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칼럼] 북위 78도: 세상 끝에서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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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칼럼] 북위 78도: 세상 끝에서 만난 사람들

강무희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 승인 2022-11-10 16:44
  • 신문게재 2022-11-11 18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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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발바르 롱이어비엔 공항에 내리면 북위 78도라는 이정표가 공항 입구에 서 있다. 북위 78도가 얼마나 고위도인지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북극해의 두꺼운 얼음으로 둘러싸여 웬만한 쇄빙선으로는 접근조차 어려운 북극점과 불과 1200㎞ 남짓 떨어진 극한의 프런티어다. 지구온난화로 지금은 그나마 사람이 살만하지만 초기 탐험가들이 맞닥뜨렸을 고난과 역경은 지금과 비교하면 가히 가늠키 어렵다.

과거 석탄산업의 호황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롱이어비엔 공항 인근 석탄부두 한 곁에 특이하게 생긴 작은 보트가 뭍으로 올라와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불러보니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은 언뜻 봐도 일흔은 훌쩍 넘겼을 얼굴의 노인이 반갑게 맞이한다. 바로 노르웨이 베르겐대학교 윙베 크리스토퍼슨 명예교수다. 앞으로 있을 북극 탐사를 위하여 특수 제작된 수륙양용보트 삽바바호를 수리하고 있다. 윙베 교수는 앞서 소개한 스발바르대학연구센터 오둔과 함께 삽바바호에 승선해 2014년 여름부터 장장 1년간 얼어붙은 북극해 해빙 위를 표류하며 북극 탐사를 수행했다. 바로 120여 년 전 탐험가 난센이 북극점을 지났던 프람호 북극 여정과 똑같다. 극야로 반년이나 지속되는 어둠과 추위, 그리고 외로움과 싸워야 하는, 보통 사람들은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여든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 못지않은 용기와 지혜, 강한 체력까지 유지하는 것을 보면 북극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강한지 그리고 그의 도전정신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밤 10시가 훌쩍 넘은 늦은 시간, 롱이어비엔의 가장 붐비는 한 식당의 오벌 룸에 스물여명의 사람들이 둘러앉아 술잔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흥겨운 노랫소리가 들린다. 밤늦은 시간이라고는 하나 백야로 한낮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노르웨이어라 알아들을 순 없어도 선조인 바이킹의 노래인 듯싶다. 바로 난센과 함께 북극탐험에 생을 바쳤던 탐험가 헬머한센의 이름을 딴 탐사선 헬머한센호의 승조원들과 연구원들이 스발바르 탐사를 자축하는 뒤풀이다. 그들은 지난 4년간 스발바르 중·남·북부 및 동부 해안까지 거의 모든 피오르드 탐사를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이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바로 북극해의 거친 환경에 단련된 노련한 승조원들과 세계 각국에서 참여한 연구진들의 탐사 과정을 조율하는 책임자 노르웨이 북극대학교 마티아스 포윅 교수의 노고 덕분이다. 1992년 탐사선으로 개조된 헬머한센호는 지난 30년간 거친 북극해에서 수많은 연구를 수행해왔고 이제 새로운 탐사선으로 대체 예정이다. 첨단은 아니지만 부족함 없이 북극탐사를 함께하던 헬머한센호의 퇴역이 못내 아쉽기는 하지만 새로운 탐사선의 활약도 기대가 된다.

롱이어비엔의 남쪽에는 이스피오르드와 달리 여전히 많은 조수빙하로 덮여있는 혼순드가 있으며 그 입구에 스발바르에서 가장 고립된 폴란드 북극과학기지가 1958년부터 운영되고 있다. 일 년에 두세 차례 본국에서 필요한 보급품을 보낸다지만 스발바르의 여느 정착촌과는 달리 부두시설이 없어 보급이 매우 제한적이다. 여름이 한창이던 7월 말 과학기지를 처음 방문했을 때 신선한 채소는 고사하고 냉동으로 보관하던 통조림마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10월경에나 채소와 과일 구경을 한다고 하니 여전히 열악한 북극 환경을 엿볼 수 있었다. 불과 10여명의 탐사대가 1년간 고립돼 생활하지만 그 안에서 사랑이 싹트기도 하고 때론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가 덮치기도 한다. 2019년 마지막으로 기지를 방문했을 때 이제 막 결혼식을 올린 신혼부부가 반갑게 우리를 맞아 주기도 했고 눈 덮인 빙하의 크레바스에 빠져 2명의 젊은 대원이 목숨을 잃는 사고도 발생했다. 기지 한 곁에는 이처럼 스발바르에서 생을 마감한 영혼들을 위한 추모비가 외롭지만 당당하게 서 있다. 스발바르뿐만 아니라 북극에서 저물어간 모든 사람들을 기리며 기고를 마친다. 강무희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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