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심기일전, 안중식의 <탑원도소회지도>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심기일전, 안중식의 <탑원도소회지도>

양동길/시인, 수필가

  • 승인 2024-12-20 12:31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원로 작가, 몇 대 작가, 대표 작가 등은 임의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공식적인 조직, 규정, 선정절차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전시회 또는 정리, 분류 등 때문에 편의상 만들어 지고, 임시로 붙여지기도 한다. '한국화 근대 6대가'란 말이 있다. 많이 사용되다보니 통설처럼 되었다. 1940년 조선미술관 창립 10주년 기념전 '십대산수풍경화전(十大山水風景畵展)'이 있었다. 여기에 출품했던 작가 중에 1971년 생존해 있던 6명이 신문회관 화랑에서 열린 '동양화 여섯분 전람회'에 참여한다. 이 전시회가 인사동에서도 열리게 되는데 전람회 명칭이 '동양화 6대가'로 바뀐다. 여기에서 유래된 말이다.

근대 한국화 6대가(大家)는 의제 허백련(毅齊 許百鍊, 1891~1977), 이당 김은호(以堂 金殷鎬, 1892~1979), 심향 박승무(深香 朴勝武, 1893~1980), 청전 이상범(靑田 李象範, 1897~1972), 심산 노수현(心汕 盧壽鉉, 1899~1978), 소정 변관식(小亭 卞寬植, 1899~1976)이다. 저마다 개성이 강하여 독특한 창작세계를 보여준다.

6대가 모두 소림 조석진(小琳 趙錫晋, 1853 ~ 1920)과 심전 안중식(心田 安中植, 1861 ~ 1919)으로부터 사사 받거나 깊이 연관이 있다. 소림과 심전 역시 인연이 깊다. 둘 다 조선의 마지막 도화서 화원이다. 1881년 신식 무기 제조법과 조련법을 배우기 위하여 중국으로 떠났던 영선사(領選使) 일행의 제도사(製圖士)로 발탁된다. 관비 유학으로 톈진(天津)에서 1년 동안 견문을 넓히고 돌아온다. 1902년 고종의 어진 도사(御眞圖寫) 화사(?師)로 함께 선발된다. 1911년 이왕가의 후원으로 설립된 서화미술원(書?美術院)에서 교수로 재직한다. 이곳에서 한국 근대 전통회화를 주도하는 많은 화가가 배출된다. 1919년 서화협회를 조직하여 초대회장은 심전이, 2대 회장엔 소림이 선출된다. 전통 회화와 근현대 회화의 가교역할을 한 것이다.

ehthd
안중식 <탑원도소회지도(塔園屠蘇會之圖)> 종이에 옅은 채색, 23.4 x 35.4cm,1912년, 간송미술관 소장
그림 한 점 감상해 보자. 1912년 심전이 위창 오세창(葦滄 吳世昌, 1864∼1953)에게 그려준 <탑원도소회지도(塔園屠蘇會之圖)>이다. 그림 좌측에 화제와 임자년(1912) 첫 날 밤에 원의 주인 위창을 위해 그렸다는 관지가 있다. 작품배경이 된 집 주인이 위창임을 밝히고 있다. 위창은 자기 집을 '탑원'이라 불렀다. 그의 집이 원각사(현 탑골공원) 근처에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망국이후 조선 지식인의 모습을 그린 거의 유일한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자리는 위창이 안중식과 천도교 교주 손병희, 권동진, 최린 등을 초대한 도소주 모임이었다. 화폭엔 8명이 보인다. 나라 잃은 지식인과 예술가가 모여 울분을 토로한 자리라 이른다. 대부분 3·1운동 주도자여서 구국의 방안 모색이 주된 화제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멀리 운무 속에 탑이 보인다. 원각사 10층 석탑(국보, 1962)의 상층부로 짐작된다. 밤안개 또는 물안개가 자욱한 뭔가 침울한 분위기다. 함께한 사람들이 호수 가장자리 누각에 놓인 간소한 주안상에 둘러앉았다. 일종의 아회도로서 기록 또는 기념하기 위한 것처럼 보이는 데, 탁월한 조형력으로 아름답게 승화시킨 것이 돋보인다. 호선형 구도나 농담에 의한 원근법도 근현대적이다.

오세창은 <만세보>, <대한민보>의 사장을 지낸 언론인이자 지식인으로 일본을 질타한다.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 1906 ~ 1962)과 손잡고 문화재 수집 및 보존에 앞장선 선각자이다. 전서, 예서에 뛰어난 서예가이기도 하며, 당대 최고의 서화 감식안으로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과 <근역서휘(槿域書彙)>등을 저술했다. 안중식과 더불어 '서화가협회'를 창립, 전통 미술 보전을 위한 미술가 양성에도 일조했다. 3·1운동 때에는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명으로 활약했으며, 광복 후 미 군정청으로부터 조선왕조 국새를 인계받는 민족대표로 선정되었다.

도소주는 초백주(椒柏酒)와 함께 오래 전부터 세주(歲酒)로 썼던 술이다. 설날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마시는 약주이다. 마시면 괴질(怪疾)과 요사스럽고 사악한 기운(邪氣)을 물리치며 장수한다고 믿었다. 새로워지는 것이다.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정치상황은 망국의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단히 심각하다. 세밑과 세시에 술자리가 대단히 많다. 흥청망청 보내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위기에 처했다고 모든 일상을 접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새 희망으로 새해를 맞이하면 얼마나 좋으랴. 위안과 안정, 비전과 진로모색, 심기일전이 필요하다. 그러한 만남의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양동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서 19년만에 한국시리즈 안전관리 '비상'…팬 운집에 할로윈 겹쳐
  2. 대전교육청 교육공무직 명칭 '실무원'→ '실무사'… "책임성·전문성 반영"
  3. 산학연협력 엑스포 29~31일 대구서… 지역대 ‘라이즈’ 성과 한자리에
  4.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한화 팬들의 응원 메시지
  5. 한화 이글스 반격 시작했다…한국시리즈 3차전 LG 트윈스에 7-3 승리
  1. 대전 유성 엑스포아파트 재건축 지구지정 입안제안 신청 '임박'
  2. 금강 세종보' 철거 VS 가동'...시민 여론 향배는 어디로
  3. [편집국에서] 설동호 대전교육감의 마지막 국정감사
  4. [썰] 전문학, 내년 지선서 감산 예외 '특례' 적용?
  5. 신탄진역 '아가씨' 성상품화 거리 대응 시민들 31일 집결

헤드라인 뉴스


긴장 풀려다 병 얻을라… ‘수능약’ 부작용 주의보

긴장 풀려다 병 얻을라… ‘수능약’ 부작용 주의보

수능 시험을 앞두고 '수능약' 혹은 '면접약'으로 불리는 일부 약이 학부모, 면접을 앞둔 취업준비생들을 유혹하고 있다. 시험 당일 긴장을 완화해 주고 떨림이나 가슴 두근거림을 줄여주는 데 효과가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인데, 심혈관 질환 치료제로 사용되는 약을 불안 완화용으로 임의 복용하는 것은 부작용 위험이 크다는 게 약사의 설명이다. 29일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에 따르면, 고혈압이나 부정맥처럼 교감신경의 작용을 차단하는 전문의약품을 시험과 면접을 긴장을 완화시킬 목적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늘어 주의가 요구된다. 대표적으로 인데놀정(..

[2025 경주 APEC] 한미정상회담서 난항 겪던 한미 관세협상 타결
[2025 경주 APEC] 한미정상회담서 난항 겪던 한미 관세협상 타결

2025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인 29일 한미 정상이 만나 난항을 겪던 한미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대미 금융투자 3500억 달러(497조700억원) 중 2000억 달러(284조1000억원)는 현금으로 투자하되, 연간 투자 상한을 200억(28조4040억원)으로 제한하는데 합의했다. 대통령실 김용범 정책실장은 29일 오후 경북 경주에 마련된 ‘2025 경주 APEC 국제미디어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한미관세 협상 세부내용을 합의했다"며 협상 내용을 발표했다. 세부 내용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3500억..

때 아닌 추위에 붕어빵 찾는 발길 분주… 겨울철 대표 간식 활짝
때 아닌 추위에 붕어빵 찾는 발길 분주… 겨울철 대표 간식 활짝

10월 최저기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는 이른 추위가 찾아오면서 겨울철 대표 간식 '붕어빵'을 찾는 발길이 분주하다. 예년에는 11월 말부터 12월 초쯤 붕어빵이 모습을 드러내지만, 올해는 때이른 추위에 일찌감치 골목 어귀에서 붕어빵을 찾는 손님들이 늘어나고 있다. 29일 대전 최저기온이 5도를 가리키는 등 날씨가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겨울철 대표 간식인 붕어빵이 지역 상권마다 등장하고 있다. 올해는 예년보다 한 달 먼저 장사를 시작한 김 모(41) 씨는 "보통 11월 말이나 12월 초에 날씨가 급격하게 추워지면 붕어빵 장사를 했지만,..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겨울철 대비 제설작업 ‘이상무’ 겨울철 대비 제설작업 ‘이상무’

  • 중장년 채용박람회 구직 열기 ‘후끈’ 중장년 채용박람회 구직 열기 ‘후끈’

  •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한화 팬들의 응원 메시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한화 팬들의 응원 메시지

  • 취약계층의 겨울을 위한 연탄배달 취약계층의 겨울을 위한 연탄배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