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내일] 문화복합공간

  • 오피니언
  • 오늘과내일

[오늘과내일] 문화복합공간

김희정 시인

  • 승인 2020-07-12 10:57
  • 조훈희 기자조훈희 기자
김희정 시인
김희정 시인
오래전부터 이런 공간을 머릿속에 그려왔다.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 그림을 감상한다. 가끔 영화 이야기를 하다 직접 보는 시간을 만든다. 이런 곳을 만들어 문화예술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함께 자리를 채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흥동을 떠나 삼성동에 집을 구하고, 공사를 시작한 지 54일 만에 윤곽이 잡혔다. 공간을 만들어 가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줄을 이었다. 사람을 위해 만들어지는 공간인데 일을 하다 사람을 의심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몸이 아프고 마음이 상했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시선이 초점을 잃을 때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길을 찾을 수 없었다. 후회가 밀려들어 54일 전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불쑥불쑥 일어났다.



1층 북 카페와 독립서점, 2층 갤러리 그리고 공연장으로 쓸 수 있는 옥상.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공간이다. 그 공간에 사람의 마음을 채우는 일이 쉽지만은 않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일당을 주고 부른 손을 자꾸 의심했다. 날일(일당)로 불렀으니 날일을 하는 건 당연한 모습인데 말이다.

하루 일을 끝내고 혼자 남아 뒷정리를 하다 보면 동네 사람들이 다가와 위로와 걱정으로, 지친 마음을 풀어줬다. 이런 동네(인쇄소)에서 카페와 서점 그리고 갤러리를 하면 사람들이 오겠냐는 걱정부터 혼자 일을 하는 것이 안쓰럽다며 커피며, 참외며, 빵을 건네며 위로하고, 공사 중 나오는 소음도 기꺼이 참아줬다.



일하다가 손과 마음을 의심하고 그 의심으로 내가 이 공간을 만드는 이유조차 의심하게 되는 일을 반복적으로 겪다 보니 동네 사람들에게는 내 모습이 지쳐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빌린 손과 마음이 모두 힘들게만 한 것은 아니다. 어떤 손은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어떤 손은 자신이 가진 솜씨를 주어진 시간에 기꺼이 발휘하는 일도 보여줬다.

공사가 거의 마무리된 공간을 보며 지난 시간의 내 모습이 투영됐다.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일희일비(一喜一悲)했다. 빌린 손이 열심히 하면 기분이 좋고 대충 시간이나 때우려고 하면 화가 났다. 문화복합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이 쉬게 하겠다면서 일하는 사람 손을 의심하고 있었다. 사람을 의심하는 내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하루가 저물었다.

이번에 만들고 있는 공간은 2년 뒤에 실행에 옮길 생각이었다.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에 나가 서울 생활을 2년 하고 대전으로 돌아와 문화복합공간을 만들어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뜻대로 되지 않아 계획을 2년 앞당겨 설익은 감자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서울에 문화 예술촌이 몰려 있어 좀 더 보고 느끼고 동네에 맞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사람들이 문화를 통해 일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치유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가정의 울타리를 지켜낼 수 있는 몸과 마음이 되길 바랐던 것이다.

4년 전, 갤러리를 하겠다고 선언을 하고 몇 달 공사 끝에 문을 열었다. 좋은 작가들을 초대해 내가 먼저 호사를 누렸다. ‘미룸 갤러리’라는 간판을 달던 날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작은 가정집을 고쳐 사람이 사는 집에서 그림이 사는 집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 행복, 여러 작가와 시민들이 동참해 주어 갤러리 문을 닫지 않고 오늘까지 올 수 있었다.

5월에 시작한 공사가 이제 끝이 보이니까 생각과 다른 부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 문을 열지 않았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시작할 때 마음과 끝이 보일 때의 마음이 같을 수는 없겠지만, 첫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갤러리 간판에 새겨놓아야겠다.

그 마음을 가지고 남은 공사 잘 마무리해서 비록 공간은 작지만, 마음을 담아낼 수 있는 문화복합공간이 되기를 욕심내 본다. /김희정 시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천안 쌍용동 아파트서 층간소음 문제로 살인사건 발생
  2. [이차전지 선도도시 대전] ②민테크"배터리 건강검진은 우리가 최고"
  3. 대전시 2026년 정부예산 4조 8006억원 확보...전년대비 7.8% 증가
  4. 대전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공유재산 임대료 60% 경감
  5. [기고]농업의 미래를 설계할 2025년 농림어업총조사
  1. [문화人칼럼] 쵸코
  2. [대전문학 아카이브] 90-대전의 대표적 여성문인 김호연재
  3. 농식품부, 2025 성과는...혁신으로 농업·농촌의 미래 연다
  4. [최재헌의 세상읽기]6개월 남은 충남지사 선거
  5. 금강수목원 국유화 무산?… 민간 매각 '특혜' 의혹

헤드라인 뉴스


대전시, 산단 535만 평 조성에 박차…신규산단 4곳  공개

대전시, 산단 535만 평 조성에 박차…신규산단 4곳 공개

대전시가 산업단지 535만 평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장우 대전시장은 4일 대전시청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갖고 신규 산단 4곳을 공개하며 원촌 첨단바이오 메디컬 혁신지구 조성 확장안도 함께 발표했다. 대전시의 산업단지 535만 평 조성계획은 현재 13곳 305만 평을 추진 중이며, 이날 신규 산단 48만 평을 공개해 총 353만 평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원촌 첨단바이오 메디컬 혁신지구는 유성구 원촌동 하수처리장 이전 부지를 활용한 바이오 중심 개발사업이다. 당초 하수처리장 이전 부지에 약 12만 평 규모로 조성계획이었으나,..

꿈돌이 협업상품 6개월 만에 23억 매출 달성
꿈돌이 협업상품 6개월 만에 23억 매출 달성

대전시는 지역 대표 캐릭터 '꿈돌이'를 활용한 지역기업 협업 상품 7종이 출시 6개월 만에 23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4일 밝혔다. '꿈돌이 라면'과 '꿈돌이 컵라면'은 각각 6월과 9월 출시 이후 누적 110만 개가 판매되며 대표 인기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첫 협업 상품으로 성공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11월 말 기준 '꿈돌이 막걸리'는 6만 병이 팔렸으며, '꿈돌이 호두과자'는 2억 1100만 원의 매출을 올리며 청년일자리 창출과 사회적경제 조직 상생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이 밖에도 '꿈돌이 명품김', '꿈돌이 누룽지',..

2025년 세종시 `4기 성과` 토대, 행정수도 원년 간다
2025년 세종시 '4기 성과' 토대, 행정수도 원년 간다

2022년 7월 민선 4기 세종시 출범 이후 3년 5개월 간 어떤 성과가 수면 위에 올라왔을까. 최민호 세종시장이 4일 오전 10시 보람동 시청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행정수도를 넘어 미래수도로 나아가는 '시정 4기 성과'를 설명했다. 여기에 2026년 1조 7000억 원 규모로 확정된 정부 예산안 항목들도 함께 담았다. ▲2026년 행정수도 원년, 지난 4년간 어떤 흐름이 이어지고 있나=시정 4기 들어 행정수도는 2022년 국회 세종의사당 기본계획 확정 및 대통령 제2집무실 법안, 2023년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을 위한 국..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추울 땐 족욕이 딱’ ‘추울 땐 족욕이 딱’

  • 12·3 비상계엄 1년…‘내란세력들을 외환죄로 처벌하라’ 12·3 비상계엄 1년…‘내란세력들을 외환죄로 처벌하라’

  • 급식 차질로 도시락 먹는 학생들 급식 차질로 도시락 먹는 학생들

  • 양자 산업화 전초기지 ‘KAIST 개방형 양자팹’ 첫 삽 양자 산업화 전초기지 ‘KAIST 개방형 양자팹’ 첫 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