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또 한살을 먹으며

  • 오피니언
  • 풍경소리

[풍경소리] 또 한살을 먹으며

이향배 충남대 한문학과 교수

  • 승인 2021-01-11 08:03
  • 김소희 기자김소희 기자
이향배 충남대 한문학과 교수
이향배 충남대 교수
어느덧 코로나 펜데믹 속에서 새해가 밝았다. 지긋지긋한 코로나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원하면서 또 한 살을 먹었다. 흔히 세상에 못 먹을 게 나이라고 한다. 그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먹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나이이니 어쩌겠는가. 어린 아이는 빨리 성장하려는 욕심에 나이 먹는 것을 즐거워하지만, 나이 든 사람은 흐르는 세월을 최대한 늦추고 싶어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에겐 느리게 흐르는 세월이 나이 든 사람에게는 더 빨리 흘러간다. 사실 똑같은 시간인데 말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삶은 기껏해야 대략 100년이다. 전통시대 장수와 요절의 분기점은 50세이었다. 50세를 넘어 환갑에 이르면 잔치를 벌여서 이웃 사람들과 장수의 기쁨을 함께했다. 그 장수에도 등급이 있다. 장자(莊子)를 보면 100세는 상수(上壽), 80은 중수(中壽), 60 이상은 하수(下壽)로 나눈다. 장수를 축하하고 요절을 안타까워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시점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은 귀천(貴賤)을 떠나 생노병사(生老病死)의 과정을 거친다.

사실 죽음의 시각에서 보면 인생은 모든 것이 허무해진다. 당시에는 중차대한 일도 지난 뒤에 되돌아보면 별일이 아닌 경우가 많다. 이렇게 허무한 인생을 유의미한 일로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정관(靜觀)이다. 조용히 사물을 관조하고 자신의 삶을 성찰하면서 진리를 깨닫고 내적으로 성숙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인생의 경험이 풍부할수록 세상을 살아가는데 여유가 있다. 복잡하고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항상 여유가 있으며 난관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느끼며 하늘을 즐기며 느긋하게 세상을 살아간다.

공자는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이에 따라 성숙해야 단계를 제시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교육을 받기 시작한다. 가정과 학교에서는 언행을 배우고 범절을 배운다. 어릴 때는 부모와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대로 습득하고 행동한다. 15살이 되면 왜 공부하고 윤리를 실천해야만 하며, 사람이란 어떤 존재이며 사회적 관계를 어떻게 형성하고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이상향이 무엇인지 등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도를 공부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15세는 학문에 뜻을 둔다는 의미에서 지년(志年), 지학(志學)이라고도 한다.

수양과 함께 학문을 탐구해 30세가 되면 이치를 알고 언행을 사리에 맞게 할 줄 알며 선악을 판별할 줄 알아야 한다. 사고나 언행을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실천해 세상에서 자립(自立)할 수 있는 진정한 성인(成人)으로 성장해야 함을 의미한다. 여기서 더욱 정진해 40세가 되면 모든 이치를 알아서 어떤 일이든 미혹되지 않고 순리대로 판단하고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불혹(不惑)의 나이에는 깊은 지혜와 명철한 판단력, 일을 순리대로 처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세상에 나가서 뜻을 마음껏 펼치는 시기다.

그러나 세상일은 만만치 않다. 아무리 능력을 갖추고 웅대한 포부를 가진 채 세상에 나가더라도 자기 뜻대로 일은 되지 않는다. 온갖 좌절과 모욕을 맛보기도 하고 지위를 쟁취하고 성공하는 즐거움은 일시적으로 느껴도 보지만 세상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돌아간다. 50세쯤 되면 길흉화복(吉凶禍福)이 무언가 알 수 없는 존재에 의해 정해진 대로 세상이 돌아감을 마음속에서 깨닫기 시작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 천명을 알고 순응하나 어리석은 자는 거역하다 화를 자초한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하지 않았던가. 오십 정도 되면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은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그 성패는 하늘에 맡기고 달관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천명을 모르고 천방지축으로 날뛰다 보면 어느새 더 큰 낭패와 재앙이 몸에 따른다.

육십 가까이 살면 격변하는 세상일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길흉화복의 갈마듦과 인정세태의 변화에 대해 달관하는 힘이 생기기 시작한다. 희노애락의 감정을 훤히 들여다보고 흥망성쇠의 변화에서 천명을 알고 순응하면서 천리(天理)와 인사(人事)에 달관하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이순(耳順)의 나이에는 몸이 늙었지만 어떤 사물을 보거나 소리를 들어도 마음으로 척척 천리를 이해해 감정의 기복 없이 귀가 순해진다.

70세가 되면 언행을 자유롭게 해도 천리의 법도에 척척 맞게 되는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나의 욕망과 고집을 끊임없이 덜어내고 정관을 통해 전리와 인정을 체인(體認)하면서 내적·외적으로 자신을 성숙시켜야 한다. 이런 경지에 도달하면 몸은 속세에 어울려 살지만, 도를 즐기는 진정한 자유인이며 성인(成人)의 완성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어른으로서 성숙해야 함을 말한다. 오늘날 나이 먹은 사람은 많은데 성숙한 어른이 보이지 않는 것은 왜일까. 나이 먹을수록 노욕(老慾) 곧 고집과 욕망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이는 학식과 상관이 없다. 자신을 내려놓지 않으면 오히려 배운 사람일수록 더 큰 노욕에 사로잡힌다. 고집과 욕망을 버리는 것은 나를 내려놓은 작업이며 인성의 본연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나이를 든다는 것은 정관을 통해 이런 이치를 깨달으며 성숙해가는 것이 아닐까.


/이향배 충남대 한문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김경문 감독, 한화와 작별… “최강한화 함성 영원히 못 잊어”
  2. 한화 허인서, 생애 첫 풀타임에 20홈런… 신인왕 정조준
  3. 모래판 위에서 펼쳐진 한판 승부
  4. 대전 하나 전북을 18년만에 잡아내다! 득점 순간 대전 S석 표정(영상)
  5. 지금은 '축제 시즌'… 국내 축제, 세계 무대로 날아오른다
  1. 가을 정취 물든 '국립수목원 3종 세트'… 어디로 가볼까
  2. 천안문화재단, 10월 한뼘 갤러리 공간지원사업 전시 개최
  3. 천안시, 가을철 진드기 매개 감염병 주의…예방수칙 준수 당부
  4. 아산시의회, '탄소중립특별위원회' 활동 돌입
  5. 아산시, 항공사진-드론영상으로 최신 공간정보 구축

헤드라인 뉴스


대전 미분양 아파트 늘었는데…내년 주택시장 괜찮을까

대전 미분양 아파트 늘었는데…내년 주택시장 괜찮을까

대전지역 미분양 아파트가 한 달 사이 655세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유성구에서 미분양 물량이 큰 폭으로 늘어난 반면 동구와 중구, 서구에서는 감소했다. 내년에도 약 1만 세대의 아파트 공급이 예정돼 있어 미분양 해소와 신규 공급 물량의 소화 여부가 지역 주택시장의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11일 대전시에 따르면 2026년 8월 말 기준 대전지역 민간 미분양 주택은 2521세대로 집계됐다. 전월 1866세대보다 655세대 늘어난 것으로, 증가율은 35.1%다. 지역별로는 유성구의 미분양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유성구 미분..

박수현 충남지사 "발전공기업 유치, `도 아니면 모` 과열 경계…각 시·군 강점으로 경쟁해야"
박수현 충남지사 "발전공기업 유치, '도 아니면 모' 과열 경계…각 시·군 강점으로 경쟁해야"

박수현 충남지사가 최근 과열 양상을 보이는 발전공기업 통합본사 유치 경쟁과 관련해 "도 아니면 모 식의 접근이나 과열 경쟁은 위험하다"며 시·군 간 과도한 경쟁을 지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앙정부의 충남 내부 단일화 요구에 대해서도 "약속 없는 통일 요구는 중앙 중심의 논리"라며 선을 그었다. '충남통(통)행' 일정으로 8일 당진시를 방문한 박 지사는 언론인 간담회에서 "통합본사가 유치되면 살고 안 되면 망한다는 식의 사활을 건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지사는 "통합본사가 충남 외 다른 지역으로 가더라도..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 `달빛 걷기`… 야간 관광벨트 매력 충분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 '달빛 걷기'… 야간 관광벨트 매력 충분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이 가을밤 시민들의 낭만과 추억을 담아내는 특별한 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국가 1급 보안시설과 행정기관의 업무공간이란 경계를 넘어 행정수도 세종시의 새로운 야간 관광벨트이자 문화관광 명소로 도약할 가능성도 확인했다. 중도일보가 지난 10일 한국걷기운동본부 세종지부와 세종시, 행정안전부 정부청사관리본부와 협력해 진행한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 '달빛 걷기' 투어에는 시민과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방문객 등 모두 300여 명이 참여해 성황을 이뤘다. 보 안 관계상 참가자는 300~400명으로 제한했고, 그럼에도 2만 70..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모래판 위에서 펼쳐진 한판 승부 모래판 위에서 펼쳐진 한판 승부

  • 수확 앞둔 황금 들녘 수확 앞둔 황금 들녘

  • ‘와! 성공이다’ 대전샛 개발자들 누리호 발사 성공에 환호 ‘와! 성공이다’ 대전샛 개발자들 누리호 발사 성공에 환호

  • ‘은행 열매를 피해라’ ‘은행 열매를 피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