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상이유공자 한정민 시인, 기록하는 시창작에 멈춤은 없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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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상이유공자 한정민 시인, 기록하는 시창작에 멈춤은 없다네

1965년 맹호부대 1진 베트남 퀴논 파병
어머니 작별과 고엽제까지 시의 언어로
아내의 병상 지키며 '병상일기'로 위로
"시는 소중한 보물, 평화는 아끼지 말아야"

  • 승인 2025-06-24 17:47
  • 수정 2025-06-24 17:52
  • 신문게재 2025-06-25 8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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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민 시인이 대전 신탄진 자택에서 매일 이뤄지는 새벽 3시 30분 시창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터지는 / 포성에// 참호 속/ 병사는 잠 못 이루고// 쌓았다/ 헐었다// 기와집/ 열두 채 -'기와집' 전문

15살에 시를 짓기 시작한 한정민(82) 시인은 오늘도 오전 3시 30분에 일어나 목욕을 재개하고 의료용 침상에 앉아 시구를 떠올린다. 고향 진도에서 중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아버지가 소 판 돈 오만 원을 몰래 가지고 상경해 낯선 서울역에서 깡패들에게 몽땅 빼앗겼다. 오도가도 못하던 때가 지금도 잊을 수 없는지 그의 시에서는 '아버지 무서워 고향 한 번 못 내려가고, 구두닦이 중국집 접시 닦이로, 찬 겨울에 손이 퉁퉁 부었다, 포화 속 월남전에 참전해 목숨을 담보로 돈을 모아, 아버지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고향에 다랑논 서 마지를 사드렸다.'라는 구절이 곳곳에서 등장한다.

한정민 시인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용사로 생사를 넘나드는 여러 전투에 임하고 귀환한 유공자다. 1965년 10월 맹호부대 1진으로 서울대로변을 행진하는 월남용사 중에도 그가 있었고, 미군 수송함에 실려 부산항을 떠나며 마중 온 가족들에게 손 흔드는 군인 속에도 그가 있었다. 여의도 맹호 1진 출국장으로 달려오신 어머니를 만난 아들은 아흐레간 이어진 베트남 퀴논(꾸이년)행 수송선에서 이 같은 시를 짓는다.

여의도/ 맹호 1진 월남 파병/ 출국 행사장// 전쟁터로 떠나는/ 아들 면회 오신/ 울 어머니// 스물한 해/ 튼튼하게 자란 아들 하나 잃을까/ 천 리 길 달려온 눈에/ 빗물 흘러내립니다// …중략… 지난날 불효가/ 가슴을 엡니다 -'어머니의 눈물' 부분

그는 아침 창작 시간을 마치고 식사를 마치면 알약 25알 삼켜야 하는 82세 상이용사 한정민 예비역 병장과 마주한다. 고혈압, 당뇨, 부정맥, 파킨슨, 치매 … 그에게 따라붙은 병명은 지난 30년간 한 시도 그를 놓아준 적이 없다. 1975년 고엽제 후유증으로 협심증이 찾아왔고, 그 후로 방광암까지 원인을 알 수 없는 질환에 시달렸다. 불행은 쌍으로 온다고, 그의 아내마저 암과 싸웠으나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먼저 떠났다. 그는 암으로 고통을 겪으면서 아픔과 절망을 시로 짓고 먼저 간 아내의 이야기를 담은 시집 '병상일기'를 세상에 내놓았다.

오늘도 입에 물린/ 인공호흡기 때문에/ 아내는 말을 못합니다// 면회 때 가지고 온 종이에/ 볼펜으로 글씨를 씁니다// '먹지도 못하고 답답하니/ 퇴원하여 집으로 가요/ 앰뷸런스 불러줘요.'// 여의사는/ 코줄과 인공호흡기를/ 뗄 수 없다고/ 매몰차게 병실을 빠져나갑니다// "여보, 괴롭고 힘들어도/ 참고 견디어 봅시다/ 12층 일반병실로 올라갈 때까지."// …중략… 순간/ 아내의 눈이 젖어 옵니다 -'앰뷸런스를 불러줘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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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민 시인이 그동안 발행한 시를 모아 발행한 시집 7권.
아침에 25알 저녁에 20알을 목으로 삼켜야 하는 그의 고통은 베트남 고엽제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전에서 미군이 하늘에 살포한 수증기 같은 액체가 인체에 이토록 해롭고 두고두고 괴롭힐 줄은 그때는 몰랐다. 수송선에 실려 퀴논항에 내려 천막도 펼칠 수 없는 전장에서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몸을 누이고서야 잠에 들 수 있을 정도로 전투가 치열했고 많은 전우를 잃었다.

하늘에선/ 고엽제가 쏟아지고// 땅에서는/ 베트콩의 총구가/ 불을 토하고// 눈을 감아도/ 내일 뜨는 해를/ 다시 볼 수 있을지 몰라/ 잠을 잘 수가 없다// 고국이 천국이라면/ 여기는 지옥이다/후략…-'지옥' 부분.

베트남 전투 현장에서도 그는 연필을 내려놓지 않고 하루하루 전장의 시를 썼다. 보초 근무 설 때나 행군 중간에 막간의 휴식이 주어졌을 때 웅크려 앉아 미군 전투식량 씨레이션 포장 종이에 한 구절 한 구절 꾹꾹 눌러서 썼다. 「땅굴 막사」, 「퀴논의 첫날밤」, 「졸음」, 「연화(燃火)」, 「영원한 전우여」, 「오작교 전투」, 「가난 때문에」 등의 시가 포성이 들리는 전쟁터에서 창작됐다. 특히, 전사한 전우에 대한 슬픔과 그가 이국의 땅에서 희생되는 것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졌다.

김 상병아!/ 너는 무엇을 위해서/ 전쟁터에서 죽어가는가// 잦아지는/ 숨결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외치는// 어머니라는/ 그 말// 고국 사람들은/ 네 죽음 앞에서/ 한 송이 국화라도 바치겠는가/ 후략…-'김 상병아!'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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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민 시인은 베트남 파병과 전매청 근무, 자신과 아내의 암 투병의 시간을 시창작으로 기록했다. 사진은 베트남 파병때 모습.
그가 1년 6개월의 파병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의 어깨에는 시를 적은 씨레인션 종이가 더블 백에 가득 담겨 있었다. 베트남에서 살아 돌아온 그는 대전 신탄진에 있는 전매청(현 KT&G)에 취직하면서 대전시민이 됐다. 31년 근무하는 동안 아들과 딸은 장성해 독립된 삶을 살아가고, 그는 매일 새벽 시를 짓는 시간이 다시 찾아오기를 기대하며 하루 1만 보의 걸음을 걷는다. 2014년 첫 시집을 내고 지난 4월 '사선을 넘어'까지 총 7권의 시집을 냈다. 지난해 병원비 2500만 원이 없어 수술을 못하던 모자(母子)에게 수술비 전액을 지원해 콩팥 이식으로 새로운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왔고, 올해는 '한정민 애향 시문학상'을 신설해 문학 창작 및 문학 활동을 하는 후배들에게 최고 300만 원을 시상하기로 했다. 대덕구 신탄진동에 있는 그의 자택에 만나 이뤄진 대화는 세계에서 전해지는 전쟁과 한반도 평화까지 확대됐다.

한정민 시인은 "노년의 삶에 시는 가장 소중한 보물이고, 상이연금을 모아 문학상을 만들고 어려움 겪는 이웃 환자를 도왔는데 가족들이 응원해줘 가능한 일"이라며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전쟁 뉴스가 하루도 끊기지 않은 이때 우리는 이산가족 상봉부터 재개하고 평화를 위한 정책과 예산을 아까워할 일은 아닐 것이고 6.25 같은 참상은 절대로 벌어져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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