 막스가 잠들어 있는 곳. 앨런은 자신이 죽으면 화장해 이 근처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영국 공산당 당원이기도 했던 앨런에게 막스는 누구보다 많은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다. 앨런의 삶에 또 한 가지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 있었는데 1936년 벌어진 케이블 스트리트 전투다. 파시스트 지도자 오스왈드 모슬리와 그의 친위대의 행진을 멈추기 위해 거리로 나선 시민 간 전투는 당시 청년이었던 앨런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당시 전투가 벌어졌던 거리의 한 건물엔 그날을 기억하기 위한 거대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이러한 앨런의 삶에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은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 워커'(Daily Worker) 소속 특파원으로 한국에 방문한 앨런은 그해 8월 '한국의 미국 벨젠'(U.S BELSEN IN KOREA)라는 제목으로 전쟁과 관련한 첫 보도를 내보낸다. 벨젠은 독일 나치수용소 소재지로, 전쟁 발발 후 미국이 민간인 학살을 주도하고 있다는 내용을 폭로했다. 이후 9월 앨런은 '나는 한국에서 진실을 보았다'(I Saw the Truth in Korea)라는 16페이지 분량의 소책자를 제작·배포했다. 참혹한 민간인 학살을 목격한 앨런은 그 상황과 배경을 소상히 기록했다.

이후 앨런은 조국과 다른 이념을 옹호하고 진실을 알렸다는 이유로 영국 정부로부터 내쳐진다. 민간인 학살에 미군이 개입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매우 첨예한 대립을 겪었던 시기였기에 영국 정부는 앨런의 여권을 무효화시켰다. '데일리 워커'를 비롯해 영국의 많은 정치인이 반발하며 영국 정부에 항의했지만 이후 앨런은 20년가량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눈앞에서 본 민간인 학살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을 앨런에게 조국이 준 상처까지 당시 앨런은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고 지난 6월 대전을 방문한 그의 첫 번째 부인 에스터(Esther Samson)는 회고했다.

앨런은 이후 전쟁 기간 중 결혼한 부인 에스터와 두 아들과도 이별하게 된다. 가족과 중국에서 동독으로 거처를 옮겼지만 둘째 아들의 건강이 악화하면서 자신을 제외한 가족이 영국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홀로 동독에서 생활하던 앨런은 새 가정을 꾸렸지만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늘 안고 살았다. 1949년 영국에서 떠난 앨런은 20년 후에나 돌아갈 수 있었다. 셰필드대학에 보관 중인 자료는 그의 두 번째 부인 우슬라가 10여 년 전쯤 기부했다.

영국에서 만난 앨런의 가족들은 그의 삶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존경했다. 앨런의 손주 존(Jon Allan Francis)은 "내가 태어나기 전 세상을 떠나서 볼 수 없었고 잘 알지도 못했는데 처음으로 할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게 된 시간이었다"며 "그가 했던 것을 알게 됐을 때 매우 놀랐고 또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전쟁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게 된 것은 슬펐다"라고 전했다. 런던=임효인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부산시 낙동강 가을꽃 향연… 3개 생태공원 이색적 풍경
  2. 10월 9일 '한글' 완전정복의 날...'세종시'로 오라
  3. 태안 해루질 중 실종된 여성 숨진채 발견…천안 미용실서 화재
  4. 전 세계 셰프들이 선보인 '한식' 경연...최종 우승자는
  5. 대전교도소, 사회복지시설 방문해 사회온정 나눠
  1. 대전 대덕구서 면허 없이 훔친 오토바이 몰던 고등학생 3명 붙잡혀
  2. 문화유산회복재단, 교실에서 또는 환수박물관에서 '실감교육 확대'
  3. EU, 철강관세 50% 인상…韓, 철강 수출 위기감 고조
  4. [프리즘] 겉보기 사회, 배터리화재에, 속도 탄다
  5. '온세종학교' 디지털 시대 맞춤형 교육 혁신 선도

헤드라인 뉴스


도시 기본 인프라조차 없는 `세종시`...제2차 공공기관 이전 시급

도시 기본 인프라조차 없는 '세종시'...제2차 공공기관 이전 시급

방문객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그 흔한 집객 시설 자체조차 없는 세종시. '역외 소비와 공실률 최상위 도시', '자영업자의 무덤', '핵노잼 도시'란 수식어는 이제 등호(=)로 굳어지고 있다. 인구수는 4년째 39만 벽에 갇히고 있고, 2030년 '신도시 50만, 읍면 30만' 목표는 10년 이상 뒤로 미뤄진 지 오래다. 대전과 청주, 공주 등의 주요 도시들과 같은 인프라를 단시일 내 구축하기란 불가능한 현실이자 희망고문에 가깝다. 단적인 예로 2021년 대전 신세계 백화점, 2024년 청주 커넥트 더 현대 오픈으로 세종시의 첫 백..

충청 與野 추석민심 대충돌…"경제정책 효과" vs "정권불신 팽배"
충청 與野 추석민심 대충돌…"경제정책 효과" vs "정권불신 팽배"

충청 여야는 유난히 길었던 이번 추석 연휴 기간 바닥 민심을 전하면서 뜨겁게 격돌했다. 집권 여당 더불어민주당은 소비쿠폰 효과 등 이재명 정부의 경제 부양 노력을 부각했고 국민의힘은 대통령 예능 출연 등을 지렛대로 정권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지고 있다고 맞섰다. 충청 여야가 극과 극의 민심을 전한 것은 다음 주 국정감사 돌입과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최대격전지 금강벨트에서 기선을 잡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위원장인 박정현 의원(대전대덕)은 "재래시장을 돌면 여전히 지역화폐와 민생회복 쿠폰이 도움이 됐다는 이야..

대전 30년 이상 노후주택 비율 `전국 3위`
대전 30년 이상 노후주택 비율 '전국 3위'

대전의 30년 이상된 노후주택 비율이 전국에서 세 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대구 북구을)이 국회입법조사처에 전국 노후주택관리에 관한 입법조사를 의뢰한 결과에 따르면 전국 전체주택 1987만 2674호 중 30년 이상이 지난 노후주택의 수는 557만 4280호로 조사됐다. 전국 노후주택 평균 비율은 28.0%다. 충청권에서는 대전과 충북이 전국 평균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특히 대전의 노후주택 비율은 36.5%(전체주택 52만 3823호 중 19만 1351호)로 전남(4..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579돌 한글날…대전서 울려퍼진 ‘사랑해요, 한글’ 579돌 한글날…대전서 울려퍼진 ‘사랑해요, 한글’

  • 긴 연휴 끝…‘다시, 일상으로’ 긴 연휴 끝…‘다시, 일상으로’

  • 한산한 귀경길 한산한 귀경길

  • 옛 사진으로 보는 추억의 `풍요기원 전통놀이` 옛 사진으로 보는 추억의 '풍요기원 전통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