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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레기’는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다.
정론직필(正論直筆)의 사명감을 다 하지 못한 기자들을 빗대서 부르는 이 말이 기자들을 칭하는 고유명사(?)가 되고 있다. 무슨 변명의 여지가 있으랴.
대중들의 눈에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펜을 들었던 기자들의 변심이 어찌 괘씸하지 않겠는가. 꾸짖고 더 아프게 때리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그 마음을 알기에 ‘기레기’라는 말 한마디에도 제발이 저려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자성의 목소리가 없는 것도 아니나 과거 시퍼런 칼날 속에서도 제 목소리를 냈던 선배들의 발끝도 따르기 쉽지 않아 보인다.
자유언론수호의 기치 아래 거대 권력에 맞섰던 반짝이던 역사의 한 순간이 있었다.
한국기자협회는 제3공화국 시절 박정희 군사정권이 언론장악의도로 제정하려던 언론윤리위원회법 철폐 투쟁과정에서 언론인들의 연대의식을 결집하기 위해 창립됐다. 그리고 기관의 효율적인 홍보를 위해 기자들의 신문 ‘기자협회보’가 창간 됐다.
협회보는 기자들의 권익옹호를 위한 든든한 백이 되어 주기도 했고 때로는 경영주들을 상대로 함께 싸워주는 지면이 됐으며 일반 언론사에서 다루지 못했던 민감한 정치적 현안을 던지는 데도 거침이 없었다.
태생부터가 반정부 성격을 띠고 있었던 기자협회보는 두 번의 폐간이라는 시련이 있었다.
그 첫 번째 시련이 41년 전 오늘(10일) 일어났다.
발단은 1974년 12월 17일 ‘조선일보’에 실린 유정회 소속 전재구 의원의 유신체제를 옹호하는 기고문에서 시작됐다. 당시 백기범(외신부)・신홍범(문화부) 두 기자가 이 글이 신문의 공정성과 불편부당이라는 사시에 반하는 것이라고 항의 했지만, 회사는 편집국장의 편집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징계위원회를 열어 해임을 결정했다.
이에 동료 기자 100여명이 비상총회를 열고 해임철회를 요구하는 농성에 들어갔다.
농성 7시간 만에 편집 부국장의 “3개월 이내·창간 기념일인 3월5일 이전에 복직시킨다”는 약속을 받고, 기자들은 농성을 해제했다. 그러나 약속된 날짜에 복직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다시 농성에 들어갔고 회사 측은 기자협회 조선일보 분회장 등 파면공고를 시작으로 37명을 징계했다.
이에 기자협회는 3월 8일 제351호 증면호를 통해 조선일보 기자들의 무더기 파면을 보도하자 이틀 뒤인 10일 ‘신문․통신 등의 등록에 관한 법률’을 들어 기자협회보를 폐간 조치됐다. 이유는 기자협회가 법정 시설기준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언로가 막힌 기자협회는 11월 10일 ‘기협회보’로 제호를 바꿔 다시 복간했다.
정부의 교활한 언론탄압,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았던 시대였지만 언론으로서의 기개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았던 시절이었다. 세월과 타협하며 현실에 안주해 있는 기자나 어깨에 힘만 들어간 새내기 기자들이 한 번쯤 되돌아 봐야할 역사 속 우리의 얼굴이다./김은주 기자
*참고 자료-2012년 1월 25일 한겨레· 2000년 11월 2일자 기자협회보 '기자협회보 1000호 발행의 언론사적 의미(정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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