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제217강 여측이심(如厠二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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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제217강 여측이심(如厠二心)

장상현/전 인문학 교수

  • 승인 2025-06-24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제 217강 如厠二心(여측이심) : 측간(厠間/화장실)에 갈 적 마음 다르고 올 적 마음 다르다

글 자 : 如(같을 여) 厠(뒷간 측) 二(두 이) 心(마음 심)

출 처 : 新故事成語(신고사성어) 해학소설 대 전집(諧謔小說 大 全集)

비 유 : 자기에게 요긴할 때는 다급하게 굴다가 그 일이 끝나면 마음이 변함



인간의 가장 기본이 되는 생리현상은 먹고(食事), 싸고(排泄) 잠자(睡眠)는 것이다.

이 생리현상은 사람이 하고 싶다고 하고, 하기 싫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이 생리현상이 멈추게 되면 자기 생명과 직결되므로 죽은 목숨과 같다.

사람들은 먹는 것도 골라먹고, 싸는 것도 제때 해야 하고, 잠자는 것도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 이 세 가지 생리현상 중 유독 배설만이 하기 전과 한 후의 긴장상황이 달라진다.

곧 여측이심(如厠二心/ 갈 때와 올 때가 같지 않다)이다. 특히 거짓을 일삼는 직업인 정치인(政治人)이나 권력자(權力者)일수록 더 심한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이야기는 대동강(大同江)물을 팔아먹은 봉이(鳳伊) 김선달(金先達)의 해학소설(諧謔小說) 중 한 대목에 등장한다.

한양(漢陽)을 구경하던 중 갑자기 용변(설사)이 급해 진 김선달은 한 대갓집에 들어가 측간(厠間/화장실)을 사용하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그 집 하인이 주인이 퇴청해 돌아오시면 난리가 나니 안 된다고 거절한다. 김선달은 동전 석 냥을 주면서 측간을 사용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니 그때서야 하인은 웃으며 "얼른 볼 일을 보고 나오라"며 측간 사용을 허락한다.

측간에서 볼 일을 마친 김선달은 그제서야 돈을 받는 하인이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측간에서 나오지 않고 버티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날따라 퇴청시간이 되지 않은 대감이 갑자기 퇴청한다는 소식이 하인에게 전해졌다. 그렇게 되자 안달이 난 하인은 대감이 돌아오면 낯선 남자를 집에 들였다는 이유로 낭패(狼狽)를 볼 게 뻔 하기 때문에 다급해하면서 김선달에게 받은 석 냥에 오히려 두 냥을 더 얹어 다섯 냥을 주고서야 김선달을 나가게 했다는 내용이다. 하인으로서는 참으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기가 급하니 뒷간 사용료를 주겠다고 먼저 제안해 놓고 용변이 끝나자 하인의 약점을 악용해 웃돈까지 받아 챙긴 파렴치(破廉恥)한 짓을 한 것이다.

또한 다른 예화(例話)을 보자.

눈 한번 떠 보는 게 소원인 소경이 있었다. 안타까운 사연은 꼬리를 물고 널리 퍼지면서 부엉이가 알게 되었다. 부엉이는 밤에만 활동하고 있으니 낮에는 눈이 필요하지 않다며 소경을 찾아갔다. 낮에 눈을 빌려 드릴 테니 밤이면 눈을 꼭 돌려줄 것을 다짐을 받고 부엉이는 눈을 빌려 주었다. 다음날 아침, 소경은 너무도 아름답고 눈부신 세상을 보았다. 그날부터 낮에는 소경이 밤엔 부엉이가 교대로 눈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욕심이 생긴 소경은 부엉이 눈을 가지고 멀리 도망가 새로운 세상을 만끽했다. 밤이면 수없이 반짝이는 별을 보고, 낮에는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으니 여한이 없었다. 욕심(慾心)이 과했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소경의 눈이 점점 흐려지더니 깜깜한 어둠처럼 다시 소경이 되었다. 그래서 다시 부엉이를 찾아갔으나 부엉이는 이미 눈이 없어 먹이를 찾지 못해 굶어 죽었고, 소경은 또다시 어둠 속에 갇힌 소경으로 돌아갔다.

소경은 부엉이에게 진심으로 약속했고, 잠시 빌린 공을 꼭 돌려드릴 것을 다짐했었다. 허나, 여측이심(如厠二心)처럼 급(急)할 때는 앞, 뒤를 가릴 수 없을 만큼 몹시도 급하게 굴다가 위기가 지나 급했던 마음이 사그라져 버리자 약속은 까맣게 잊고 있었고 내가 꼭 필요하여 도움을 받아 빌렸음에도 다급함이 끝나자 초심(初心)은 사라지고, 급한 사정은 상대방에게 넘기는 여측이심(如厠二心)이 발동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내가 필요하고 급할 때, 평소에 잘 지내고 믿을 만한 사람에게 사정을 쏟아내고 도움을 요청하여 급한 상황을 처리한다. 그리고 되돌림에는 매우 인색하게 되는 것이 인간이 지닌 악(惡)의 업보(業報)인 것이다.

내 옆에 있어주는 사람이 귀(貴)하고도 귀한 은인(恩人)인데 말이다. 특히 국민과 함께 행복한 생활을 꿈꾸고자 하는 위정자(爲政者)들의 공약(公約)을 이제는 믿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불신하고 있다. 왜?… 득표(得票)를 위해 급하고 필요할 때만 달콤한 말로 유혹(誘惑)하고, 당선되면 마치 권력의 힘으로 모든 공약은 그저 해본 이야기로 돌리는 여측이심(如厠二心)이 후안무치(厚顔無恥)의 악업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서양 속담에도 같은 용어를 쉽게 볼 수 있다.

"The danger past, God forgotten."(위기를 모면하면 하느님을 잊는다.)

"Once on shore, we pray no more."(배가 해변에 이르면 기도를 멈춘다.)

인류 최고의 스승인 공자는 먹는 것(食)과, 국방(兵)보다 믿음(信)이 더 중요함을 교훈으로 남기고 있다. 이른바 민신지의(民信之矣)다. (논어 안연편)

개인이던 단체이던 국가이던 가장 중요한 것은 약속을 지킴에 대한 깊은 신뢰이다.

여측이심(如厠二心)으로는 잠시 동안은 모면할 수는 있으나 영원히 매장(埋葬)된다는 사실을 위정자(爲政者)나 권력자(權力者)들은 확실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또 국민들은 그런 사람을 잘 분별하여 지도자로 선택해야 할 것이다.

장상현/전 인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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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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