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마음을 비우려면 아직 멀었다

  • 오피니언
  • 풍경소리

[풍경소리]마음을 비우려면 아직 멀었다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 RUPI 사업단장

  • 승인 2020-05-18 15:32
  • 신문게재 2020-05-19 19면
  • 김소희 기자김소희 기자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RUPI 사업단장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 RUPI 사업단장
매일 새벽 태화저수지를 걷노라면 물안개가 하얗게 피어나면서 정겨운 소리가 들려온다. 먼저 새벽을 깨우는 힘찬 닭울음 소리와 함께 여러 종류의 새들의 지저귐이 귀를 간지럽힌다. 하지만 잠시 넋을 잃다가는 자맥질하는 새끼오리 장난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저 앞산에는 연두의 조각들이 반짝이며 연초록 물결이 일렁인다. 마치 화선지 위에 연두 물감을 부어놓은 듯하다. 버들가지는 연둣빛 머리칼을 흔들며 바람 노래에 맞춰 군무를 춘다. 연두의 세상은 정녕 아름답다.

인간관계 그중 가족관계가 가장 활발해야 할 5월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모두가 예민해졌다. 감옥처럼 갇혀 지내다 보니 가장 가깝다고 여겼던 가족 틈새가 여기저기서 삐걱댔다. 밖에 나가도 먼발치에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비슷한 모습만 마주치니 새삼 사람의 얼굴이 그립다. 살아 숨 쉬는 생생한 표정이 보고 싶다. 하지만 당분간 코로나19 이전으로 온전히 돌아가기는 어려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기에 공동체의 새로운 가치관 및 관계 정립이 필요하다. 특히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한 사람 사이의 정(情)을 잃지 않아야겠다.

새로이 '생활 속 거리 두기'가 일상화되면서 초기엔 기존 문화나 현실과 충돌하기 쉽다. 이럴 땐 초심으로 돌아가자. 예컨대, 살아가면서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순 없어도 친절할 수는 있다. 친절은 적극적인 예의다. 가벼운 미소만으로도 충분히 예(禮)를 표시할 수 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을 위해 문을 열어주거나 무거운 짐을 받아주면서, 또한 낯선 이에게 길을 알려주는 등 작은 양보와 친절을 베푼다면 보다 밝은 사회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겠나. 무엇보다 생면부지의 타인에게 친절히 대하면 내 마음도 순해진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인 헤라클레이토스는 "결국 품성이 당신의 운명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친절은 남을 위한 적극적인 행동이지만 결국은 나를 위한 것이다. 가까운 사람의 흉을 보는 이유는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랑의 시작은 이해다. 각박하기 그지없는 현대사회에서 친절, 배려, 존중의 생활화가 더욱 필요한 이유다. 이처럼 끝없는 자기 인격 수양은 자신의 운(運)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면서 앞길을 밝게 비춰줄 것이다.

최근 원하든 원치 않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나 혼자 있는 시간을 무료하지 않게 즐기는 일은 녹록하지 않다. 외롭다는 것은 결코 창피하거나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외로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조용히 혼자 있는 동안에 사색을 통한 자기성찰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오히려 단 한 시간도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이 없다면 그것이 위험한 인생이다. 누구나 나이가 들고 은퇴할 시간이 찾아온다.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요즘 젊은이들의 욜로, 소확행, 혼밥, 워라밸과는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잘 잤느냐?"는 말 한마디가 하루를 보낼 에너지가 되고, "좋은 아침!"이라는 그대의 말 한마디에 희망이 솟는다. "즐거운 하루 보내라"는 말 한마디가 행복의 근원이 되고, "커피 한잔 놓고 간다"는 친구의 말 한마디에 그동안 쌓였던 피곤이 싹 가신다. 누구나 말 한마디로도 충분히 친절할 수 있다. 매일 아침 그날 생일을 맞은 지인들에게 생일축하 이모티콘과 인사를 건넨다. 소소해 보이지만, 당신도 그런 인사를 받으면 기분이 좋지 않은가.

반면에, 주위를 둘러보면 말 한마디에도 상처를 잘 받는 사람이 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란 노래도 있듯이 상처가 사람을 성장시킨다고 믿는 편이다. 상처를 통해 겪는 고통의 깊이만큼 성장의 높이도 따라 늘어난다. 특히 자신에 대한 의식의 성장은 스스로를 낱낱이 파헤쳐 보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지금의 고통스러운 과정도 훗날엔 틀림없이 자신을 성장시킨 시간으로 뒤돌아보게 될 것이다. 나 스스로 만든 과도한 기대를 내려놓는 습관을 더 키워야겠다. 마음을 비우려면 아직 멀었다.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 RUPI사업단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시장 후보자 토론회
  2. "꽃보다 출동조끼"… 부부의 날 앞두고 만난 의용소방대 부부
  3. 이장우 유세 첫 날 날선 시정 비판! 노잼도시 만든 무능 VS 방사청 당겨온 유능(영상)
  4. [중도일보-세종선관위 공동기획 '지방선거 포커스④'] 투표용지 인쇄 점검
  5. 공식 선거운동 D-1, 선거벽보 점검
  1. [기고] 오래된 시간을 지키는 일, 21세기 소방의 역할
  2. 큰절, 태권무, 1000인 선언… 대전교육감 선거 첫날부터 총력전
  3. [대전노동청 Q&A] 육아기 10시 출근제
  4. 어려운 이웃을 위한 자비의 쌀 나눔
  5. 한남대 고교 연계 대입평가 S등급… 대전권 대학 희비

헤드라인 뉴스


"충남에 살면 예우수당 없어"… 5·18 유공자 지원 ‘천차만별’

"충남에 살면 예우수당 없어"… 5·18 유공자 지원 ‘천차만별’

최근 5·18 민주화운동 역사 인식 제고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5·18 민주 유공자 예우를 위한 지원조차 지역마다 천차만별인 것으로 파악됐다. 시도별로 재정 여건에 따라 5·18 유공자에 대한 보훈수당 지원 여부와 액수가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대전시와 5개 자치구는 5·18 유공자를 보훈수당 지원 대상에 포함한 반면, 충남도는 시군 차원에서만 지원 중이며 지역마다 지급 규정이 없거나 각기 다른 실정이다. 법적으로 보훈수당 지급 체계와 기준을 명확히 마련하고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에 특별교부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

삼성전자 노사 성과급 합의 `후폭풍`…  주주단체 "주주이익 침해" 결집 예고
삼성전자 노사 성과급 합의 '후폭풍'… 주주단체 "주주이익 침해" 결집 예고

삼성전자 노사가 극적인 합의로 총파업 위기는 넘겼지만, 합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지역 경영계는 반도체 호황이라는 특수성을 노동계 전반의 기준으로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고 우려했다. 특히 실적이 부진한 사업부에도 성과급이 지급되는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21일 공개된 삼성전자 노사의 '2026년 성과급 노사 잠정 합의서'에 따르면 노사는 기존 초과이익성과급(OPI) 제도를 유지하되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에 특별경영성과급 제도를 신설하기로 합의했다. 특별경영성과급은 노사가 합의해 선정한 사업성과의..

대통령 관심 높은 `K팝 공연장` 충청권도 공약 쏟아져
대통령 관심 높은 'K팝 공연장' 충청권도 공약 쏟아져

이재명 대통령이 "국가상징 (K팝) 공연장이 필요하다"며 5만석 이상 규모 공연장의 추진을 거듭 지시한 가운데 지방선거에 나선 충청권 후보들도 관련 공약을 내놓아 주목을 끈다. 이 대통령은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취임 1주년 국정성과'를 보고 받으면서 문화체육관광부에 "K팝 공연장 확보는 어떻게 되고 있나. 대규모 공연장을 새로 지어야 할 것 아닌가"라고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5만석 규모의 공연장이 몇개 필요하다면서 현재 2~3만석 규모로 짓고 있는 공연장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문체부가 공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13일간의 지방선거 유세전 시작…‘우리 후보 뽑아주세요’ 13일간의 지방선거 유세전 시작…‘우리 후보 뽑아주세요’

  • ‘중원을 잡아라’…여·야대표 충청 총출동 ‘중원을 잡아라’…여·야대표 충청 총출동

  • 공식 선거운동 D-1, 선거벽보 점검 공식 선거운동 D-1, 선거벽보 점검

  • 대전시장 후보자 토론회 대전시장 후보자 토론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